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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변희재] 벽을 넘어, 월장 그 이후를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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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07-10-11 08:11     Hit : 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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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첫번째 글은 변희재가 월장 사태 당시 대자보에 쓴 글입니다. 월장 사태 관련 이미 다른 논평을 내놨었는데, 스스로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는지 삭제하고 다시 썼습니다.
 
두번째 글과 세번째 글은 당시 대자보에서 같이 편집된 글들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의 입장 등 당시 월장사태에 대해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해보고 싶은 분들은 추가로 읽어보십시오.
 
 
* * *
 
 
1.
벽을 넘어, 월장 그 이후를 이야기하자
/변희재(대자보 편집국장)
 
 
 나의 경솔한 비판에 대한 사과
 
  대자보에 첫 번째로 올린 글은 월장의 기사 파동 사건을 본 직후였다. 그때 당시의 감정은 월장의 대학생들에 대한 "그 멍청함. 그 경솔함"그 자체였다 그 이후 24시간 동안 우리모두 쟁점 게시판에서 진중권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진중권님과 미둥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순화할 수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앞으로 인용을 할 정문순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모르는 월장의 멤버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내가 갖고 있던 답답한 생각은 군가산점제 논란 이후부터였다. 그 당시 나는 2개월 동안 흔히 말하는 사이버마쵸들에 대한 비판글을 써댔다. 그건 대자보에도 게시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이버 마쵸들에 대한 나의 감정 역시 "그 멍청함, 그 경솔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이다. 그 사이버 마쵸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들이 아닌 이상 진보진영이 애지중지하는 평범한 일반 소시민이 아니겠는가? 그럼 일단 사이버 마쵸들의 천박한 행태에 대해 비판을 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저들이 왜 저럴까?" 이런 분석적 사고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건 그들의 잘못에 대한 단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는 당연히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지식인들이나 운동가라면 그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이것 구조적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야?" 이 정도의 생각은 해줘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군가산점제 논쟁에 대한 여성주의 쪽의 사후토론 글을 봐도 그런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사이버 마쵸들에 대한 두들겨패기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월장의 기사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도 이것이었다. 처음도 아니고 이미 다 같이 국가주의의 억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저항세력 혹은 소시민들끼리 치고받으며 큰 홍역을 치룬 이후에 왜 또 다시 그와 똑같은 수준의 기사를 올려대냔 말이다. 뭐라도 좀 배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군필자에 대해 진솔된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모두 게시판에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을 한 끝에 그건 내가 너무 무리한 기대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에 대해 제대로 토론을 해본 적은 없었다. 군가산점제 토론에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올린 폭력성 글의 행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라고 요구하는 건 최소한 그 문제에 관해선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여성주의자들에겐 무리였다. 그렇다면 군필자들의 의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나라도 나서서 더 친절하고 성실하게 그들의 생각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나의 첫 번째 글은 그 점에서 부족했던 것이다.
 
  여성들이 군대에 대해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건 군필자들의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이다. 군대에 대해서 똑바로 이야기를 안 하니까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나만 해도 같은 군필자들끼리 이야기해보면 거의 다 공수특전부대 출신인양 떠들어대는 말을 듣는 게 전부이다. 물론 나야 그 말을 죄다 행간으로 읽어낸다.
 
  "내가 설악산을 10번을 오르내리고, 상륙작전을 20번 정도 해봤어." 이런 말을 하는 군필자가 있다면 여성들은 "되게 잘난 척하네."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 나 같은 경우는 "뭔가 많이 잃어버렸구나." 이렇게 돌려 생각해준다. 또한 "나는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군필자가 있다면 여성들은, "저런 국가주의의 화신."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못했구나." 이렇게 반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건 내 자신부터 그렇기 때문이다.
 
  "왜 이걸 이해 못해줄까?" 투덜거리기 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부터 미리 파악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미 사이버 테러가 벌어졌고, 여러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응징을 하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군대와 군필자에 대한 솔직한 내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다음부터 군필자에 대해 패러디를 하든 뭘 하든 이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 글에서 정문순씨의 글을 비판하려는 건 아니지만 정문순씨가 갖고 있는 군필자들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필요한 경우 그의 글을 직접 인용해보겠다.
 
