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spin님이 요근래 네이버 전원책 팬카페에 남기신 글. 군가산점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서 전원책 스타일의 감정적 대응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신 글입니다.
참고로, 저는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발견했고, 그래서 밀레니엄 군가산점 토론의 영웅 tailspin님을 여기로 초청할 수 있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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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계는 군가산점 문제에 사활을 거는가?
도대체 군가산점 제도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취업을 가로막고 있기에 여성계에서는 그토록 필사적으로 군가산점 폐지에 사활을 걸고 있는가?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군가산점이 폐지되기 이전에도 공무원 시험을 당당하게 통과한 여성들의 숫자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동사무소나 구청 등을 방문했을때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공무원의 수가 남성 공무원 대비 어느정도가 되는가를 살펴본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의 하급직 공무원 통계에서 남성대 여성의 비율이 6:4 정도로 비록 남성이 절대 수치는 더 많았지만 여타의 직업군의 남녀비율이 대략 8:2 내지는 7:3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군가산점에도 불구하고 하급직 공무원직에 진출한 여성의 비율은 여타의 직업군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비율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는 사실이 입증한다.
일부 여성계 인사들은 여성들은 하급직 공무원직에서나 어느정도 비율을 유지할 뿐 고위직 공무원으로 올라갈수록 비율이 줄어든다면서 군가산점 폐지의 논거로 들이대기도 하지만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왜냐하면 군가산점은 하급직 공무원 채용시험(7급 이하)에 적용되는 것이지 고위직 공무원 채용에는 적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위직에 여성의 비율이 적은것과 군가산점은 하등의 인과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여성이 군가산점을 극복하는데 어느정도의 어려움(그것이 상당한 어려움이라 할지라도)은 분명히 존재했었겠지만 여성의 공무원직 진출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장벽(여성계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실제로 청구서를 통해 주장했던 내용)이라고 할 정도는 결단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대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여성의 절대 수치가 도대체 얼마나 되고 또 그러한 혜택을 받는 군제대 남성의 수치가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그 숱하게 많은 성차별적 중대 현안들 보다 최우선으로 여성계는 이 문제를 타파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도대체 여성계, 여성단체, 페미니즘 등이 우리 사회에 이슈화되고 그들의 역량이 비약적으로 발전한게 언제부터였는지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군가산점 폐지, 호주제 폐지 등을 사회적 이슈화하고 공론화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여성부가 공식적으로 발족하게 된 것도 바로 그때이고 수많은 토론의 장이 마련되고 인터넷을 통한 그들에 대한 성토가 극에 달한 시기도 바로 그때부터이다.
감이 잡히지 않는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여성계의 고도의 전략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고 단순하게 그들의 전략에 말려 들어 전략전술없이 좌충우돌하며 단순 비토에만 나섰던 그 수많은 군제대 남성들의 분노와 비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사회정치적 입지를 크게 강화시켜 주는데 일조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집단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납득 가능한 명분과 그에 대응하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기초적인 정치정략이다.
군가산점 폐지 이전의 여성운동은 그러한 힘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남녀평등이라는 명분은 누구에게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타당한 명제였기 때문에 일반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그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대한민국의 거의 절대다수가 여성운동 진영에 대해서 호감까지는 아닐지라도 반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즉, 군가산점 폐지 이전의 여성운동은 명분은 있으되 뚜렷한 적(상대방)이 없으니 그것으로 먹고 사는 집단의 입장에서는 유효하고 실제적인 집단의 힘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고 그러한 여성운동 내부 진영의 고민 끝에 도출된 결론이 바로 두리뭉실하고 선언적인 남녀평등운동이 아닌 보다 정확하게 대립각을 세울 이슈화 공론화를 위한 전술적 도구가 바로 군가산점 폐지와 호주졔 폐지 운동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군가산점과 호주제라는 도구가 그들의 전술적 선택이 되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여성계가 아무리 남녀평등을 부르짖어도 현실적으로 넘을 수 없는 성역화된 장벽이 바로 남성들이 지니고 있는 군복무 문제와 가장으로서의 책무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대한민국 남성들이라면 그 누구나 갖고 있는 군복무에 대한 자부심과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책무라는 일종의 성역화된 자부심을 결코 여성들은 공유할 수 없다는(남녀평등이라는 대의 앞에 다른 모든 것은 다 함께 나눠가질 수 있어도) 괴리가 현실적으로 존재했었다는 말이다.
