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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변희재] 월장 토론회 이후, 아직도 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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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07-10-11 08:29     Hit : 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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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장 사태와 관련 변희재가 대자보에서 진보진영쪽 사람들과 토론한 자료입니다. 첫번째 글은 토론관전기, 두번째 글은 양님의 변희재 비판, 세번째는 변희재의 재반론입니다.
 
 
* * *
 
 
1.
웹진 월장 토론회, 무엇을 남겼나?
/ 인사모 회원 디아블로, 루나루즈 공동집필
 
 
 
* 월장사태의 원인
 
 변희재는 월장의 문제는 이미 군가산점 논란이전부터 충분히 반복되어온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여기에 대해 아흐리만은 서로의 해석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미리 밝히면서, 월장의 글은 학대로 인한 고발의 글이었으며,  월장사태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발언에 대한 사이버 폭력이 원인이라 지적하였다. 또한 그는 텍스트와 분리된 평가는 안된다고 하였다.
 
 
* 하얀자두의 글에 문제점이 있었는가/없었는가?
 
 이에 대해 변희재는 월장의 예비역비판에 대한 기획 자체가 문제였다고 지적하였다. 월장은 예비역 비판을 성역이라고 봤지만 예비역 비판은 항상 있었다. 월장사태는 하얀자두의 글에서 비판의 도가 넘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왜 월장이 문제가 됐는지를 봐야한다. 텍스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입장이었다.
 
 아흐리만도 글 자체는 취향에 맞지 않았다면서(웃음) 말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월장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 글이 풍자글이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이었다. 텍스트 비판이 아닌 문체 비판이라는 것. 이 점에서 사이버마초들은 정당성을 잃었다고 하였다.
 
 변희재는 흑인과 전라도의 예를 들면서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수에게 그 편견의 이해 없이 공격(패러디나 풍자 포함)을 감행하면 당연히 이런 폭력적인 대응이 나올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월장은 소수 예비역의 문화를 지나치게 일반화 하는 우를 범했고 월장의 이러한 태도가 문제를 더욱 키웠다는것이다.
 
 아흐리만은 학적인 글쓰기와 도발적인 글쓰기는 다르다면서 월장의 글이 도발적인 글쓰기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지식인의 글쓰기보다는 인터넷상에서의 일반인의 토로가 중요하다는것이다.(문체의 문제에 있어서는 지식인의 그것보다 일반인의 것이 세련되지 못하기때문에)
 
 방청객 한분이 변희재에게 부산대 여론조사 결과 예비역 문화 존재를 인정하는 학우들이 80%에 달했다며 도발적인 것만 빼면 월장의 입장과 같다고 볼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월장의 글은 현실적 체험의 글이지 옛날부터 있었던 예비역에 대한 선입견에 입각해서 쓴 글은 아니라는 반문에 변희재는 예비역 또는 운동권 등의 개념의 정리가 명확하게 안된 상태에서 그러한 것을 묻는 설문상태가 틀렸다고 본다고 답하였다.
 
 아흐리만은 말하기를 집단주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강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만연된 군사문화 때문이다. 군대가 군사문화를 발현, 유지시켜주며 예비역과 운동권문화는 군사문화의 변종일 따름이라고 하였다.
 
 변희재는 명칭을 '군사주의 문화'라고 붙이느냐, '예비역 문화'라고 붙이느냐에 따라 타겟이 다르다고 하였다. '군사주의 문화'가 문제라면 국가권력이 타겟이 되어야지 예비역이 타겟이 될수 없다. 또한 한사람의 실수로 전체집단을 매도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흐리만은 월장사태 때 월장을 공격한 사람들은 선량한 예비역이 아니다. 월장의 글의 타겟은 현실적으로 피해를 주는 예비역들이다.
 
 이에 변희재는 현실적으로 피해를 주는 예비역이 있다면 그 사람을 실명비판해야지 그가 속한 집단전체를 비판해선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한 여성 방청객이 변희재의 의견에 반대하며 많은 여성들이 예비역들에게서 예비역들만의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남성방청객은 성역은 국가권력 즉 국방부이지 예비역이 아니다. 하지만 월장은 예비역을 성역으로 몰았다며 월장을 비판하였다.
 
 
 *군대가 군사문화를 얼마나 고착, 강화하는가
 
 아흐리만이 먼저 발언을 하였다. 그는 군대가 군사문화를 얼마나 고착, 강화시키느냐라는 문제에 대해 개연성 수준에서 밖에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자신도 아직 군대에 갔다오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경험 자료가 없으며, 아직 신입생이기 때문에 간접경험을 줄 수 있는 예비역 선배들도 없다고 하였다.
 
 변희재는 이 질문이 핵심이라며 군대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은 사회과학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변희재 스스로도  군대에 갔다오기 전과 후의 변화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지 사회적 위치의 변화일 뿐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대학교 1,2학년과 3,4학년의 사회적 위치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며 오히려 월장이 비판한 군대문화의 특징으로 일컬어지는 '내리까시' 문화는 예비역이 없는 의대, 체대가 더 심하다고 하였다. 이것도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적 특징때문이지 군대를 다녀와서 그런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 여성 방청객이 변희재에게 그럼 지식인들이 예비역 문제를  전제로 삼고 쓴 글들은 그 문제의식이 틀린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변희재는 80년대와 90년대의 군대체험이 다르다고 답하였다. 다시 그 여성방청객은 그러면 지금 이 주제로 글 쓰는 지식인들은 시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변희재는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못했다.
 
