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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동님의 글에 대한 반론, 혹은 답변을 겸한 글입니다. 그리고 윤여동님의 글에 대해서는 fey라는 아이디를 쓴 분이 의견쓰기 게시판에 답변을 하셨고, 저의 글보다 더 쉽게 답변을 했다고 생각되어 저 나름대로 답변을 하였지만 더 잘 쓰셨다고 생각되며 저의 의견과 동일하기에 링크 합니다.
(편집자주 : 이 글 하단부에도 전문을 올렸습니다. )
1. 과학의 잣대
한의학을 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과학의 잣대, 혹은 서양의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검증하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과학의 잣대가 무엇인지 알고 하시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근대 이후 성립된 과학적 방법론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증명입니다. 옳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입니다.
증명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부정하는가? 아닙니다. 증명되지 않는 것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명확히 말하면 틀렸다고 증명되거나 옳다고 증명되지 않는 것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증명이 함축하는 의미는 다시 말하면 어떠한 도그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에이즈를 신의 형벌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할 때 신의 형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이것을 과학의 잣대로 말하면, 신의 형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증명도 부정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식 체계 하에서는 에이즈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과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검증하지 말라고 하는 분들에게는 그렇다면 한의학은 증명이 필요 없는 의학이나 학문이란 뜻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의학의 실험이나 통계와 같은 다른 증명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로서는 증명하지 않고 인정한다는 것은 도그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이 과학의 잣대를 거부하는 것은 도그마에 입각해 치료한다는 뜻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엄격하게 말하면 한의학 전체에 대해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식과 논리에 입각해서 어떤 질병이나 건강을 증진하는데 한의학의 치료도 의학의 치료보다 좋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2. 또 다른 흔히 듣는 말이 서양의학이 한계에 부딪혀 한의학에 눈을 돌렸다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키니네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약이었습니다. 이 약을 의학에서 말라리아 치료에 사용한다고 의학이 한계를 느껴 아메리카 원주민 의학에 눈을 돌린 것일까요?
최근 들어 과학이나 과학적 의학이 한의학에 관심을 두는 것은 한의학에 눈을 돌린 것이 아니라, 과학과 의학의 예전에는 알지 못한 한의학의 치료 효과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한의학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나 티벳의 전통의학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효능이 있다고 증명 된 다면, 과학이나 의학이 어떠한 치료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따른 자연스런 관심일 뿐입니다. 현존하는 치료법이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온 일입니다. 자연히 다른 치료법은 없는가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의학에 눈을 돌린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치료법은 없는가를 다 방면으로 모색하는 중에 당연히 한의학에도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서양의학이 한계를 느껴 한의학에 눈을 돌렸다고 하면 어이없어 할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3. 한의학의 치료효과에 대해
저로서는 비교 해본 적이 없어 한의학적 치료와 의학적 치료,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환자를 생각한다면 단기적, 장기적 치료 효과를 비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비교를 객관적으로 하여야 치료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윤여동님은 의료소비자가 본 비교를 말씀하였지만, 객관적인 비교가 없이는 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물론 질병에 따라 한의학의 치료가 더 효과가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개인의 경험으로 판단하는 것은 과학에서는 가장 피해야 할 금기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연과 필연을 구별하는 것, 그리고 구별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과학적 방법론입니다. 적어도 의학의 역사를 볼 때, 수술이 필요한 질병 군과 세균 등의 감염성 질병, 그리고 응급 질환에 대해서 한의학의 치료는 거의 효과가 없었으므로 이 분야에서만큼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 할 것입니다.
