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홍재경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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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주] 본인이 처음 하니리포터에 동양의학에 대한 기사를 쓰게된 것은 논쟁의 형식이긴 했지만,궁극적으로는 의료소비자인 대중(네티즌)에게 동양의학에 대한 좀더 넓은 이해를 구하는 뜻이었습니다.교육의 탓이고 더 정확하게는 제도와 정책의 탓이지만 몇차례의 연재 과정에서 동양의학 종사자로서는 많은 반성할 점이 있음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양의학의 소갈병(당뇨병)치료와 노벨의학상'
이런 생각도 해봤지요.
"만약에 동.서의학의 사회적 위상이 지금과 반대로 정립되었다면 서양의학 측에서 자신의 존재 근거로나 필요한 '과학적 증명'이라는 잣대를 그렇게 획일적으로 들이대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과학적증명'이니 뭐니 하는 말도 나오지 않았겠지요.
서양의학의 이러한 오만한 태도는 한국에서도 서양의학 종사자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거의 맹목적이라 할 만큼 과학절대주의에 바탕한 저들의 주장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그 또한 동,서의학 종사자들간의 어쩔수 없는 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이고 어쩔 수 없는 우주관과 세계관의 차이랄까? 인체에 대한 이해의 다름에서인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 대상으로 해서 존재한다는 공통점이외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의식세계에 살고있는 의료인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마음을 연 배움의 자세는 필요할망정 서로에게 도움이 될 논쟁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제 결론입니다.
동.서양의학쪽 주장이 어떠하든지 이 '논쟁같지 않은 논쟁'을 지켜본 많은 의료소비자들은 이미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으리라고 보며, 이런 어설픈'논쟁'은 필요없지만 의료 소비자들을 위한 공정한 '경쟁'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의료소비자는 질병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과 비용면에서 유리한 쪽을 선택할 뿐이지 어느 의학의 존재 근거가 철학이냐, 과학이냐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해 보입니다.본인의 칼럼은 네티즌의 동양의학 이해에 도움이 되고 그들의 선택가능성의 확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몇 차례의 기고와 그에 대한 반응(특히 서의학쪽)을 보며 한국에서의 동,서의학간의 관계는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지금과 같은 불신과 대치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그 책임이 어느 쪽에 있든지 결국 이런 상황의 궁극적 피해자는 의료 소비자들이며 (의학의 주인이 국민대중이라면) 이런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것도 대중의 역할에 의해서이리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는 어느 한 쪽 의학이 흉내낼 수 없는 탁월한 효과를 체험한 후에 그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친 신봉자도 있을 것이고,그 반대로 양쪽 모두로부터 서로 다른 만족한 치료효과를 체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양쪽 모두로부터 경제적 편취(?)를 당하고 "의사는 면허낸 xx놈들"이라는 배신감과 분노에 찬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위에 언급한 그 어떤 경우든 그럴수록 자신만의 만족이나 체념에만 그쳐서는 않되리라 생각합니다.
의료 분야야말로 소비자의 각성과 함께 정부의 중립적이며 공정한 심판자적 자세가 더 절실히 요구됩니다.그 요구가 의료제도 일반에 대한 개혁과 함께 동.서 의학의 병립,균형발전을 위한 제도의 확립으로 이어진다면 그 최종 수혜자는 국민대중이 될 것입니다.