 
 *왜 여성(월장)이 예비역을 공격하는가?
 
 아흐리만은 예비역에 의해 피해받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예비역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답했다.
 
 이에 변희재는 예비역 문제가 남녀문제가 아닌, 예비역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라며 월장의 글은 여성 전체를 대변하는 글이 아니라고 하였다. 국가가 예비역을 착취했음에도 예비역이 여성을 공격하는 이유는 국가가 아닌 여성이 예비역을 대놓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온(on line)에 글을 올리는 예비역은  지식인이 아닌 분노한 소시민이다. 그들은  의제선정권과 매체를 가지고 있는 여성을 타겟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흐리만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예비역들이 스스로가 성역을 강화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변희재는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예비역들은 없다고 하였고, 아흐리만은 이를 예비역의 이중성이라고 규정하였다. 예비역들은 스스로의 군복무경험을 싫어하고 비하하면서도 여성들이 비하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고 하였다. 변희재는 여성이 아니라 미필자로 정정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남녀문제로 해석하려는 것을 경계하는 입장을 취했다.
 
 한 남성 방청객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예비역들이 공격을 받을 때 급해서 사용하는 일종의 방패막이 아닐까라며 의견을 밝혔다.
 
 변희재는 이중성을 비판하는 아흐리만에게 이중성은 당연한 것이며 이것은 고유의 경험문제라고 하였다. 세금의 문제에서와 같이 이것은 자부심과 문제의식의 공존이며 이를 비판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아흐리만은 토론에서는 이중성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답하였고, 변희재는 온상의 예비역들의 글이 소시민들의 글이라며 이들에게 정치적인 판단을 기대해서는 안되고 이들의  글을 받아줘야한다고 하였다.
 아흐리만이 받아들여줘야 한다는것도 정치적인 판단이 아니냐며 반문하자, 변희재는 여성이 아닌 지식인들에게 말하는것이라고 하였다.

 아흐리만은 월장측은 지식인이 다시 반론하였고, 변희재는 이미 그들은 저널리스트를 자처했기 때문에 소시민이 아니라고 답했다.
 
 
 *앞으로의 대처방안
 
 이미 이런 논의가 수없이 반복됐다면서, 온에서는 사이버폭력에 대한 응징이 불가능한다고 한 변희재는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양측에서 생각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며, 먼저 범죄에 대해서는 신고를 하고 그 다음 차분하게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흐리만은 사이버상에서 응징은 가능하지 않다며, 일부 사이버마초 예비역들의 선동때문에 월장사태가 커진 것이라고 하였다. 사이버 테러는 월장측이 당했다며 말이 이와같이 억압된 상황에서는 공식적인 토론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면서 폭력범들의 퇴장이 전제되어야 원활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변희재는 제거후 토론가능 하지만 월장사태에서는 제거가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유감을 밝혔고, 아흐리만 역시 월장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건이었고 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토론을 마무리 하였다.
 
 100분이라는 시간동안 토론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었다. 방청객들의 질문도 계속 이어져 이날 토론회의 호응정도를 보여주었다.

  월장사태는 초점을 월장에 실린 '도마위에 예비역'이라는 글에 맞추느냐, 아니면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대변하고 있는 월장이 당한  사이버 폭력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월장의 글이 질적으로 조악하다고 해서 그들이 당한 폭력을 정당화 시킬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외부적인 사태를 떠나서 군가산점 논란 전후로 계속되고 있는 예비역 담론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과연 예비역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수 있을만큼 예비역 구성원들이 전형적인가란 문제에서부터  공격의 타겟이 국가권력이 아닌 예비역이 되는 것이 정당한가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이미 같은 패턴으로 계속 반복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월장사태는 수없이 논의되었고 나올만한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생각한다.  같은 여성이라도 자기의 주관에 따라 어느 한 입장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논의도 상황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먼저 월장이 당한 어마어마한 폭력에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어떠한 목적으로도 약자에 대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성을 약자로 인정한다면...
 
 
 
 
2.
안타까운, 너무나 안타까운 - 변희재씨에게 묻는다
웹진 월장토론회 참관기
 /안티조선 우리모두 운영위원, 부산 인사모 양
 
 
 
- 변희재씨의 참석에 감사하며....
 
 나는 월장 사건과 이래저래 관련이 깊은 사람이다. 부산대학교 재학생일 뿐만 아니라 학내 자유게시판에서 몇 안되는 월장에 우호적(?)논객으로서 안티월장 네티즌들과 토론을 벌였고, 결국은 부산대에서 개최된 월장 토론회의 패널로 참여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하 존칭은 생략합니다)
 
 부산에서 개최된 첫번째 월장토론회는 안티월장의 해체와 더불어 방청객들과의 질의 응답식으로 진행이 되었었다. 그래서 월장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의 집약된 의견을 듣고 반박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방청객의 질문은 결국 게시판에서 이미 수없이 나왔던 질문과 중복되었고, 패널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만도 수없이 반복했었던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생산적이지 못한 토론회였다.
 
 그런 반면 이번 변희재와 아흐리만의 토론은 두 사람이 월장사건에 대해 명확한 입장차이를 가지고 토론에 임하기 때문에 적어도 제시된 네가지 논점이 명확하게 다루어질 것이라 기대를 하였고, 비록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생산적인 토론진행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가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더불어 기존 안티월장 논객들이 모두 직접적인 토론자리를 피한데 비해 당당하게 토론에 임해주신 변희재에게 감사를 보낸다.
 