4. 다시 윤여동님의 의문에 답하면, 치료 효과를 어떻게 검증하느냐에 대해 윤여동님은 환자가 아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무식하게 말하면, 그렇다면 한의학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한의학은 엉터리고, 의학의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학이 엉터리가 되는 것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또한 과학과 의학과 사회, 경제적 문제를 윤여동님은 혼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사도 님을 단순한 기계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윤여동님은 너무나 도식적인 과학과 의학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하는 듯 합니다. 님은 항암치료의 불편함을 말씀하셨지만, 물론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환자들이 죽은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반면 항암치료가 없었더라면, 바로 현대 의학이 아니었더라면 죽었을 수많은 환자들 중에 불편함과 고통을 견디고 항암치료와 골수 이식을 거쳐 완치된 백혈병, 혈액암 환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유감스럽지만 한의학에서 암을 치료하는 효과적 방법은 의사들에게는 증명된 것이 없습니다. 암의 치료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고통 없이 암을 치료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암치료에는 암의 본질로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의사들은 거의 통일된 지침을 가지고 치료를 합니다. 그리고 치료 효과, 연명 효과, 환자의 삶의 질을 따지고 어떤 것이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가를 항상 계산하는 것이 의학입니다. 그리고 암의 본질을 안다면, 항암치료가 왜 그토록 환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항암치료는 비유하자면 가족 중에 한사람이 죽어야 다른 가족이 살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 이것이 암의 본질입니다. 현대의 의학적 한계는 암과 정상세포를 분리하여 암만 공격하는 것이 아직은 어렵습니다.
암을 공격하면 필연적으로 정상세포도 같이 손상을 받습니다. 그래서 정상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암세포만 죽일 수 있는 치료법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는 치료법이란 곧 정상세포와 암세포의 차이, 그것도 치료에 효과 있는 차이를 밝힌 것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암의 본질, 암의 본질인 자연 법칙에 따라, 고통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기에 다른 보조 치료 없이 암을 고통 없이 치료했다고 하면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암에 따라서는 자연 치유가 되는 암도 극소수이지만 있습니다.
결국 암치료는 각자의 인생관에 달린 것입니다. 저 또한 암에 걸리면 현재로서는 이미 암이 전이 된 상태이고 항암치료가 단지 생명을 연장 할 뿐이라면 저도 암치료를 하지 않고 살겠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암치료의 효과와 고통, 수명연장 효과, 완치 가능성을 가지고 환자가 치료법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할 것입니다.
분명히 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는 삶의 질은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고통스럽더라도 수명연장을 선택하거나, 완치의 가능성이 몇 %에 지나지 않더라고 그 고통을 감수하고 항암치료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개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윤여동님의 개인적인 인생관이나 한 예를 가지고 항암치료를 판단하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일반화에 불과 할 뿐입니다. 오늘도 이 문제를 가지고 수많은 의사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치료효과와 삶의 질이라는 문제를 놓고 과연 어느 것이 환자에게 최선의 길인가를 두고 오늘도 의사들은 고민하고 저 또한 말기 암환자를 대할 때마다 한 명 한 명의 환자의 특수성을 두고 어느 것이 환자에게 최선의 길인가를 두고 몇 가지 방법을 두고 고민하는 의사입니다.
5. 윤여동님은 "한의학은 병의 원인보다는 몸의 상황을 중요시하고 몸이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모르고 치료하는 것과 원인을 알고 치료하는 것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 치료가 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나아가서 원인을 찾고 원인에 근거해서 치료하는 것, 이 모두가 몸이 정상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의학의 목표도 몸이 정상 상태를 회복하거나, 더 바람직한 상태로 되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원인을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에 원인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의학이 과연 환자의 몸이 어떻게 되든 말든 원인만 치료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간단히 폐결핵 환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하면 폐결핵 치료는 됩니다. 그러나 무작정 고단위 항생제의 투여는 간이나 신장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폐결핵은 낫지만 환자에게 오히려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절한 양과 항생제의 종류를 의사들은 환자에 따라 달리 사용하며, 경과를 보면서 약을 바꾸면서 치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사와 의학도 목표는 환자의 상태를 정상으로 하기 위한 수단으로 원인을 찾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말이 한의학은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한의학에서 보는 원인과 의학에서 보는 원인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윤여동님은 한의학의 목표 (결국은 의학의 목표와 같은)와 의학의 수단을 비교하는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목표는 목표끼리, 수단은 수단끼리 비교해야 오류를 피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학이 전체적인 상황이나 변화하는 상황, 내적인 문제를 등한 한다는 것도 의사의 입장에서는 반대라고 하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결국은 환자의 건강 회복이 목적임은 의학이나 한의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회복을 위해 모든 면을 고려하는 것은 의학의 진단학의 기초입니다. 처음 진단학을 배울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이 환자의 신체의 모든 면을 볼 것,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의학이나 한의학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아니 상식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의학이나 한의학이나 최종 목표가 건강의 회복과 건강증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여동님의 말씀은 의사들은 이러한 상식조차 없는 사람으로 보는 무책임한 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의사들은 이러한 상식이 없는 사람일까요?
