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카이스트 인문학부 신동원 교수의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역사비평사)의 '정약용, 한의학을 맹렬히 비판하다'라는 장.
홍대용 등 당시 실학자들이 차차근 받아들이기 시작한 근대적 사고에 대한 얘기를 계속 보강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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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정동유보다 더 날카롭게 한의학을 비판했다. <의령>이라는 짧은 책자에서 한의학 이론에 전방위로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정약용 이전에 어느 누구도 이렇게 대담하게 한의학의 핵심 이론을 공격한 인물은 없었다.
그는 오행상극이론, 이를테면 금의 기운은 화의 기운이 이기고, 화의 기운은 수의 기운이 이긴다는 식의 논리가 짜맞추기에 급급한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공격했다. 사시부조화이론, 즉 이전 계절의 잘못 때문에 다음 계절에 온병(溫病)이 생긴다고 보는 병리이론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삿된 기운이 피부부터 오장까지 침입해 병을 일으킨다는 질병전변의 이론, 오장육부와 12경맥이 서로 상응한다는 표리이론, 오장의 상태가 얼굴빛으로 나타난다는 장사이론, 오장 사이의 허실을 따지는 허실이론, 약의 다섯 가지 맛인 오미가 각기 좋아하는 장기로 찾아든다는 약리이론, 맥의 상태로 각 장부의 병을 알아낸다는 맥상이론, 이 모든 것이 증명할 수 없는 헛된 관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사실 정약용의 한의학 이론 비판은 의학론의 수준에 머무른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전통 자연관의 근간인 기, 음양, 오행 등의 개념 자체에 대해 회의하고 재고했다. (금장태, <정다산의 사상에 있어서 서학수용과 유학적 기반>, <동서교섭과 근대한국사상>, 성균관대 출판부, 1984) 정약용은 서양의 자연관을 공부하면서 그 이론에 공감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의학의 이론체계를 송두리째 의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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