 나는 부산대 월장토론회에서 '월장의 발언권을 옹호하는 텍스트독자'라는 패널이었으므로 토론중 변희재보다는 아흐리만의 의견에 좀더 동의하였고, 아마 나의 이 참관기 또한 그런 경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견에 대한 평가는 두 패널의 정확한 공방중에 나오는 것이고, 결국은 이 글을 보는 이들의 판단할 것이므로 굳이 여기서 친아흐리만적(?)인 나의 입장을 가리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날 방청객 발언중 변희재측에 동의하는 발언자들이 서너명 되었던 것에 반해 아흐리만측에 동의하는 발언자는 나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토론의 네가지 논점, 두 패널의 입장?
 
 < 사이버 마초들의 행태 / 대학내의 예비역 담론 / 군대를 대하는 남성의 태도의 이중성 / 담론융성이 현실정치에서의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가 >
 
이 네가지가 두 사람이 토론하기로 한 논점이었다.
 
1. 사이버 마초들의 행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잘못이 있다는 것이야 두 사람 다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변희재는 '예비역에 대한 모든 비판 글에 그런 반응이 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월장의 글은 그러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갖고 있었고,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반해 아흐리만은 그런 사이버 마초들의 행태를 두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빠에게 얻어맞은 엄마한테 가서 '아빠도 물론 잘못했지만, 엄마에게도 책임은 있어'라고 말하는 아들과 다름이 없다"고 비유했다.즉, 월장의 글이 잘 쓴것이 아니고 잘못이 다소 있다 해도 그것은 반론을 받아야 할 부분이지 그러한 테러나 집단공격을 받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가 있는 폭력은 폭력이라도 용인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변희재가 인터넷 토론상황을 다 지켜보았을 거라고 믿는다.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위협에 대한 것이야 두말할 것 없는 범죄라고 다들 동의하는 바이니 제쳐두더라도, 안티월장이 당당히(?!) 월장을 향해 기사의 수정, 사과, 삭제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변희재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대자보 독자마당이나 인물과 사상 쟁점토론방에서 변희재와 아흐리만의 공방 중 아흐리만이 하였던 말이 떠오른다. "월장 기사는 D입니다. 그러나 D는 F가 아닙니다" 즉, 잘 쓴 것이 아닌 기사에 대해서 반론이 제기되고 토론이 진행되어 합리적인 쪽이 여론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기사의 완성도가 낮다고 해서 아예 발언도 하지 못하고 낙제점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인사 쟁토에 올린 아흐리만의 참전기에도 한번 언급되었지만 진중권씨나 아흐리만을 비롯한 월장에 우호(?)적인 들은 월장의 기사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월장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안티월장과 같은 반응은 과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박과 재반박, 그런 생산적인 토론을 생산해내기보다 집단공격성을 보여준 사이버 마초의 행태는 이유야 어쨌든 '문제'이다. 물론 월장기사가 양질의 기사가 아니라는 것에는 얼마든지 동의한다. 그러나 변희재도 설마 '그런 잘못이 있으니 좀 심하긴 해도 폭력이 가해질 만 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흠이 있는 것'과 '잘못된 것' 앞에서는 '잘못된 것'을 먼저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하는 점을 변희재에게 지적하고 싶다.
 
 
2. 대학내 예비역 담론. 여기서는 두 사람이 아주 판이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변희재는 여성주의자들이 비판하는 예비역상을 '스테레오타입(streotype)'이라고 하였고, 실상 예비역들은 그보다 훨씬 양호하다고 하였으며, 아흐리만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 의견의 차이는 아무래도 두 사람이 바라보는 기준집단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변희재는 자신의 학교(서울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고, 아흐리만은 보다 여성주의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하위 혹은 지방대학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희재의 경험에 근거하면 월장이 말하는 타입의 예비역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도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현역으로 군대에 가는 비율이 타대학에 비해 낮고, 여성주의도 타 대학에 비해 활발하게 제기되는 서울대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니 만큼 보편적이라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부산대를 비롯해 더한 지방대에서는 예비역의 비율도 더 많고, 여성주의의 기세도 더 작다는 악조건이 형성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서울대에서의 보편성'은 '엘리트 집단에서의 보편성'에 지나지 않는 허구가 아닐까. 물론 타 대학과 서울대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는 모른다. 그러나 변희재의 주장의 근거가 '학내'라는 점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방청객 발언기회가 왔을 때 나는 월장기사의 텍스트는 철저하게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고 여론조사의 결과도 제시했다. 변희재는 서울대의 경험과 더불어 그러한 부정확한 조사나 경험은 대표성을 띨 수 없다는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치자면 학부생의 세태풍자 기사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세밀한 조사를 거쳐야 허용된다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대학내 예비역 담론에 대해서는 예비역에 의한 피해가 없다고 주장하는 쪽보다는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 좀더 귀기울여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둑맞은 적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과는 무관하게 도둑맞은 적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만으로도 도둑의 존재는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의 일반화에 있어서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데는 동의한다.
 
3. 군대를 대하는 남성의 태도의 이중성. 이것은, 군대를 두고 남성 내부에서 말할 때는 온갖 욕과 불만이 난무하지만 외부(즉 군대경험이 없는 여자들)인에게 말할 때에는 그것이 신성한 의무였다고 말하는 이중성을 말한다.

