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열님의 한의학계의 일련의 반박에 대해서 다시 반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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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일반적으로 말하는 과학을 자연과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할 때, 과학은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과학적 방법론은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인간은 합리적으로 추론할 능력이 있다. 이 말도 깊이 들어가면 철학에서는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라는 논리 판단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은 인간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논증입니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추론할 능력이 있다는 말은 아주 단순하거나 당연한 말 같지만, 이는 아주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과학이란 바로 합리적 추론을 전제로만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신과학을 주장하거나 과학적인 사실에 반하는 도그마는 결국 인간의 합리적 추론 능력에 대한 부정입니다. 인간이 합리적 추론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한마디로 불가지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에 대한 토론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추론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2. 과학적 방법론은 그 대상을 자연현상으로 제한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자연 현상은 법칙이 있고, 인간의 이성으로 이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연의 법칙과 관계없는 주장은 그러므로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3. 그러므로 저로서는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지 않은 다른 과학, 즉 신과학, 유사과학이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을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인간에게는 합리적으로 추론할 능력이 없다.
(2) 아니면 인간에게는 합리적으로 추론할 능력이 있어도 자연현상은 법칙성이 없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은 이 두 가지를 반드시 전제하여야만 성립합니다. 반대로 과학에 대한 부정이란 바로 위의 두 가지 중의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부정입니다. 여기에서 몇 번이나 말하지만 과학의 대상이 아닌 것에 대해 과학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연현상에 대해 만약 자연법칙과 어긋나는 주장을 할 때 과학은 과학적 판단을 할 뿐이며, 이 과학적 판단은 인간은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과학적 방법론은 관찰-가설-실험-이론-재현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과학이 모든 자연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 현상임에도 아직 인간의 능력으로 추론 할 필요가 없거나,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 흔히 신과학자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자연현상과 인간의 능력을 오해 한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관찰자가 개입하는 순간의 오류로 예를 들어 2002년 10월 25일 일정한 시간에 전 세계의 인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한 명 한 명을 모두 동시에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인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즉 계산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합니다. 정확한 인구수는 없다와, 정확한 인구수는 알수 없다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과학이 모든 자연 현상을 왜 설명할수 없는가 하는 문제와 과학의 부정에는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신과학의 주장이나 과학외의 도그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혼동하고 있는 예가 흔합니다.
4. 간혹 한의학은 과학적으로 검증 될 수 없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분에게 대해 묻고 싶은 것은 -한의학에 대해- 위의 두 가지 전제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즉
(1) 인간 이성의 능력을 믿느냐 아니냐? 즉 합리적인 추론의 가능성을 믿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2) 한의학의 대상은 무엇인가?인간이라면 인간은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 존재인가 아닌가?
5. 의학은 자연과학과 과학적 방법론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학의 개념, 의학을 정의한다면, "인간의 질병과 인체 현상은 자연현상이며, 따라서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며, 합리적 추론에 따라 인간과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려는 응용과학의 한 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한의학을 옹호하는 주장 중에 하나가 '과학은 한의학을 검증할 수 없다' 혹은 '의학만 과학이냐?' 혹은 '또 다른 과학도 있다' 라는 주장입니다. 저는 이 주장이 과학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이러한 주장은 한의학은 합리적 추론으로는 이해 할 수 없다거나, 인간이나 질병을 자연 현상이 아닌 것으로 보거나, 자연에는 법칙이 없다고 보는 의견과 동일한 것입니다. 물론 의학과 과학이 모든 자연 현상과 질병을 다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나 한의학이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나 과학 외의 다른 과학을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합리적 추론 가능성과 자연현상은 법칙성이 있다는 과학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7. 그렇다면 한의학은 인간의 합리적 추론 가능성과 자연의 법칙에 대해 어떠한 입장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의학은 자연법칙이 아닌 다른 진단, 치료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당연히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 과학의 대상이지만 현재의 인간의 능력으로는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전 세계 인구의 수는 일정한 시점에는 분명히 정확한 수가 있지만 알 수 없는 것처럼 알 수가 없다는 뜻인지 묻고 싶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역시 합리적 추론으로 과학적 방법론으로 옳은지 틀렸는지 입증이 가능합니다.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저로서는 증명 불가능한 주장을 믿고 있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증명 불가능하다는 말은 과학적 방법론에서는 판단 할 수 없다는 뜻이며 과학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한의학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주장의 토대 위에, 즉 종교나 도그마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과학적 방법론과 의학, 한의학의 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이러한 과학의 전제조건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리라 믿으며 한의학계의 반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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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