 
  군필자들은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가장 많은 오해가 빚어지고 있는 건 군필자들이 사회적 기득권 세력 혹은 국가의 대리인이라는 생각이다. 그건 다시 말하지만 정치인, 언론사 사주, 재벌 아들일수록 군면제 비율이 높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군대가 기득권을 보장해준다면 왜 사회 기득권층일수록 군대를 더 기피하려 할까? 서울대 기득권이 있다는 증거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고 싶어 한다는 데에서 증명된다. [조선일보」 기득권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데서 증명된다. 그런데 군대는 그런 게 아니지 않는가? 대학에서만 해도 군대에 빠지려는 사람이 가려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고, 심지어 편법적으로 군대를 기피하는 자에 대해서도 어떠한 비난도 가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많은 예비역들이 바로 이런 점에서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는데 오히려 그 의무를 저버린 사람 보다 더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냐는 말이다. 그러니 정문순씨의 이런 오해도 이제 그만되었으면 좋겠다.
 
  "마초 예비역들이 자신들을 군사문화의 피해자라고 명명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들이 피해자라고 자각하는 순간, 군사문화의 부정적인 면모를 인정하는 셈이 되며, 여성 등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쳐왔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죄 없는 자신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난리를 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건 모순이 아니다. 군필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피해자로 느끼는 결정적인 이유는 군사문화의 피해자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왜 2년 2개월 동안 죽도록 노가다 뛰고 왔는데 한 달에 만 원 정도의 보상밖에 받을 수 없는지, 그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강제로 끌려갔다는 것에 대한 불만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 자신의 경험으로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나는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에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배째라 문화에 집단 떼거리 문화가 팽배한 대학보다도 훨씬 더 선진적인 문화였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2년 동안 노동한 대가가 없다는 점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앞으론 이런 것도 좀 조심해주면 좋겠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었으니 군에도 가지 못한 허약한 자들을 상대로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식이 있다. 군 복무는 건강한 남성들이 제대 후에 사회에서 누릴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치르는 한시적인 희생 제의이자, 분단을 빌미로 병영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정치적 다수자 남성들의 소극적 공모라는 측면도 살펴야 한다."
 
  일단 제대 후에 누릴 특권은 없다는 점을 제발 좀 인정하자. 그런 특권을 놔두고 이회창 아들이 군대를 왜 안 갔겠는가? 대통령의 아들이 될 사람들인데. 100번 이야기해도 안 들어주니까 답답하다는 거다. 그리고 군필자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우월감은 다른 게 아니다. 샐러리맨은 자신들이 자영업자에 비해 세금을 더 많이 낸다는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함께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있다. "너희는 치사하게 세금 다 떼어 먹지만 우리는 정정당당히 다 낸다." 이런 것 말이다.
 
  군필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예비역 병장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들이나 장애인에 대한 우월감이 아니라 온갖 편법을 동원해 다 빠져나가는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이 더 크다. 설사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 일부 군필자들이나 갖고 있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앞으로의 문제해결을 위해선 이런 점을 강조해줘야 한다. 그래야 정작 우리가 화살을 날려야 할 병역비리 문제로 군필자들의 분노를 돌려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병역비리가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군필자들이 월장의 여대생들과 한판 하는 게 무슨 꼴인가? 자꾸 최악의 군필자를 상정해서 두들겨 패버리면 병역비리자에 대한 도덕적 판단 잣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벌써 대학에서는 편법적 불법자가 군기피자가 정당한 군필자보다 더 대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런 편법적 불법적 군기피자가 "군대는 마쵸들의 집단이다." 이렇게 호통을 치기도 한다. 이런 엿같은 경우가 다 있는가? 그러니까 역시 이 말도 수정되어야 하다.
 
  "만약 그들이 진정 군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병역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신성한 의무'를 수행했다는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라고 항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런 게 역시나 답답하다. 군가산점 논쟁 때,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강조한 네티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다, "내 2년 돌리도." 이 수준의 한탄을 하곤 했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이런 말하는 것 당연히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수준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한 샐러리맨이 "나는 납세의 의무를 다했다.". 그렇지만 탈세한 놈들에 비하면 피해자다.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만 빼주면 되지 않냐는 거다.
 
