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열님이 한의학계의 일련의 반박에 다시 비판을 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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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과 의학에 대하여 게시판을 통하여 많은 분의 의견에 감사드리며, 나타난 쟁점에 대해 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침술마취와 뇌수술
게시판에서 침술마취로 환자가 의식이 있는 채로 대화를 하면서 뇌수술을 했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로 T.V.에서도 방영이 되었다고 하나, 저로서는 보지 못했고, 이에 대해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그 침술을 시술하고, 뇌수술을 한 분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없으나 의학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신기하거나 신비로울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뇌와 통증의 생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환자가 의식이 있는 채, 뇌수술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며, 실제로 과거, 응급상황이고 마취가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이러한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두피를 제외한 두개골과 뇌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진통만이 마취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공포, 움직임, 수술을 하는 의사들의 입장, 기타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마취를 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이롭기 때문에 마취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환자가 의식이 있는 채로 뇌수술을 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대단히 위험하기 때문에 마취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신기해 보이거나 신비로와 보이는 것도, 과학의 눈으로 보면 당연한 것이 있습니다. 침술마취로 환자가 의사와 대화하면서 수술을 하였다는 것도 신비해 보일지 몰라도 과학과 의학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며, 만약 이러한 수술이 침술 마취로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 의사, 한의사는 뇌와 통증의 생리에 대해 모르거나 알면서도 신비롭게 보이게 포장했다면 사기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2. 의학, 한의학, 서양의학이라는 용어 문제.
의학을 서양의학이라고 해야 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을 서양에서만 한다면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현재 현대 의학은 세계적으로 사용되며 통일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현대의학이 서양에서 크게 발전하였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의학입니다. 또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입증된 진료라면 어떤 진료 방법도 받아들이는 것이 의학입니다.
한의학이든, 티벳의학이든 아유다베타 의학이든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입증된 진료라면 지역이나 국가에 관계없이 의학은 받아 들입니다. 과학과 의학은 증명에 의한 보편성을 지향하는 의학입니다. 그러므로 의학을 서양의학, 혹은 서의학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3. 기(氣)의 실체에 대해
기의 실체를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 하고 묻는 다면 간단히 말해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현재로서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과학적 회의주의, 과학적 방법론에 따르면 '신은 있는가? 없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신은 있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고, 없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이를 과학적 회의주의에서는 반증가능성이라고 합니다. 이 문제는 과학적 회의주의를 다룬 책이나 저번에 소개한 "수학 없는 물리"라는 책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적 방법론의 의학에서는 '기를 믿는가? 안 믿는가?' 하고 묻는 질문 자체를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기를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는 과학의 대상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즉 기는 아직까지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동어반복이므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과학은 과학의 대상이 되는 것만을 취급합니다. 즉 물질과 물질사이의 관계만을 과학의 대상으로 봅니다. 기가 물질이거나 물질사이의 관계라면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는 물질이거나 물질사이의 관계임이 증명된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학과 의학의 입장에서는 인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것이 '기'입니다.
4. 검증에 대해.
한 분의 한의대생께서 오랫동안 이용해 왔다는 것으로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과 현대 의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 이후 수 천년간 진리로 믿어온 의학의 학설에 대한 검증으로 많은 학설을 폐기했습니다. 자연발생설, 병이 신의 형벌이라고 믿어 온 것, 체액설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학설이 폐기되었습니다. 더구나 과학적 방법론이 의학에 도입되기 이전에 중세 유럽의 의학사를 보면 한의학과 유사한 이론이 수없이 많습니다.
의학과 과학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검증만을 요구 할뿐입니다. 이 검증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증명입니다. 과학과 의학에서 증명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통계이며 하나는 과학적 방법론입니다. 우연에 의한 치료효과, 그리고 질병의 자연 경과에 의한 치료효과를 배제하기 위해 의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이 통계학이며, 통계학은 우연과 관찰자나 실험자의 편견과 선입관을 배제하기 위한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이중검증, 유효 샘플 추출법, 통계학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없는 가를 검증하는 방법들 모두 일차적으로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저로서는 한의학에 가지는 관심은 한의학의 어떤 진료, 치료방법이 유효한가? 현대 의학보다 나은 가를 알고 싶어 할 뿐입니다. 물론 의학과 과학은 예를 들어 이러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치료법에 대해 과학적 방법론으로 다시 규명합니다.