6. 현재 페니실린은 예전에 비해 사용이 축소되었지만 아직도 유효한 항생제입니다. 임질이나 뇌막염에서는 때로는 처음 시도하는 효과적인 약물이기도 합니다. 페니실린이 폐기 되었다는 하는 윤여동님의 말씀은 오해인 듯 합니다. 그리고 페니실린보다 더 좋고 비용을 고려하여 더 효과적인 약물이 있다면 당연히 이 약물을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에 따라서 더 좋은 약물이 개발 된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의학이 최선의 의학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한의학의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지금의 한의학의 치료가 최선이 아니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여동님의 말대로 현재의 치료법보다 더 좋은 치료법이 앞으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한 대체의학에서도 의학과 과학으로 근거가 없는 잘못된 치료에 대해서는 부정합니다. 그러나 아직 인정도 부정도 못하는 치료에 대해서는 그 효과를 검증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학은 효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체의학이든, 한의학이든 무슨 의학이든, 무슨 치료법이든, 효과가 있다면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윤여동님은 한의학이 과학적 방법 없이도 환자를 잘 돌보아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 없이 환자를 돌보아 온 근세이전 (이는 한의학이나 서양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과 과학적 방법으로 발달한 의학의 도움으로 환자를 본 현대의학은 효과를 볼 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의문은 이것입니다. 한의학은 그 본질상 현대의 과학의 도움이 필요 없는 치료법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아니면 부분적으로 한의학의 치료법이 의학보다 우월한 것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질병이나 어떤 문제에 의학보다 더 좋은가? 이것을 검증하는 방법은 저에게는 효과를 비교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과학의 한 면입니다. 이것입니다. 효과를 검증하는 것. 이것입니다.
한의학의 치료가 의학의 치료보다 더 좋은 질병이 있다면 저로서는 주저 없이 한의학의 치료를 권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지식으로 알 수 없거나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에게는 가끔 한의학의 진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일시적으로 놀랬다고 하는 경우, 저는 의학적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모릅니다.
저의 지식으로는 이에 대한 연구가 의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저의 지식으로는 놀랜 후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치료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부모에게는 한의사의 진료를 권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달리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학과 과학의 잣대로 한의학을 검증하지 말하는 분에게 다시 한번 명확하게 묻고 싶습니다. 한의학의 효과 검증의 잣대는 무엇입니까? 아니 검증의 잣대가 있는지 없는지 부터 묻고 싶습니다. 나아가서 과학적 검증의 잣대보다 더 좋은 잣대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2002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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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아래는 하니리포터 게시판에서 fey님이 쓰신 글입니다.)
의료소비자인 윤여동님에 대한 답변
몇가지 답변해드리지요.
>김승열님의 글중에 소비자로서 이상하게 들린것이 한의학은 치료효과를 어떻게 검증하느냐는 것이었다. 무식하게 답변하면 치료되었는지 안되었는지는 환자가 아는 것 아닌가. 내가 기력을 회복하면 나은 것이고 아니면 치료가 안된 것 아닌가.
