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니리포터 김승열님이 2002년 경에 쓰신 일련의 한의학 비판글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들은 한의학 비판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글들로서 가히 '문화유산'이라고도 할만해서 보존겸해서 이 토론방에 올립니다.
참고로, 김승열님은 이 토론 이후 한의학에 대해서 더욱 강경한 비토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 정당성은, 당신이 합리주의자라면 논쟁과정을 끝까지 살펴보셨을때 이해하실 수 있을것입니다.
p.s : 아래 글 제목을 클릭하면 하니리포터 원문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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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과학 연구소에서 번역한 동의보감을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서양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한국의 한의학, 동의학의 집대성이라고 할 동의보감에 어떤 내용이 있는가에 대해 늘 궁금했습니다.
길거리 판은 거의 민간요법 소개 수준이어서 원전을 보고 싶지만 한문의 능력이 모자라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차에 반가운 마음으로 구해 처방은 대강 넘어가면서 한의학의 원리에 대한 글을 중점으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무려 10년 간의 원전 강독을 통해 3천개의 역주를 단 동과연에서 펴낸 동의보감은 그 성실한 연구로 동과연 판 동의보감에도 소개한 북한판 동의보감의 대중성과 쌍벽을 이룰 한의학, 중근세 동아시아 의학, 의학사 뿐만 아니라 도교와 철학의 연구에 더 할 나위 없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한문 원전에 접근이 어려워 의학사 연구에 장벽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한국의학사의 저술이 중근세는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었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번역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의학사나 의학사상을 연구하는데는 필수 자료가 될 것은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나아가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 일색이었던 양반 지배층의 사상과 대비하여 도교 사상이 어떻게 일반인, 즉 중인 신분이었던 조선시대 의원들의 세계관에 반영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책입니다.
책의 내용이나 번역 의도, 번역의 문제점, 가치 등은 이미 여러 언론에서 다루었고 동의보감 번역 자체에도 소개하였기에 덧붙일 말은 별로 없습니다.
이 글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면서 동의보감과 한국 한의학에 던지는 질문입니다.더 자세히 말하면 한의학=동의학과 의학=서양의학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는 동의보감을 읽으면서 느낀 첫 번째 의문입니다. 과연 현재의 한의사들은 동의보감의 세계, 즉 동의보감에 기술된 체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분명히 인간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점에서는 의학이나 한의학은 같지만 구성 원리, 진단법, 치료 방법에는 커다란 차이, 다름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다름을 먼저 서로 이해하기 위해 동의보감을 읽고 던지는 질문입니다. 한의학에 대한 무지로 인해 한의사라면 기초 상식일 질문이라 할지라도 대화를 위한 질문으로 이해해 주시고 이 글에 대한 응답이 나오고 이로 인해 너무나 서로에 대해 모르는 서로의 입장 차이에 대한 다름을 먼저 확인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로서는 이 글의 1차 목적은 다름이 있는가? 다름이 있다면 그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한의학과 의학의 갈등의 문제에서 저로서는 제일 큰 문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보감의 출간을 계기로 동의보감에 기술된 내용을 토대로 한의학계에 앞으로 몇 번에 걸쳐 의사로서 질문을, 혹은 스스로 느끼는 다름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질문. 술이부작(述而不作)과 술이부정(述而不定)
동의보감 (동과연 번역의 동의보감을 뜻합니다.)의 편찬에 대해 동과연은 허준의 동의보감이 술이부작(述而不作= 옛사람의 글을 풀어 쓰되, 새로 짓지 않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술이부작은 공자 이래로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곧 앞선 사람의 저작에 대해 새로운 의견을 말하지 않음이며, 옛날의 유토피아에 대한 절대적인 귀향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유교 사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반대로 과학을 지향하는 서양의학은, "수학 없는 물리" (Paul Hewitt 저, 원본은 'Conceptual Physics' 박홍이, 엄정인 외 번역)의 서문에 나오듯이 어떠한 권위자의 권위 있는 의견도 과학적 방법에 의해 틀리다면 부정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술이부작에 견주어 말하면 곧 술이부정(述而不定)입니다. 한의학은 동의보감의 기술이라고 하는 술이부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부정할 것은 부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의사의 입장에서 아무리 보아도 이해 할 수 없는 내용이 동의보감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은 수도 없이 많지만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든다면 1481 쪽에 노채충(의학의 입장에서는 결핵을 포함한 각종 소모성 질환이나 기생충 질환, 전염성 질환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의 모양을 쇠똥구리, 말총, 두꺼비, 고슴도치 모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인체 내의 기생충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떠한 미생물도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과연 이러한 기술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또 이러한 기술에 대해서도 현재의 한의학계가 동의보감과 같이 술이부작의 입장인지 물어 보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만약 한의학계가 '술이부작'이라면 서양의학과의 근본적인 차이의 하나가 바로 '술이부작'과 '술이부정'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는 한의학의 인문학적 입장에 대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그리고 극히 사소한 옥의 티를 하나 지적하면, 동과연 게시판에도 알렸지만 동의보감 역자서문 앞 쪽에 편찬위원회와 동과연 소개가 있고 마지막 줄에 동과연 홈페이지 주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주소로 되어 있습니다.
다음 판에는 사소한 차이지만 동과연을 찾는 분들을 위해 수정되기를 바라며.마지막으로 도교, 의학, 의학사, 과학사, 동양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필독서로 동과연 판 동의보감을 권하고 싶습니다.
[필자주] 이 글은 동과연 게시판이나 인터넷 서점 서평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2002년 10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