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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한의학]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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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07-09-28 01:14     Hit : 7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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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비자 윤여동님이 한의학 옹호 입장을 개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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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검증이란 곤혹함

음양오행, 경락, 경혈 등은 한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이지만 현대 과학으로 검증된 것은 없다. 한의학의 검증 가능성을 묻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으니 비과학적이다 라는 이야기로 이해되기 쉽다. 그리고 이렇게 검증되지 못하는 부분들을 비과학적이라고 제외한다면 한의학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게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토론 과정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한의학의 이론은 과학외의 영역으로 판단을 유보하고 치료효과의 검증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제기의 대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과잉 반응한 면도 있고 언뜻 합리적인 문제제기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다.

한의학에는 기를 복돋운다는 사군자탕이라는 것이 있다. 기가 과학적으로 측정되기 전에는 사군자탕을 먹어서 기가 보충되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 증세의 변화를 통해 검증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이도 객관적으로 정하기 어렵다. 원기회복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나타낼 수는 있겠지만 개별적인 현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정력이 세질수도, 소화가 잘 될 수도, 아침에 눈이 쉽게 떠질 수도 있다. 또 기가 부족하지 않은 사람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수 있다. 기가 부족하다고 해도 차도가 없다면 사군자탕이 문제가 아니라 진단의 문제로 여긴다. 즉 사군자탕으로 해결이 안될 만큼 장부의 병이 깊거나, 기 부족으로 알았는데 알고보니 혈의 부족이더라는 등, 외형적인 증세는 같아도 원인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가 없는 사람은 이러저래 해서 안되니 약효가 있는 사람으로만 한정한다면 벌써 과학적, 통계적 검증은 곤란하다. 객관적인 증세와 약효를 정의하고 동일한 조건의 대조집단을 마련한다는 것이 서양의학에서처럼 쉽지가 않다. 통계적 검증을 따진다면 효과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 과학적 검증은 유용한가
치료효과의 증명이라는 측면에서는 한의학도 다른 의술과 마찬가지다. 병의 증상에 일정한 방법의 치료를 하여 증상이 없어지면 낫는 것으로 보는 일반적인 원칙에서 한의학이라고 예외일리는 없다. 한의학에는 '치료효과 검증의 잣대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묻고 싶다'고 했는데 한의학이라고 환자의 병에 차도가 없는데도 치료만 하면 전부 나은 것으로 주장하겠는가.

허준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이런 저런 처방을 써도 낫지 않는 환자를 허준이 병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 올바른 처방으로 치유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즉 전자는 잘못된 치료를 한 것이고 후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한 것으로, 치료효과는 이렇게 현실속에서 증명된다. 이러한 증명을 인정한다면 치료효과의 검증을 둘러싼 문제는 여기서 종결되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증명은 서양의학의 입장에서는 과학적 증명이라고 하기 힘들 것이다.

서양의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치료법을 발전시켜왔기에 과학적인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의학의 입장에서 과학적 방법론은 곤란성을 떠나 유용성 자체가 의문시 되는 경우가 많다.

진단과 치료를 의술의 두 중요한 영역으로 볼 때 한의학에 있어서는 치료법은 이미 주어져 있고 문제는 진단이다. 즉 다양한 처방중에 이 환자의 여러 징후를 살펴 어떤 처방이 가장 적합한지를 밝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이 부분에서 치료법을 증명해보아야 한다고 하겠지만 한의학으로서는 현실적으로 과학적 증명도 곤란하고 유용성도 없다.

처방이라는 것이 예를 들면 기허, 신음허, 비습 등을 조절해주는 것인데 이의 객관적 검증이나 증세와의 연결은 위에서 논하였듯이 곤란하다. 옳은 것으로 경험적으로 증명되온 상태에서 과학적 검증은 결국 '아니다'의 검증이 될 때에만 유용하다. '아니다'로 검증됐다고 할지언정 이러한 증상은 이런 원인에서 오는 것으로 파악해 이런 처방을 사용했는데 따져보니 그런 원인이 '아니다'로 해석하겠고 문제는 다시 처방의 효과성보다는 진단의 문제로 돌아간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그런 것을 보여준다. 이제마가 발견한건 똑같은 환자에 똑같은 처방을 사용해도 환자마다 효과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서양의학적 관점에서는 대상수를 늘려 정확한 검증으로 처방의 효과여부를 따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마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그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고 파악했다. 즉 치료법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진단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단은 다시 한번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되기 어려운 의사 개인의 숙련도 문제로 환원된다. 체질판별이 한의사마다 달라 비난을 받는 것도 이러한 연유이고 그렇다고 혈액형 검사하듯 검증할 수도 없다.

치료효과는 환자 본인이 아는 것이라는 나의 주장에 대해 한의학으로 치료를 못보면 한의학은 엉터리로 보냐고 물었다. 물론 한의학으로 치료를 못보았다고 한의학 전체가 엉터리는 아닌 것이다. 이제마가 기존의 치료법이 맞지 않아 고생을 하면서도 한의학 전체를 엉터리로 보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페니실린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 해도 소위 '페니실린 쇼크'라는 것이 발생하면 나한테는 틀린 치료 아닌가. 그렇다고 페니실린의 치료 효과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한테는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모든 통계는 오차 허용범위가 있고 오차가 그 범위안에 있는 한 통계적 증명은 연구자에게는 타당하다. 하지만 대상자로서 내가 바로 그 범위안의 오차라면 증명이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마 또한 태양인은 만명에 삼,사명에서 십 여명일 뿐이라고 했다. 통계적으로 보면 0.001%인데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제마는 본인이 태양인이어서 그렇겠지만 그 다름에 주목했다.

