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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재경 선생님의 "도리"'자연의 도(道)와 생명의 이치(理致)`
홍재경 선생님의 말에 동의 할 수 없는 표현이 '도리에 역행하는 서양의학은 존재할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서양의학은 과학을 토대로 성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란, 일반적으로 말할 때는 자연과학, 즉 과학적 방법론에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란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자연과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연 과학은 자연 현상, 즉 물리, 화학, 생물 현상을 이해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따른 지식의 체계입니다. 이러한 자연 법칙을 규명하는 과학의 토대 위에 있는 의학이 자연의 도와 생명의 이치에 역행하면서 존재할 수 있다는 표현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의학의 과학적 방법론이 자연의 도와 생명의 이치에 역행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논리적으로 자연 법칙에 역행하는 것은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 법칙이란 말 자체가 이미 자연 법칙에 역행하는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와 존재사이의 현상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 법칙이라면, 이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오히려 과학적 의학과 과학이야말로 철저히 자연법칙을 탐구하고 아는 방법입니다.
2. 의학도 과학도 자신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의학과 과학은 아직 진행중입니다. 어떤 과학자도 자연 법칙을 모두 다 안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진정한 과학자는 회의주의자입니다. 의심하는 자입니다. 오히려 저는 동양철학이나 신학이 자신을 절대화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과학은 어떠한 절대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과학은 과학적 대상만을 가지고 탐구하기에 절대자나 신은 있다고 증명될 수도 없고, 부정 될 수도 없기에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3.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 법칙을 탐구하는데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혹은 유효한 다른 방법이 있다면 이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학적 방법 이외에 존재하는 것, 즉 사물과 사물간의 현상사이에 있는 법칙인 자연 법칙을 연구하는데 과학적 방법 외에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물론 과학의 대상이 아닌 문제에 과학의 방법론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의 대상이 아닌 것에서는 저 또한 영성을, 혹은 노자 도덕경의 "도"를, 불교의 깨달음을 믿고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성이나 도, 깨달음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기에 과학적 방법으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영성이나 도, 깨달음이 과학과 일치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단, 믿을 뿐이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믿음과 영성,도,깨달음을 과학적 방법으로 알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것입니다.대상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대상이 다르면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벼를 베는 데는 낫을 사용하지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듯이 영성이나 도, 깨달음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기에 과학적 방법론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믿음에서는 인간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존재를 탐구하면 마침내, 멀고 먼 미래에서는 영성과 도,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대상인 사물과 사물사이의 관계를 믿음으로 해석하는 것도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며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인간의 질병은 과학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병은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의학에서도 마음으로 인한 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도 스트레스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문제일 뿐 모든 질병은 자연계의 자연법칙과 같은 법칙으로 존재하기에 과학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이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과학과 의학의 역사로 충분히 증명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결핵의 원인이 결핵균이며, 이는 대개 위생이 불량하거나 면역이 약한 사람에게 잘 생기며 이에 대한 치료는 환자의 건강-체력을 증진시키면서 항결핵 화학 요법이라는 것은 과학과 의학이 발견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결핵 환자가 완치되었고, 유럽과 미국에서는 결핵이 거의 박멸되다시피 하였습니다.
또 미국의 경우, 항생제가 발견되기 전, 영유아의 사망원인 1위는 폐렴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생제가 등장한 이후 폐렴은 영유아 사망 원인의 10위 안에도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20세를 채 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영유아기를 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영유아 사망률이 심지어 50-70%를 넘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태아로 7개월 이전에 태어난 미숙아는 거의 100%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인큐베이터와 영유아 관리를 위한 의학의 발달은 5개월 된 미숙아도 살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과 의학의 공헌입니다. 이러한 공헌을 이룬 과학적 방법보다 더 좋은 자연 법칙과 질병에 대한 탐구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4. 홍재경 선생님은 실제 증례를 가지고 한의학의 치유효과를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인정할 수가 없는 증례입니다. 이유는 우연의 효과와 병의 자연경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홍재경 선생님처럼 예를 든다면 저도 한의학에서 치료가 안된 환자가 저의 치료로 호전된 예를 얼마든지 들 수가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여 홍재경 선생님이 말씀하신 증례가 그대로 두어도,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아도 호전될 수 있는 병이 아니란 것을 어떻게 증명하실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간질은 대부분 일단은 저절로 멈춥니다. 예외로 지속성 간질이 있습니다만, 이는 예외로 합니다. 물론 발작 중이라면 의사라면 당연히 일단 간질 발작을 멈추게 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 원칙입니다. 장시간의 발작으로 인한 뇌손상의 위험성 때문에 일단 간질 발작을 억제하는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간질은 스스로 멈추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질 발작 중에 어떠한 치료를 해도 결국은 멈추게 되는 것을 치료효과로 보는 것은 우연의 효과나 병의 자연 경과를 치료효과로 보는 것에 불과 할 뿐입니다. 또 비슷한 예로 손이 오그라들면서 손발이 마비된다고 하여 흔히 응급실에 오는 전환장애가 있습니다. 이 병도 마찬가지로 그대로 두면 풀리게 됩니다.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필연적으로 거의 100% 낫게 되는 병입니다. 물론 재발은 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99%는 수 시간 내에 마비가 저절로 풀리는 것입니다.
또 충수돌기염(맹장염)도 수술을 하지 않고 자연경과로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충수돌기염이 자연경과상 저절로 낫게되는 충수돌기염인지 알 수가 없고 만약 터진 후 복막염이 되면 생명이 위태롭기에 일단 충수돌기염으로 진단이 되면 모두 수술을 하게 되는데, 자연 경과상 낫게 된 소수의 예를 가지고 간혹 종교인 등이 기도로 충수돌기염을 낫게 했다는 사이비 신앙 간증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의학은, 치료 결과에 대해 우연의 효과인지, 병의 자연 경과인지, 치료 효과인지를 먼저 검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에 있어 통계와 실험은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과학적 방법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의학에서의 치료법이나 진단법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쳐 확립된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재경 선생님의 증례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란 증명을 어떻게 하실지 궁금합니다.
(2002년 10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