열 명의 같은 질병의 환자 중에 동일한 약물로 10명이 모두 나았다고 하여도 통계학적으로는 검증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의학 통계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그 약물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할뿐입니다. 왜냐하면 우연에 의한 치료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약물이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하게 말하면 최소한 30명의 환자에게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대조 실험을 합니다. 즉 다른 약물(플라시보를 흔히 투여합니다.)을 투여한 사람과 치료효과를 검증하려는 약물을 투여한 사람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중 맹검 실험을 합니다. 즉 실험자, 피실험자 모두 어떤 약물을 투여하는 지 모르게 한 다음 효과를 검증합니다.
이 정도 검증을 거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 다음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이론적 규명에 들어가기 위해 실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한의학에 묻는 것은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효과를 검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규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통계학에 의거한 치료효과의 검증에 대해 묻는 것입니다.
이 글의 처음에 언급한 침술로 마취를 하여 환자와 대화하면서 환자의 뇌수술을 하는 것이 침술의 효과인지 아닌지는, 침술로 마취를 하지않고 수술한 사람과 비교하여야 효과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언듯 보면 신기해 보여도 대조군을 설정하여 효과를 검증하여야 어떤 시술이나 진료가 효과가 있는지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조군을 설정하고 이중 맹검 실험을 하는 것은 그 다지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전세계의 수 많은 의학 논문이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규명 이전의 검증 방법인 통계학을 이용해 검증을 한 논문입니다. 그러므로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말은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30명의 환자에게 대조군과 비교해서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만 증명해도 일 단계에서는 치료 효과가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5. 한의학에 대한 입장.
한의학에 대한 저의 입장을 알고 싶다는 분도 계셨고, 의학 우월주의가 아니냐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로서는 이러한 물음 자체가 토론의 본질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직 효과입니다. 한국에서 의학과 한의학은 서로의 효과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서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고 효과가 있는 진료 방법에 대해 알고 싶을 뿐입니다.
게시판에서 한 분은 진맥을 통해 임신 3개월 이상이면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응급실 의사로서 가임기 여성의 임신여부가 진료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응급실에서는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최소한 10분 이상 걸립니다. 비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임신 여부를 진맥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의학계에 혁명적인 변화도 가능합니다.
저로서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벨 의학상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검증 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단지 통계만 이용해도 되는 검증 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른 한의학계의 한의사, 한의대생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한의학계의 주장, 의학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주장에 대해 저는 검증 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우월감이 있는지 열등감이 있는지,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는 토론과는 관계없는 내용이지만 굳이 답변을 하자면 저로서는 한의학에 대해 아주 우호적인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한의학을 하는 분들과 같이 집담회를 자청해서 하기도 하였고, 협진에 대해서도 최대한 협력을 하려고 하는 의사입니다. 우연히 전문의로 근무한 병원들에 모두 한방이 있었고, 저로서는 한방 진료에 적극 협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우호적인지 아닌지는 과학적으로-통계적으로 검증된 것이 아니기에 이는 저의 생각 일뿐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한의사 선생님들의 말에 따르면, 저는 비교적 한의학에 가장 우호적인 의사인 듯 합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으시면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한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또 저로서는 한의학에 대해 우월감도 열등감도 없습니다. 토론의 본질과도 관계가 없지만, 우월감, 열등감이 있는지 없는지도 검증을 해보아야 가능합니다. 부디 앞으로는 이러한 비본질적인 문제로 토론의 주제가 흐려지고 지엽말단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6. 과학적 의학과 검증, 도그마.
또 의학과 한의학의 대표성 문제에 대해서 한의학계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저의 의견을 의사들 대부분의 의견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저의 의견이 모든 의사들의 의견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의학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의 의견은 큰 줄기, 즉 검증과 과학적 방법론, 통계적 검증에 대한 생각은 저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큰 줄기에서 벗어나면 과학적 의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학을 떠나서라도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과학에 있어서는 공통입니다. 오직 증명에 의하여 주장하는 것. 이것이 과학과 과학적 의학의 입장입니다. 이것이 도그마라고 주장하는 분에 대해서는 무엇에 근거하여 주장하여야 도그마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과학의 역사, 과학적 의학의 역사는 증명에 의하여 수많은 도그마를 깨어 온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증명에 의하지 않고 옳다고 주장하는 하는 것을 과학에서는 도그마라고 합니다. 도그마가 무엇인지 과학과 과학적 의학을 도그마라고 하는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학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증명이 곧 과학입니다. 증명없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도그마 입니다. 과학에서 증명없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정 받지 못합니다. 도그마이기 때문입니다. 또 과학의 대상이 아닌 것을 과학으로 해석하는 것도 도그마로 봅니다.
[필자주]* 하니리포터에 실린 저의 모든 글은 카피레프트에 준하여 어떠한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인용, 전재 할 수 있습니다.
(2002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