한의학은 이런 개인의 고유성과 전체성에 주목해왔다. 그래서 통계적 검증보다는 한 인간을 제대로 진단해내 주어진 처방을 활용하는 방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처방의 검증보다는 주어진 이론적 사유의 틀 속에서 한 인간의 온전한 파악이 중요한 것이고, 또한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이론적 사유의 틀이 변하기도 하였다.

* 과학적 잣대만이 최고인가
영어실력을 정확히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측정 지표를 마련하여 통계적 방법을 활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방법론에 입각한 것이 TOEIC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TOEIC실력과 영어활용능력이 별개인 경우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소위 점수만 높은 경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말하는 능력을 문자 시험으로 판단하기 곤란한 면도 있지만 한 인간의 외국어능력은 언어지식 이외에도 다양한 측면이 있다. 배짱, 사교능력, 풍부한 화제, 유머, 논리력 등도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외국어 공부하다보면 뼈저리게 느낀다.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전부 객관적 지표화하여 측정할 수 있을까? 오히려 면접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 쉽다. 전문가는 척보면 안다고 숙련된 면접자는 짧은 시간의 면접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파악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주관적인 오류의 가능성이라는 문제는 남지만 이 방법이 오히려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

장황하게 영어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의학에서의 진단도 이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은 정밀한 진단을 위해서 점점 고가의 첨단 장비를 개발하고 있지만 한의학에서는 여전히 의사의 숙련도에 기대고 있다. 요즘은 한의원에서도 기계식 맥진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전부로 여기는 한의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참고자료일뿐 진맥은 직접 해보아야 한다.

만인의 맥을 잡아보아야 제대로 맥을 잡을 수 있다는 말처럼 진맥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지표로 양화되어 측정될 수만은 없는 질적인 요소들이 있다. 또 그러한 요소들은 문자화되서 전해질 수 없는 경험적인 깨달음의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서양의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차트가 드러내는 것만 보는 의사와 그 이상을 읽는 의사의 차이는 결국 경험의 차이이고 또 거기에는 객관화시켜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의학 드라마를 보면 흔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는 대사를 접한다. 왜 과학적으로 증명된 치료를 사용하는데 장담하지 못하는가. 아마 환자의 병의 진행정도, 몸의 상황 등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의학이 이론과 현실이라는 측면을 다소 분리해서 전개되어 왔다면-그래서 과학이 가능했고, 한의학은 마음상태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연결되고 변화하는 몸의 현실을 직접 대상으로 한다는 데서 객관적 양화의 곤란성이 있고 또 그것으로 기록되지 못하는 질적인 요소를 더욱 중시해왔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학은 약물의 과학적 연구를 위해 동물실험이 가능하고 그 결과가 유용하지만, 한의학에서 가미온담탕을 생쥐에게 먹여 검증하려 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기인한다.

* 도식적인 비판인가
도식적 비판이라 함은 이론적인 비판일 뿐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함을 말한다. 통계화, 양화, 객관화가 효율적인 만큼 그 문제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한 과학적 방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서양의학이 현실에서 그러한 문제점들과는 관련이 없는지는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잘 모르고, 그런 면에서 도식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언급한 한의학 내용도 전문성의 부족으로 지나친 단순화와 비유로 인해 빈 구멍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학은 원인에 치중하고 한의학은 전체적인 상황을 본다는 것도 경향성을 언급한 것이다. 서양의학이라고 환자의 전체상태를 안보고 한의학이라고 병의 원인을 보지 않겠는가. 한의학이라고 진단문제만 고민해 온것도 아니고 서양의학이라고 진단과 분리된 치료법만 연구해온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콧병에 코를 위주로 보는 경우와 장부의 문제를 우선 보는 경우는 분명히 다른 경향성이 있다. 또 그러한 다른 경향성에서 각각마다 장단점이 있을 테지만 서양의학은 단점에서 한의학은 장점의 측면에서만 언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면이 논쟁의 생산적 진행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소통
한의학은 분명 주요한 부분에서 서양의학과 다르다. 다르다고 해서 과학적 방법이 적용이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적 검증이 가능하고,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의술이 발전이라는 것이 낯선 것을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데서 있다고 생각할 때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가능한 부분만 사용하고 검증이 안되는 부분은 폐기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한의학의 발전이 아니라 왜소화하는 것일 뿐이다. 과학화가 한의학의 풍부한 내용들을 제약하는 것이라면 과학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서양의학에서 한의학을 참고하고자 한다면 검증은 서양의학의 몫이지 한의학에 요구할 것이 아니다. 미국의학이 중국침술을 연구할 때 중국보고 '과학적으로 증명해봐' 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효과가 검증되었다고 해서 사용하고자 한다면 어차피 과학의 언어로 번역되어야지 서양의사가 기허니, 담음이니, 비습이니 하며 사용할 수 또한 없지 않은가.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소통을 수단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2002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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