  이 정도면 최소한 군필자가 사회 기득권 세력이라는 어이없는 오해는 많이 풀렸을 줄 안다. 또한 제대로 이야기가 안 되어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군필자들의 의식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렸을 줄 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지금 사이버에서 폭력을 저지르든 글발을 날리든 하는 네티즌들은 군필자들 내에서조차 약자라는 거다. 사회적 강자들은 어차피 알아서 빠지든 편한 곳을 가든 군대에 대한 별다른 불만이 없다. 그 약자들을 끌어안아 사회 저항세력의 힘을 키우는 게 목적이지 그들을 정적으로 간주하여 내려치는 게 진보진영의 임무란 말인가? 또 한 가지. 군필자들은 조직화된 세력이 아니다. 의제설정 권력이 없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더 사회적 강자에 가깝다. 생각해보라. 군가산점제를 비롯해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여성주의 진영이지 군필자들이 아니다. 그럼 사회를 이끌어보겠다는 변혁세력 입장에서 군필자들의 흩어진 분노를 하나의 정당한 힘으로 모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야 워낙에 군필자에 대한 오해가 많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해도 앞으로는 좀 신경을 써달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위에서 열거한 군필자상을 좀 참고해주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여성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군필자상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최악의 인물을 상정해 놓았다. 이런 건 논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 군필자도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갖고 있고 나 같이 상식적은 군필자도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을 골라서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군필자상을 보면 "과연 저런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소한 여성주의자들과 논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을 갖고 있는 군필자를 상정해서 비판해야지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아무리 이야기해줘도 왜 가장 쓰레기 같은 군필자를 하나의 모델로 상정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비역 문화와 저급 문화
 
  어쩌면 주제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으나 이것도 한번 짚어볼 만한 화두이다.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해 진보진영에서 예비역 문화를 도마 위로 올린 이유는 바로 예비역 문화의 천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건 내가 보기엔 하류계층의 저급 문화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스파이크리 감독의 <Do the right thing>이란 영화를 보면 흑인들의 저급한 문화를 많이 소개해놓았다. 자신의 새 구두만 밟아도 욕설을 퍼부우며 폭력을 일삼는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대학생들이 군대에 가면 이제껏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저 밑바닥 계층 사람들의 그 천박한 의식에 학을 띠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진보 운동가로 활동했던 경우에 더욱 더 심했다. 평소에 주장하던 민중해방은 어디로 가고 "저런 쓰레기 같은 놈들" 이런 혐오감을 표출하더란 말이다.
 
  솔직히 이런 건 인정했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이 특별히 저급한 최하층 문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그런 저차원적인 하층민에 대한 혐오는 어쩔 수가 없을 거란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군대에서 접하는 문화가 그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왜? 군대에 끌려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 밑바닥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밑바닥 사람들의 문화는 힘차게 일어설 민중적 의식을 담보한 것으로 보인기 보다는 정말 때려잡아야 할 쓰레기 같은 부류로 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시 내 경험상으로 보면 상류계급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 내에서는 복학생들의 저급 문화라는 게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얻은 천박한 현실주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서울대 학생들은 군대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고 제대한 이후에도 이에 대해 별다른 좋은 기억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지금 사회적 악으로 규정하려 하는 군대문화라는 것이 실제로 이태원 양아치들의 문화와 뭐 크게 다르겠냐는 거다. 자기 한번 노려봤다고 병을 깨서 찔러 버린 다거나, 여자 친구가 바람피웠다고 개패듯이 패던 양아치 문화와 내가 한국군 해병대에서 2달 파견근무하며 체험한 군대문화는 거의 유사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도 계급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군대문화가 개판이라면 왜 그런가? 그게 국방부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인가? 김정란 선생의 말처럼 국방부 장관이 결단만 내리면 군대문화가 그대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미 국방부에선 할 만큼 다했다. 군대에서 구타에 사라진 것 국방부의 노력이 크다. 그러므로 군대문화가 하류층의 저급문화의 특성을 갖고 있다면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저급 문화는 경제적 뒷받침이 따라주지 않으면 간디가 설교하러 와도 바뀌지 않을 거다. 아무리 지식인들이, "군대 파쇼 문화 개혁하라." 이렇게 해봐야 거의 소용없다는 거다. 동네 양아치들만 고스란히 모아 한 달에 만 원만 주고 12시간 이상 죽노동시키는 곳에서 무슨 얼어죽을 선진 문화 창달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말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한 진보진영 운동가라면 이 문제를 두들겨 패서 해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개 개인이라면 그런 문화에 대해 극단적 혐오감을 갖는게 정상이겠지만 남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말하는 사회적 리더의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사태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정작 듣는 당사자들은 다 흘려듣게 되어있다. 언제 스파리크 리가 흑인들 문화 개같다고 두들겨 패기만 했던가?
 