  변희재는 그것이 신성한 의무였다고 주장하는 네티즌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심지어 그 '사실'에 대해서 믿지 않으려고 했지만) 적어도 월장사건 때 게시판에 나타난 것을 보자면 충분히 많은 비율이었음을 확언할 수 있다. 아흐리만은 그러한 이중적인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고(자신들끼리는 비판하는 것도 남이 비판하면 태도가 돌변하는 이중성), 변희재은 그것이 인지상정이라며 인정해 주는 입장이었다.
 
  미처 토론회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중성을 다루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안티월장사건에서의 그 "이중성"이, 결국 <우리는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라는 관점에서 돌출된 것이므로, 비판을 억누르는 데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신성한 의무를 다하고 온 것과 그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이것은 그 발상이 인지상정임을 이해해 주더라도 사태의 합리적인 논의과정에서는 확실히 배제되어야 할 부분이며, 이중성을 제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4. 담론융성이 현실정치에서의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가? 네 번째 논점은, 내가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자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길 기대했었다. 왜냐하면, 담론과 현실사이에서의 괴리가 확실시 되지 않으면 담론이 곧 현실이라 착각하는 상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담론과 상관없거나 되려 역전되어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은폐할 위험도 있다.
 
  담론이 인정한다고 해서 현실에 있어 사람들이 개념까지 그 담론을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아흐리만이 토론회 때 재언급했던 진중권의 예를 들어보겠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지역감정이 나쁘다'라는 담론에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지역감정은 횡행하고 있다> 지역감정이 나쁘다는 담론에 모두가 동의하고, 담론의 차원에서는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사회에는 지역감정으로 인한 폐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놓치면 "지역감정이 나쁘다는 걸 모두 동의하므로 지역감정의 폐해가 없다"는 해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월장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주의가 힘을 얻고,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고, 남녀평등에 대한 담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해서 과연 현실에서도 남녀차별 현상이 그에 걸맞게 해소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그 괴리가 있다.
 
  여성주의의 발달이 "그러한 예비역의 행태가 존재할리 없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여성주의가 대학사회 내에서 발달하더라도 그것은 담론을 인정받는 것이며, 현실에서의 행태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 필연적인 결과인 것은 아니다. 변희재는 그러한 행태를 보이면 여성들의 반발에 바로 부딪칠 것이라 했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의 개념은 그렇게 담론을 다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월장건에서 '술좀 따르라는게 뭐가 나쁘냐'는 반응이 있었던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기사 중에 여기자가, '기분이 더러웠지만 참았다'는 구절도 기억하실지.)
 
  이와 같이, 아무리 여성주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 담론에서는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실제 예비역과 비예비역(주로 여성)이 겪는 상황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논점이었다. 담론과 현실과의 괴리라는 점이 좀더 자세히 다루어졌으면 나의 저 궁금증에 대해서도 변희재로부터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이번 토론회에서는 결론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또다른 관점에서도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매체에 기고한 그 지식인들이 '예비역의 '스테레오타입'에 기준을 두고 비판한다'고 하셨던 변희재에게 그날 내가 질문한 것 ---( 그렇다면 변희재는 스테레오 타입을 너머 실재의 예비역들을 파악하고 있고, 그 지식인들은 십 수년 전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못 벗어난 채 글을 썼다는 의미인가 )--- 에 대해서는 다시 답을 듣고 싶다.
 
  실제로 김정란, 노혜경, 진중권과 같은 지식인들이 월장사태에 대해 매체에 기고할 때, 모두 월장의 발언권을 막는 사이버 마초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변희재의 말이 옳다면 위 언급된 지식인들이 모두 틀렸다는, 아주 중요한 발언이 된다. 게다가 틀린 담론만이 매체에 공개되고, 안티월장의 옳음을 믿는 지식인들이 모두 침묵하였다는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 아쉬운 토론회를 끝내고....
 
  사이버 마초들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응징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그런 사이버마초들의 집단적 공격행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서 차후 그런 행태를 제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체가 규명되던 되지않던 사이버 마초들의 행태를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월장과 같은 기사가, 예비역에 대해 비판적이되 그리 양질의 기사는 아닌 그러한 텍스트가 생겨났을 경우 변희재가 그 텍스트에 대해 "반론"을 펴며 토론을 이끌려고 할 것이라는 말을 믿는다. 그러나 그때에는 공격을 가하는 사이버마초들을 향해 "그럴만도 하지" 라고 말하지 말고, 텍스트 생산자들의 발언권을 우선 지켜 주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서울 경기지역 인사모 주최 월장토론회를 보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변희재씨가 토론회를 위해 많은 자료를 준비하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성실하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토론회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적절히 사회를 보아주신 인사모 대표 조성용씨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아흐리만과 변희재씨가 입장차이만 가진게 아니라 기준과 자료의 범위도 판이하게 달랐다는 데서 결국 이견이 좁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명확히 논점을 주고받았다는 데서 생산적인 토론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소 딱딱하고 얼굴 붉힐 일이 많었던 첫 월장토론회에 비해 상당히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번 토론회의 형태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앞으로도 중요사안이 있을 때 이러한 토론의 자리가 종종 마련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3.
월장 토론회 이후, 아직도 남은 이야기
/ 변희재(대자보 편집국장)
 
 
 
 양님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미 오프라인 토론회를 마친 상황에서 내가 이 문제를 또 글로써 거론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찌보면 오프라인 토론회에서 미처 확인을 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한번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찰라에 대자보로부터 인사모에서 정리한 토론 글과 토론에 청중으로 참여한 양님의 글을 받아 읽어볼 수 있었다. 양님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 토론회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는지 토론회 참관기 거의 전체를 내 의견에 대한 질문으로 채워 넣었다. 다시 한번 내가 토론회 당시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양님이 의문을 갖고 있는 부분을 뒤늦게나마 글로써 답변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된다.
 