동양의학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와 인재만 확보되면 실로 무궁무진의 보화이며,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무한의 자원이기도 하다는 것은 정책 당국에도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그 중요성에 눈돌리는 정책이 없었고,제도가 없었던 것이 지금의 의료소비자로서 국민들이 겪는 불편이며 경제적 손실이라면 그 잘못은 빨리 시정될수록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쟁 중 가끔 등장하는 말이 "동양의학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면, 노벨상도 받겠다"는 말이었는데 이 말은 실제로 필자가 당뇨병 치료와 관련하여 어느 환자분으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느 한의사가 동양의학의 이론이나 운영체계를 비범(비방<秘方>이 아님)하게 활용하여 임상에서 서양의학이 규정하는 난치, 불치병을 완벽하게 고쳤다고 해도 그것이 1회성이 아니고 반복적이며, 그 한의사만 찾으면 동종의 질병은 90%까지 치료된다 하더라도(더하여 그 치료법의 비범함을 다른 한의사들에게까지 전파해서 거의 모든 한의사들은 그 병을 당연히 고친다 하더라도) 그 치료법을 처음 창안한 한의사나(혹은 동양의학자)도 노벨의학상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과학적 '검증`이고 '증명`인 것이며 서양의학의 과학성이 패러다임으로 지배하는 현실에서 동양의학이 부딪히는 벽이기도 한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벽이 오히려 동양의학으로 하여금 동양의학다운 자리,스스로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양의학이 현대 불치병의 하나로 여기는 당뇨병(糖尿病)이 동양의학에서는 고대로부터의 소갈병(消渴病)이라는 병명과 유사한 증세이고, 이미 그 자신의 다양한 진단과 치료 방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주증(主症)에 따라 상소(上消), 중소(中消), 하소(下消)로 혹은 폐소(肺消), 위소(胃消), 신소(腎消)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다시 상소가 대략 3가지 증형(證型), 중소가 대략 2가지 증형, 하소는 음허(陰虛),양허(陽虛)로 나뉜 상태에서 다시 각기 3가지 증형으로 최소 12가지 증형으로 분류되며 이런 증형에 따라 사용될 수 있는 방제는 13미(味)의 약재를 포함하는 현대적 소갈방(消渴方)으로부터 2미(味)의 약재만 쓰는 고방(古方)인 황기육일탕(黃耆六一湯)에 이르기까지 약 25 방(方)이 됩니다.
여기에 증세에 따라서는 겸증(兼證)이 발생하고 증세에 맞추어 두가지 이상의 방(方)을 가감(加減) 해서 쓰는 겸방(兼方)의 경우가 많다보면, 소갈병(당뇨병)이라 는 하나의 병명을 가진 질병에 대해 동양의학에서 치료를 위해 만들어서 쓸 수 있는 약물을 엄격히 분류한다면 최소 25종류에서 최대 수 백 종류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시 한의사 개인의 경험이나 성향,선호하는 학설에 따라 다르게 운용되고 침,추, 뜸, 부황 중에 하나 혹은 둘이 겸해진다 하면 소갈병(당뇨병)이란 하나의 병명을 가진 질병에 대한 치료법 역시 수 백가지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약이 있고 치료법이 있으니 환자와 의사의 투병 의지와 신뢰만 있으면 시간은 걸려도 치료가 되는 소갈병(당뇨병)이지만 천 사람, 만사람 모두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약과 치료법으로는 '데이터'와 '통계'를 그 심사 수단으로 삼을 '노벨의학상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에 동양의학의 어떤 찬란한 업적도 노벨상 수상 여부로 평가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질병 치료에는 환자와 의사의 협조라는 변수가 가장 중요하지만,우선 그것은 제외하 고 상기 당뇨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는 병명을 중시하는 서양의학의 거의 일률적이고 단순한 과학적 방법과는 달리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는 '증세'를 중시하는 동양의학에는 얼마나 다양한 방법과 일률적 잣대로는 측정 불가능의 변수가 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소갈병(消渴病)이라 명명 되는 하나의 질병이
1. 주증(主證)에서 上,中,下(消)로 나뉘어 (제1변수)
2. 증형(證型)에서 다시 12증형으로 나뉘고, (제2변수)
3. 여기에 쓰일 수 있는 방이 약 25방(方) (제3변수)
4. 약제종류가 약 80 미(味) (제4변수)
5. 매 환자마다에 쓰이는 방(方)과 약재가 다르며, (제5변수)
6. 주증이 겸(兼)할수있고, (제6변수)
7. 증형이 겸(兼)할수있고, (제7변수)
8. 두 가지 이상의 방(方)을 겸해서 사용할 경우가 있다. (제8변수)
9. 한사람의 환자에게라도, 약물은 매번 약을 쓰는 순차마다 다르다. (제9변수)
10. 한의사마다 경험과 선호하는 학설에 따라 애용하는 방제나 약재가 다를 수 있다.(의사의 경험 자체가 측정 불가능 이다)
11, 하나의 방(方)도 각개 약재의 사용량에 따라 다른 약리작용과 효과를 낳는다.(일률적 측정이 불가능하다)
12, 어떻게 용약 이외의 다른방법( 침, 뜸, 추나, 부황등)을 겸(兼)할 것인가?(이것이 미치는 상승효과도 일률적이지는 않으나 상당하다.)