- '검증'은 간단히 할 수 있는 겁니다. 비슷한 증례를 가진 환자 100명에게, 또는 비슷한 진단을 내린 환자 100명에게 어떠한 치료법(그게 한의학이건 푸닥거리건 상관 없습니다.)을 써본 결과 환자가 나았느냐 안나았느냐를 보면 간단합니다. 치료 안하나 하나 별 차이 없다면 하나마나한 치료법이요 나은 사람이 많다면 쓸만한 치료법이며 오히려 해가 된 경우가 많다면 하면 안되는 치료법입니다. 이런 방법을 '과학적 검증'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과학적이라는 것에서 서양의학에 대한 불편함이 나온다. 나는 배제되고 내 몸의 일부만이 객관적 실험의 대상이 되고, 또 통계화된 결과 속에 나의 구체성은 사라진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나는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신체의 소유자일 뿐이라고 할까.
- 기계적이건 유기적이건 상관 없습니다. 나으면 장땡인 겁니다. 의사가 친절하고 친절하지 않고는 의사의 수준 문제지만 의료방법이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는 의료방법의 문제이지 환자나 의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자가 구체성을 갖고 기분이 좋으면 치료효과가 더 좋은 건 사실이지만 페니실린 맞아야 할 것을 구체성만 갖는다고 치료가 되는 건 아니란 말이지요.
>그 고통을 너무 잘 알아 정작 의사들도 외면한다는 항암치료를 생각해보자. 몸 전체야 페허가 되든 말든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핵폭탄을 투여한다. 내가 아는 분은 고통스러운데 치료효과도 불분명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대체요법을 시행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얼굴색도 좋아보이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양의학적 관점에서는 암이 점점 더 진행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죽더라도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는 것이었다.
- 물론 그건 환자의 선택입니다. 또 그러다가 확률적으로 나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항암치료를 한 환자와 항암치료를 하지 않은 환자를 비교해 볼 때 어느쪽이 오래 살았는가/완치된 경우가 많은가를 따져보면 간단하게 '의료행위의 결과'가 검증됩니다. 많이 살아남은 쪽이 좋은 치료법이란 거지요. 물론 환자 한명에게는 살고 죽는것이 결정적인 문제이지만 환자 100명 중 50명을 살릴 수 있는 치료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면 의사는 환자에게 그 치료법을 쓸수밖에 없습니다. 환자가 그 치료법을 거부하는 것은 환자의 권리일 수 있겠지만요.
>하지만 한의학은 적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영토의 어느 부분을, 어디까지 쳐들어왔느냐가 중요하고 그 상황에 따라서 위급 지역의 아군을 보강해 전선의 통제력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다. 적군이 남았더라도 통제가 되고 일상이 가능하면 치료가 된 것이다. 어차피 우리 몸이라는 것은 세균덩어리고 암세포도 내 세포가 아닌가.
- 우리 몸은 세균덩어리가 아니고 암세포는 내 몸에서 생긴 것이긴 하지만 나에게 해를 끼칠뿐더러 원래대로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의료소비자님께서 서술하신 내용은 현대의학에서도 당연히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예방주사는도대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위가 병이 났으면 위염, 위하수, 위산과다, 위무력증에 따라 ~ 서양의학은 원인이 다르그 다름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해서 우열을 가리고 자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닌가?
- 현대 의학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환자 백명이 위의 통증을 호소해 올 때, 70명이 소화불량이고 20명이 위궤양, 5명은 과식, 5명은 위암이라는 별개의 경우에 대해서 의사가 진단해 나가는 방법은 소거법입니다. 몇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가장 확률이 높은 것부터 차례로 처리해나가지요. 한의학은 어떻게 합니까? 아직까지 한의학자가 먼저 암이라고 진단한 경우를 과문하지만 저는 모릅니다. 병원에 가서 암이란 진단을 받고 나서야 한의학을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죄송하지만 이 부분은 현대의학에 대한 님의 무지 이상이 아닙니다.
>현대의 서양의학은 근대과학의 출현으로 가능했다. 과학적 도구가 없다면 양의사는 무능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서양의학은 과학에 맞게 발전해왔다. 하지만 한의학은 근대과학이 출현하기 휠씬 오래전부터 과학적 방법의 도움 없이 병자들을 다루어왔다. 한의학은 때로는 직관과 통찰을 사용해가며 나름의 방법을 발전시켜왔다. 이런 의술의 역사성을 도외시한 채 현대의 과학적 방법을 들이대며 당신네는 왜 그렇지 못하냐고 물을 수는 없다.