 
  예비역은 군대를 싫어한다.
 
  양님이 제기한 첫 번째 문제, 즉 월장의 글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사이버 테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이미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이번 사이버 테러를 가지고 "역시 예비역 비판은 성역이었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곤란하다. 같은 여성주의 웹진인 <달나라 딸세포>에서도 월장과 비슷한 시각에서 예비역 문제를 다루었고, <두입술>에서도 다루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이버 테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들이 예비역에 대해 비판의 입장에 서긴 했으나 이해해보려는 측면도 조금이나마 다루어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월장의 텍스트에서는 하얀자두의 글 뿐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그런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예비역 비판이 성역이라면 왜 <달나라 딸세포>의 기획에는 테러가 벌어지지 않았겠는가? 이것은 테러를 용인한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분석도 테러에 대한 분석 만큼 중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이 동의 하에서 두 번째 논점부터 답을 해보겠다. 양님은 내가 서울대 출신이므로 서울대의 상황만을 보편적 기준으로 삼아 다른 예비역의 숫자가 많고 여성주의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지방대의 상황까지 재단하려는 우를 범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월장의 기사를 돌이켜보자. 월장이 예비역 문제를 지방대나 부산대로 한정시켜 이야기했었던가? 아래 월장의 기사를 보자.
 
  "그들은 무엇을 담보로 대학사회의 어마어마한 권위를 가진 집단으로 군림하게 되었는가? 누가 그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대학사회의 주도권을 주게 내버려두었는가?

  우리의 문제제기가 성급한 오류라면, 왜 사람들은 권위적인 사람, 야한 농담을 잘하는 사람에게 '예비역 같다'는 말을 합니까? 여러분이 모두 아시다시피, 예비역들은 일관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향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모든 예비역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예비역에 대해 '싫어'라는 말을 하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거리낌없이 받아드림으로써 우리는 예비역에 대해 '싫다'는 말을 할 권리가 없다.
"
  이런 월장의 기획의도가 모두 부산대 예비역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대학 사회의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집단 역시 부산대 예비역들만 그렇다는 말인가? 그런 표현이 월장 기사에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월장 텍스트에 부산대 학생이 아닌 사람은 그 누구도 끼어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부산대 신방과 4학년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한 여대생의 글이다.
 
  "어글리 저널리즘의 전형적인 모양을 그대로 답습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이런 편파적인 기사는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사실을 사실대로 직시하지 않고 논점이 될 부분은 애써 피하는 방식. 왜 월장을 성토하는가에 대한 원인은 슬쩍 비켜가고 일부 몰지각한 예비역들의 테러(그것이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성 반발만 부각시키는 수법하며, 꼭 군사독재시절 기득권들이 반대세력을 음해하던 그 수법과 몹시 닮아 있다."
 
  물론 이 글은 월장의 기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월장 사태를 보도한 여성신문의 기사를 비판한 글이다. 하지만 같은 부산대 여대생이라 하더라도 월장의 텍스트에 접근하는 방식은 나와 거의 유사하지 않던가? 내가 계속 이야기하듯이 여성이라고 혹은 부산대 학생이라고 다들 월장의 기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비역 문제를 어느 각도에서 접근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게시판 토론 도중 내가 받은 한 부산대 예비역의 편지를 공개한다.
 
  "저는 올해 복학한 예비역입니다. 부산대 재적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님께서 말씀하시는 전형적인 예비역입니다. 대학문화의 주변에서 떨어져 나와 오로지 취업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도서관을 기웃거리는 예비역입니다.

  저 역시 증명할 수 없는 개인적 경험으로 비추어 님께서 지적하신 바, 제일 정확하게 예비역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나 제 친구를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1학년때는 대학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군대 갔다와서 복학하니 그야말로 개인적 문제(취업문제)로 숨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나 제 친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월장기사를 읽고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큰 반발심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지지나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럴 필요도 별로 못 느꼈고 해서....(이라 생략)"
 
  자, 나는 처음부터 부산대라고 해서 서울대와 그렇게 큰 차이가 날 것이라 보지는 않았다. 부산대 예비역이라고 취업 문제에서 자유롭겠는가? 예비역들이 대학의 중심에서 밀려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날이 갈수록 힘들어진 취업 문제 때문이므로 부산대 예비역들이 취업에서 면책특권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서울대 예비역들과 그리 다른 상황은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 그렇다. 이건 분명히 추측이다. 그리고 그 추측을 위에 소개한 부산대 여대생과 예비역의 글로 논증했지만 이걸로는 충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의견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글을 소개하겠다. 나와 동시대에 같은 대학을 다닌 서울대 페미니스트 졸업생 집단 메피스토의 글이다.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되지, 라는 말은 어떠한 이론에 기대지 않고도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시민권이 언제나 국가에 대해 획일적인 방식의 공헌을 해야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한 공헌의 기준은 물론 병역이다. 이에 따르면 병역, 혹은 병역과 같은 강도의 노동을 수행하지 않은 어린 아이나 노인, 그리고 장애인과 여성은 죽었다 깨도 제대 군인과 같은 권리를 누리는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이다."(「관악문화 3호, <여성주의 입장에서 본 군가산점제 논쟁>, 335쪽.)
 