...는 등등인데 여기서 과학이 '설명`이나 '증명`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인가? 그 불가능의 한 예로 현대의 첨단의 과학적 방법으로도 대표적 약재중 하나인 인삼의 성분을 이미 수십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완전히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그럼에도 인삼(人蔘)을 식품이나 약재로 사용 못하지는 않습니다.
노벨의학상 심사위원 중에 동양 의학자가 포함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있다하더라도 위의 경우에 무엇을 기준으로 심사할까 궁금해집니다.현대 과학과 서양의학이 불치로 규정한 당뇨병(소갈병)이라는 병이 지금도 곳곳에서 동양의학에 의해 치료되고 있건만,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과학이 지배하는 현실 상황 때문이며 환자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은 필자에게 소갈병(당뇨병)의 동양의학적 치료 가능 여부를 문의해 오는 환자분들에게 (위와 같이 상세하게 예를 들거나 분석하지는 않지만) 치료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되풀이하는 설법입니다.
몇년째 식이요법에 열심인 어느 환자에게 동양 의학적 방법은 그렇게 극기(克己)라고 할 만큼의 자제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동양의학 그 나름의 방법으로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자연스레 당뇨병을 고친다고 설명을 하자 "그럼 당신도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구먼" 하고 돌아온 냉소를 잊지못해 다듬어본 생각입니다.
그는 지금도 당뇨병을 앓고 있고 필자의 설명을 이해한 사람들은 병이 나아 정상적인 생활들을 향유하고 있습니다.역시 과학적 검증과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와 신뢰의 문제인 것입니다.
'만약'이라는 전제로 이런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동양의학이 인류의 건강에 공헌할 수 있는 가능성의 1/100이라도 인지한 총명한 노벨위원회가 있어서 동,서의사를 막론하고 당뇨병 환자를 일정 수 이상 확실히 치료한 의사를 추천받아 일정 기간 동안 제일 많은 환자를 치료한 의사에게 상을 수여한다'
아마 당뇨병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고 새로운 형식의 심사를 하는 노벨상에 도전하려는 동양의사들이 많을 것입니다.
동양의학의 품속에는 소갈병(消渴病) 이라는 병명과 함께 치료법과 약(藥)도 수많은 방법과 자료로 동양의학 나름의 도리(道理)에 따라 분류되어 있었고 활용되고 있었음에도 이것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비단 소갈병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양의학의 보화들이 그 가치를 빛내줄 인재들을 기다리고 있고 그들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할 책무가 정책과 제도를 입안하는 쪽에 있는 것입니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는 그 인재들이 갖춰야할 기본적 사유방법은 논리적, 과학적, 객관주의적이기보다는 직관적, 정신주의적, 주관주의적이어야 하고, 그렇게 교육, 훈련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또 기억력이나 분석력보다, 이해력과 창의력이 더 중요함에도 동양의학이 존재하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육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여 안타깝습니다.
[필자주]하니리포터 기사와 기사에 대한 의견들을 읽으며 필자는 다음의 두가지 점을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1.동양의학의 소위 과학적 '증명'이 아닌 '설명'은 시간을 요할 뿐이지 자연스레 가능하다는 점입니다.그것도 과학 자신의 타성과 필요에 의해서겠지만, 아마 그 때부터 동,서의학의 병립(倂立)과 협조가 가능할 것입니다.
이 결론에 대한 관심이나 의문이 있으신 분은 다음의 책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어느 한의대생의 '기다리자` 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1981년 재판당시는 汎洋社 펴냄)
2.논쟁에 참여하는 서의사 분들은 개별적으로 과학절대주의자인지 과학회의주의자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논쟁의 한 상대로서 역할하고 있음에도) 제 3자로서 혹은 의료소비자로서 논쟁에 참여하고 계신 하니리포터 윤여동 기자님 만큼도 동양의학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과학적 마인드와 논리를 무기로 동양의학의 비과학성을 폭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뿐이지,한의대생이나 일반인들이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나마 갖추고 있는 서양의학이나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만큼도 상응하는 동양의학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좋게 평해 호기심의 차원이라고나 할까?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논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그런 상황에서는 애초부터 동,서의학간 서로에 기여할수 있는 논쟁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2002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