- 서양 의학 또한 우리의 한의학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경험적 처치, 철학에 근거한 증상의 구분, 증상과 원인의 혼동 등등은 고대, 중세, 근대 초기 서양의학사를 보면 확연히 나타납니다. 그들 또한 약초를 혼합해 처방을 했고 나쁜 증례를 개선하기 위해 피를 뽑았으며 심지어는 초보적인 외과수술까지 시도했습니다. 불행히 '합리적 사고'라는 것이 서양쪽에서 먼저 보편화되었다는 점이 다른 거지요. 미국에서 유행하는 '대체의학'의 예만 보더라도 한의학이 현대의학의 유일한 댓구는 아닙니다. 현대의학은 합리적인 의학일 뿐이며,효과적이라면 어떠한 기법도 수용하고 그것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검증합니다.
>과학적 잣대를 들이밀기 위해서는 그 과학적 잣대가 얼마나 만능인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게놈프로젝트는 인간과 초파리의 유전자수가 비슷하다는 놀라운(?) 발견과 함께 더 많은 과제를 남겨 놓았다. 서양의 근대에 탄생한 과학적 방법에 의거한 서양의학은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또 지금 알고있는 것이 전부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적어도 현대의학은 한의학보다 많이 검증되었으며, 어제의 치료법보다 우월한 치료법이 나오면 어제의 방법을 버리고 오늘의 방법을 택합니다. 17세기의 수술법을 사용하는 현대 외과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세균성 질환에서는 완벽하게 입증되었으며 외과적 처치에 있어서도 확실히 우월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이 나오면 당연히 그것을 사용하겠지요. 의료소비자의 다음 문장처럼 말입니다.
>김승열님의 말처럼 서양의 과학이 끊임없는부정과 회의라는 방법을 통해 발전해 온 것이라면 지금의 것도 언제든지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서양 약물의 역사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페니실린처럼 탁월한 효능의 약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여러 부작용이 발견되고 결국 금지 약물이 되는 것처럼.
- 그러나 다음 문장은 억측입니다.
>지금 우리가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알고 있는 과학적인 방법론이 실은 매우 제한된 진리만 담을 수 있는 불확실한 것이 도구였음이 후세에 밝혀지지는 않을까. 마치 시공간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진리가 뉴튼 과학수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현대물리학이 도달한 연구결과가 불교의 사유관과 같다는 것처럼 동양의 의학관을 더욱 진보된 과학적 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 그 날이 온다면 현대의학은 그 기법을 바로 수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오기까지는 효과적이라고 확인된 치료법만을 사용할 것입니다.
>서양의학은 근대의 역사에서 혁혁한 전과를 기록하였다. 또 서양의학은 과학적 방법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기원전 의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의학이 도태되기는커녕 왜 다시 부각되고 있을까.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체의학을 찾는 발길은 왜 늘어만 갈까. 의료소비자들이 날이 갈수록 과학적으로 계몽이 덜 되어서 일까.
- 맹장염이 생겼을 때 한의사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장티푸스에 걸렸을 때 주사를 맞지 않고 침을 맞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발목이 삐면 침을 맞으러 갑니다. 암에 걸린 사람도 한의원 문을 두드립니다.(한의원에서 암이라고 먼저 진단한 경우는 과문한 탓인지 아직까지 모릅니다만.) 그 차이는 간단합니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는 경우 환자들은 효과적인 치료를 찾아갑니다. 불행히도 현대의학이 만병통치 수준은 아니며, 따라서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 환자들은 가능한 일은 무엇이건 시도해보게 됩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지요.(하지만 그동안 질병을 효과적으로 배제한 것은 거의 대부분 현대의학이지 한의학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교육을 덜받아서 도박에 빠지고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나'라는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지요.
(2002년 10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