  부산대이든 서울대이든 상관없이 월장과 서울대 졸업생 페미니스트들은 똑같은 예비역관을 갖고 있다. 월장이 말한 대로 "예비역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다."와 메피스토가 말한 대로 "최소한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336쪽)"이라는 예비역관 말이다. 내가 월장 텍스트에 주목했던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당연히 이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예비역이라는 존재가 왜 기득권 상류층 세력일수록 희박해지는지. 군면제 비율이 왜 상류층일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냐는 말이다. 메피스토는 "이들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사회의 엘리트로서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기득권층이 아닌 남성들은 모두 권력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군대에 입대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걸 누가 입증할 것인가? 실제로 아무런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권준희: 하지만, 책 대신 총을 들었다는 어느 방청객의 말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강제징집을 피할 수 있는 특례 대신에 기꺼이 강제징집에 응하는 이유도 있다는 거죠. 군대가면 사람된다."
(대자보 34호, <군가산점 3%가 부족할 때 >)
 
  이런 말도 안 되는 추측성 발언들이 사실인양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여성주의자들과 예비역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병역 특례업체에 취업해서 군면제를 받기 위해서도 빽이나 학력이 필요하고 스카이 대학 학생들은 거기 들어가기 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예비역에 대해 느낀 대로 떠들어도 되는가?
 
  월장은 처음에 웹진을 내면서 "남녀가 이해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한층 더 편안하고 건전하게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으면 해요."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그러니 나 역시 학부시절부터 매체에서 활동한 사람으로서 의사소통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의 성실성은 갖추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비판을 할 수는 있는 것이다. 1997년 8월 4일 <뉴스플러스>에서는 신검을 마친 228명(대학생 1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다.
 
  군대 가기 싫으냐는 질문에, 54.8%가 가기 싫다는 답을 했고, 군복무가 공평하게 부여되느냐는 질문에, 68%가 공평하지 않다고 답했다. 토론회 도중에는 "겨우 그것밖에 안 돼?" 이런 반응을 보였지만 이미 신검까지 마친 남성이라면 군대 가는 것을 기정 사실화 할 수밖에 없다. 그 상황이라면 "어차피 갈 것 즐겁게 가자."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구태여 "가기 싫다." 고 답하지 않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까지 감안해야 한다. 또한 "징병검사를 받기 전에 병역면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거나 시도해 본적이 있는가?"라는 문항에 대한 답변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응답자의 6.2%가 「시도해 보았다」고 했고, 53.7%는 「생각만 해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기사도 이렇게 결론 내린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유응답토록 했더니 '군에 갔다오면 학업에 방해된다.' '군 생활 중 사고가 나면 나만 손해다.', '군에 대해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보수가 너무 적고 혹사시킨다.', '아는 형이 군대갔다 와서 더 멍청해졌다.', '군대는 보통사람만 가는 것 아니냐.'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전체적으로 '군에 가면 손해'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식적으로 신성한 의무를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제에는 몸을 사리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이중적 행태가 청년들의 냉소주의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건 1997년의 이야기이고, 군가산점 파문까지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이러한 의식이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졌을 거라 예측할 수 있다. 지금 대다수의 남성들은 군에 대해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고 있지 않다. 토론회 도중에도 "예비역들은 국방의 의무를 신성화 한다." 라는 주장이 나오길래 내가 즉각 반박했다. 사실 관계 문제로 논란이 붙었고 나는 바로 어제 월장 사태 논의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었던 <대자보>와 <부산대> 자유게시판에서 '신성한'이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해보았다.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글은 놀랍게도 단 한 편도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예비역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글에서 "너희는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 한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그 밑에 "무슨 소리냐? 아무도 그런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끌려갔을 뿐이다."라는 글만 수두룩했다. 프리챌 월장 커뮤니티에서는 본문 검색이 안 되니 검색을 못 했으니까, 그런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제발 나에게 직접 보여주기 바란다. 군가산점 논란 때부터 하이텔(hitel) 큰마을(plaza)의 거의 모든 글을 뒤졌지만 요즘 예비역들은 국방의 의무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보상해달라고 아우성을 친 게 아니겠는가? 신성한 의무라면 보상이 왜 필요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남녀 문제가 아니다. 오직 예비역의 의식에 관한 사실확인의 문제이다. 내가 갑자기 여자가 된다고 해서 예비역들이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게 보일리는 만무하다. 그에 대한 근거로서 <여성과 사회 11권>에 실린 한국여성연구소 배은경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참고로 내가 이제껏 찾은 예비역 관련 글 중 최고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주의자든 예비역이든 다음부터 예비역 관련 글을 쓸 때 반드시 이 글을 참고해줬으면 좋겠다.
 
  "그것을 가능케 해준 것이 바로 군대 경험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든가 '남성성의 완성'이라는 식으로 표상하는 담론의 존재였다. 군대란 '일정 정도의 연령에 도달한 대한민국 남성이면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이고, 따라서 씩씩한 대한의 남아인 내가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루도록' 나라를 지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의무이며, 또한 바로 그러한 의무의 이행을 통해 나는 진정한 남, '싸나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기왕의 의미구조 말이다.
 