군가산점 폐지에 대해 절규하던 대한민국의 군필자들이 그깟 알량한 보상의 폐지에 그토록 분노했던 것인가?
결코 아니다.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자가 아니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받아보지 못할 그 사소한 보상이 폐지된 것에 대해서 그토록 수많은 군필자들이 분노했던 것은 바로 자신들의 처절한 희생에 대한 사회적인 무관심과 냉대에 대해 의무를 다한자에게 마지막 남은 자부심이 철저하게 짓밟혔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여성운동진영에서는 정확하게 이 약한 고리를 파악했고 그러한 상대방의 원천적 자부심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이슈화를 통해 스스로 군필자들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급기야는 확실한 성대결 구도를 만들어 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기존의 여성운동에 무관심 했던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느새 폭발적인 이슈 앞에 찬반이 확연하게 갈라졌고 어느덧 사회는 저들이 의도한대로 성대결 전선이 확고부동하게 정립되면서 저들의 지도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실제로 1999년 위헌판결 당시에 분노한 군필자들의 온갖 성토는 무차별적인 분출로 인해 속칭 사이버 테러로 매도당했고 온갖 언론 매체를 통해 군가산점 유지를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가 마초들이며 성차별주의자들이라는 오명을 억울하게 뒤집어 쓰게 되었고 그러한 무차별적인 욕설과 모욕적인 비난들은 외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아 되려 여성운동 진영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들이 얼마나 교활하고 전략전술에 능한 상대들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식 분노만 표출하고 있는 군필자들의 현재와 같은 대응은 결국에는 현재까지와 같이 적을 이롭게하는 이적행위에 다름 아니다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한다.
감정적 대응이 얼마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적을 이롭게 하는지 우리는 수차례 지켜보지 않았던가?
전변호사의 속시원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격앙된 감정표출이 수많은 군필자들의 가슴 속은 시원하게 적셔주었을지 몰라도 이 사안에 대해서 잘 모르는 또는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반대로 치졸한 대응으로 비춰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들의 유일한 책술은 바로 "약올리기"이다.
상대를 바짝바짝 약올려서 상대의 감정적 대응을 유발하는 행위
구타유발자로서의 전략전술
상대를 약올려 격분시킨 후에 가련하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서 오히려 자신들의 지지자들의 도움을 촉발하여 힘을 결집시키는 행위.
그동안 수많은 토론의 장에 나섰던 여성계의 패널들은 모두가 똑같은 전술로 임해왔다.
청맹과니, 요지부동 입장을 고수하면서 틈나는데로 상대방 약 바짝바짝 올리기.
대표적인 예가 "그래서요?" 아닌가?
이러한 저들의 한결 같은 행태가 진정 저들의 "생각이 모자라서" 라고 생각하는가?
나름대로 명문이라고 자랑하는 이화여대를 졸업했고 평생을 여성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운동단체를 이끌어 왔던 한 단체의 대표가, 신문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가, 국회의원이 정말 당신들 생각대로 생각이 짧고 군대에 대해 너무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그들은 십수년전부터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모두 예상하고 있었고 이러한 확고부동한 성대결 전선의 확립을 목표로 작전계획을 세워 왔던 이들이다.
그들은 이미 이 사안의 폭발력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해 왔던데 반해 군필자들의 대응은 너무나도 산발적인 각개약진 전술 밖에 그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논리 대 논리, 명분 대 명분으로 맞서는 정당 대응은 철저하게 피하며 약올리기, 말돌리기, 물타기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하며 버티는 저들의 속셈은 바로 너희들이 지쳐서 나가 떨어지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켜 감정적 대응을 유발하거나 둘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유도해야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참으로 교활한 자들이다.
명심해야할 것은 감정적 댕은 곧 이적행위라는 사실이다.
상대는 여성운동으로 밥 먹고 사는 직업적 운동가들 즉 프로들이고 그에 대응하는 군필자들은 아직도 아마추어들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