  그러나 이같은 의미구조는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군대라는 곳이 실제로 대한민국 남성이면 누구나 '똑같이' 가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징집대상 연령대에 도달한 남성의 수가 실제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인원을 크게 넘어서면서 현역복무에서 빠지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났고, 현역 내에서의 보직배치 역시 기존 사회의 계층 및 학력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결국 사회에서 밑바닥에 있는 남성들일수록 군대 내에서도 가장 힘든 일을 떠맡게 되는 모습이 현실로 나타났다.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 '어둠의 자식들'과 같은 유행어들이 보여주듯이 당시 일반화된 병역비리는 군대 경험을 점점 더 자신의 힘없고 빽없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변화시켜갔다. (「여성과 사회 11권」, <군가산점 논란의 지형과 쟁점>, 97쪽)"
 
  나는 배은경씨야말로 예비역들의 의식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조사를 소개하겠다. 대학문화신문에 실린 서울여대 학생들의 이색 설문조사이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과 강지선, 김민경, 김희옥, 문정연, 황지현 팀이 '여성 군대 의무화'에 대해 서울여대 학생 200백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어떤 군을 지원하겠냐는 질문에 남학생들의 선호도와 비슷한 카튜사(31.5%),  공군(25.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여대생들은 또 절반이상인 56%가 군복무기간을 1년 이하가 적당하다고 보았으며 두발의 길이도 자유의지에 따라야 한다는 학생이 43.5%로 가장 많았다. 병역기피에 대해 여대생들의 63.5%가 '기피는 아니지만 편한 보직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겠다'고 응답했으며 '기피하겠다'는 학생은 9%였다."
 
  위의 「뉴스 플러스」 기사의 조사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여대생들의 63.5%가 상황이 닥치면 가기 싫지만 편한 보직을 골라서 군대를 가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남성들의 의식과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대생들도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 여겨 군에 가겠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다. 군복무는 납세의 의무와 똑같은 의무이다. 그래서 치사하게 편법 써서 빠지기 보다는 이왕 갈 것 당당히 가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과연 군대나 예비역의 문제가 사회과학의 영역이냐는 회의감 때문이다. 아무리 이 통계, 저 통계 갖다 줘도 "남자들은 기득권을 얻으러 군에 자발적으로 가고 있고 예비역은 권력이고 이를 신성시 한다." 이런 절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겠다면 도리없지만 나로서는 이성을 바탕이 된 믿음이 중요하다는 중세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려주는 수밖에 없다. "예비역은 아무 생각 없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끌려갈 뿐이다."라는 말을 뒤집을 만한 정확한 설문조사나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앞으로는 "예비역들이 권력을 위해 자발적으로 군대를 가고, 국방의 의무를 신성시 한다."는 추측은 소통을 위해서라도 쓰레기통에 과감히 던져버렸으면 좋겠다.
 
 
  예비역의 이중적 감정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상실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예비역들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두 가지 예로 설명했다.
 
  1. 신성화하지 않는데 왜 미필자들이 군대를 비판하면 발끈하는가?
  2. 왜 그럼 술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떠드는가?
 
  1번에 대해서는 내가 386세대들을 예로 들며, 그들끼리는 화염병 던진 이야기해대며 히히덕거리더라도 나 같은 90년대 학번이 "형들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화염병 놀이 한 거지?" 이렇게 물었다가 분노와 슬픔에 잠긴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자기들끼리는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그때의 경험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 장난치는 건 그들로서는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걸 가지고 386세대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신성화한다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2번에 대해서는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샐러리맨들이 갖고 있는 상실감과 자랑스러움의 미묘한 이중적 감정으로 설명했습니다. 분명히 군복무를 다한 게 범죄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특히 파워 엘리트들의 병역비리가 도지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우리는 치사하게 피하지 않고 2년 2개월을 보냈다." 이런 자랑스러움과 상실감을 얼마든지 동시에 가질 수 있다.
 
  386세대들의 감정, 그리고 샐러리맨들의 감정과 예비역들의 감정이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만약 예비역들의 이중성을 욕하려면 386세대와 샐러리맨들도 덩달아 같이 욕먹어야 한다. 이에 대한 유일한 반론은 "어차피 군대에 갈 수 없는 여자들의 비판 아니냐?"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기본 전제에 모순된다. 여자든 군필자든 누가 비판해서 군필자들이 상실감과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다. 군복무를 하게 되는 그 시점부터 갖게 되는 감정이다. 386세대들이 90년대 학번인 내가 비판해서 시대에 대한 자부심과 상실감을 갖게 되었단 말인가? 여기서 확인해야 될 것은 예비역들이 상실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는 그 이중적 감정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인정할 수 없는가? 예비역들이 대학에서 보여주는 행태에 대해서는 이 감정과 관계없이 따로 다루어야 될 의제이다. 그리고 그걸 다루기 위해서는 예비역들의 이중적 감정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고도 예비역 문제를 얼마든지 다룰 수 있다.
 
 
  지식인들의 담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양님이 가장 듣고 싶어했다는 지식 담론과 일상적 실천 사이의 괴리감 문제이다. 이것은 사실 독립된 주제로 따로 다뤄도 양에 넘치는 주제이다. 다만 양님이 제기한,
 
 "지역감정이 나쁘다는 담론에 모두가 동의하고, 담론의 차원에서는 아무도 반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사회에는 지역감정으로 인한 폐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과 현실사이의 괴리를 놓치면 '지역감정이 나쁘다는 걸 모두 동의하므로 지역감정의 폐해가 없다'는 해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지역감정의 담론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해보자고 제안할 수밖에 없다. 지식 담론 차원에서 나오는 "지역감정은 나쁘다."라는 말의 진실이 무엇인가? 그게 진정으로 지역감정을 뿌리뽑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지역감정에 대해 똑바로 이야기하는 지식인은 강준만, 황태연, 최장집, 유시민 등 손에 꼽아야 한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도 지역감정이 나쁘다고 말한다. 그럼 윤평중 교수가 지역감정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호남 사람들이 "지역감정을 없애기 위해 한나라당에 표를 줘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윤평중 교수의 글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구태여 설명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줄 안다. 지역감정에 대한 지식담론 자체에 이미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일반 소시민들이 일상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기는커녕 아예 흘려듣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예비역 문제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검토해본 여성주의자들의 예비역 관련 글 중 예비역들이 그나마 성찰해볼 수 있는 글은 배은경씨의 글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월장의 글? 메피스토의 글? 「페니스 파시즘」?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글의 수준으로 말하자면 지역감정에 대한 윤평중 교수의 글보다 떨어지면 떨어지지 높지는 않다고 본다. 내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양님이 제기한 또 다른 문제,
 
  "김정란, 노혜경, 진중권님과 같은 지식인들이 월장사태에 대해 매체에 기고할 때, 모두 월장의 발언권을 막는 사이버 마초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변희재님의 말이 옳다면 위 언급된 지식인들이 모두 틀렸다는, 아주 중요한 발언이 된다. 게다가 틀린 담론만이 매체에 공개되고, 안티월장의 옳음을 믿는 지식인들이 모두 침묵하였다는 이해할수 없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답변을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분명히 하자. 김정란, 노혜경, 진중권씨가 월장의 텍스트에 동의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월장의 텍스트를 둘러싸고 형성된 전선에서 월장의 손을 들어준 것뿐인지 그것을 구분해야 한다. 나는 마초들의 행태를 비판한 글에 대해서는 시비걸지 않았다. 내가 주제로 잡고 있는 것은 예비역 문제이다. 그리고 「페니스 파시즘」에 실린 노혜경씨와 진중권씨의 글은 마초들의 행태 뿐 아니라 예비역 일반론에까지 치고 들어갔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안티월장의 옮음을 믿는 지식인들이 모두 침묵하였다."는 결론은 내가 내린 게 아니다. 내가 언제 안티월장이 옳다고 말한 적 있던가? 나는 안티월장의 그 한심한 짓거리야말로 예비역 문제를 더 꼬이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대자보 독자마당의 ghost님의 글처럼 우선 안티월장을 해체시켰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비역 담론에 대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기존 지식인들의 주장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할 수 있다. 비판도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월장은 무엇을 얻었는가?
 
  내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한 것은 월장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비판의 효과이다. 과연 그 텍스트를 보고 성찰할 수 있는 예비역이 단 한 명이라도 있겠냐는 것이다. 처음부터 월장은 토론이 아닌 도발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답할 수는 있겠다. 나는 토론회에서 나의 학과 사례를 제시했다. 한두 명의 예비역의 잘못(예비역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은 군대 가기 전부터 그랬다)을 가지고 전체 예비역을 공격하는 바람에 나의 과에서는 예비역과 여대생들 간의 교류가 거의 끊겼다. 종강파티 또한 따로 했을 정도이다. 이 말을 했을 때 아흐리만님은 "참으로 억울했다는 건 인정합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그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한두 명의 예비역의 잘못을 전체 예비역으로 돌려 비판해서 예비역과 여대생 간에 벽을 쌓았을 때 결국 누가 피해를 보게 되었을까? 예비역들은 어차피 도서관에 쳐박혀 있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예비역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없는 불특정 다수 여대생들이라 생각한다. 월장 2호의 기사에서는 여대생들의 취업문제를 다뤘고 결론적으로 그들은 "남자들은 예비역을 중심으로 취업준비를 하고 여자를 끼워주지 않으므로 우리끼리 모여서 취업준비를 해야한다"라는 주장을 했다. 우리과 여대생들이 바로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 계속 그래야 한다.

  그리고 여대생들은 평생 대학만 다닐 것인가? 어차피 예비역이든 뭐든 다 같이 사회생활을 해야한다. 그렇다면 대학에서부터 전위세력들은 예비역과 여성을 비롯한 미필자들이 함께 성찰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시해야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런 벽을 쌓아야 한다는 말인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 동안 진로를 준비하므로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는 고학번 남학생을 활용하지 않고 그들을 적대시해서 여대생들이 얻는 게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것도 전체 여대생의 의견도 아니고 일부 여대생들의 과잉 때문에 전체 여대생이 이에 영향을 받는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양님이 지적한 대로 "술자리에서 여자 후배에게 술 좀 따르라는 게 뭐가 나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예비역들이 있다면 나라도 나가서 비판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논쟁에서 그게 논점이었던가? "예비역들의 행태가 나쁘다."고 지적하면, "그것 좀 하면 어때?" 이런 논쟁구도가 되었어야지 정상이다. 그런데 그 논쟁구도가 아니라, "요즘 예비역이 누가 그래?" 이 논쟁구도였다. 그러다보니 부산대에서도 "예비역 문화가 있다고 보는가?" 이렇게 질문해서 80%의 동의를 받는 개그까지 연출하게 된 것이다. 내가 다시 제안한다. "예비역이 대학에서 예비역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쥐고 휘두르고 있는가?" 이렇게 물어보길 바란다. 과연 어느 정도 동의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 과의 경우도 그렇고 월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자 후배에게 술 좀 따르게 하면 어때?" 이런 예비역들이 걸러진 게 아니다. 그런 정도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예비역이라면 월장 문제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냥 얼마든지 여대생들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 조용히 살고 있던 소시민 예비역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그들을 몰아내서 월장을 제외한 여대생들이 과연 무엇을 얻었으며,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널리고 널린 자료를  다 검토해서 다시 한번 예비역론을 제대로 다루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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