 
   예비역 문화가 대학문화 위기의 주범인가?
 
  이제부터는 예비역 복학생 문화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겠다. 사회는 이미 권력변환기에 접어들었다. 대통령의 권력보다 조선일보의 권력이 더 막강해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크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월장의 기사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의 복학생에 대한 시각은 아직도 10년 전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복학생들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월장의 기사가 말해주는 복학생의 상과 자신들의 실제 삶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월장의 기사를 쓴 사람은 자신의 체험담을 적은 것일 게다. 그렇지만 그 체험이 보편적인 동의를 얻기 힘들다면 보다 더 세밀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모든 글을 다 그렇게 힘들게 써야 하느냐는 항변을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예비역 문화를 한번 다루어보겠다는 전위세력 여성주의자들에게 요구를 한 것이다. 이왕 할 바에야 좀 제대로 해서 무언가 발전을 꾀하는 방향으로 해보자고. 실제로 나는 복학생 문화를 포함한 대학 문화 전반을 다뤄볼 기획을 하고 있었다. 졸업 때문에 할 수 없었지만 그 문제의식엔 변함이 없다.
 
 
  대학문화 자체가 문제이다.
 
  오히려 지금 대학은 복학생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건 80년대에 비해 크게 변한 대학사회에 관한 사실이자 팩트이다. 활동가들은 군대만 가면 모든 활동을 다 뒤로 하고 도서관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대학은 언제나 어린 학생들만이 담당한다. 그러면서 지적 문화적 인프라는 상실된다. 나는 심지어 현재의 대학문화를 "학예회 문화"라 혹평한 적도 있었다. 예비역 문화가 대학문화를 망치는 게 아니다. 문화의 인프라가 축적되는 것을 막는 저학번 중심의 단절된 문화가 대학문화를 죽이고 있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대학의 중심에서 거의 사라진 복학생들 때문에 대학문화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어차피 지금 대학문화는 창의성은커녕 기본 상식조차 지켜지지 않을 정도로 유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회 시간 하나 맞추는 사람이 드물 정도이다. 또한 시대는 변했는데 오로지 인적 동원만 신경쓰는 학생정치의 수준도 엉망이긴 마찬가지이다. 이게 지금 예비역 문화의 문제인가?
 
  예비역 문화나 여성주의자들이 중심이 된 학생회 문화나 다 거기서 거기다. 누가 누구를 날려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물론 이제 여성비하나 성폭력에 관해서라면 복학생들이 우선적으로 주범을 찍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통계적으로 보면 복학생들이 성폭력에 걸리는 게 아니라 학생회 간부들이 주로 걸리고 있다. 복학생의 성폭력은 공론화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 보면 복학생들은 원천적으로 대학문화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학문화의 중심에 있는 학생회 활동가들이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본다. 복학생이 완전히 사라진 나의 과 학생회에서 왜 성폭력이 발생하는가? 이것도 복학생의 책임이란 말인가? 나는 성폭력 또한 집단주의의 폐해라 판단한다. 대학에서 집단적으로 술쳐마시고 자취방에서 혼숙하다 벌어지는 성폭력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냔 말이다. 그 집단주의도 군사주의의 폐단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시 나의 경험으로 보면 군사문화와 담을 쌓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똑같은 집단주의적 폐단이 나타난다고 했을 때 이걸 복학생 문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현재의 대학문화 자체가 이미 80년대부터 회일적인 집단성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다 같이 반성을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대학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미필자 활동가들의 책임이 더 크다.
 
 
  여성주의자들은 10년 전의 복학생의 모습을 상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럼 왜 여성주의자들이 복학생에 대한 이런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을 갖게 되었는지 적어보기로 하겠다. 나는 이것을 강준만이 인용한 푸코의 에피스테메 지체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미 사회의 중심권력은 변했는데도 항상 진보진영은 그 변화에 뒤지는 너무나 관습화된 현상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를 놔두고 대통령만 죽도록 패는 현상도 벌어진다. 이미 대학은 학번의 권위부터 선배의 권위가 거의 무너졌다. 그리고 군대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 이 상황에서 복학생들이 무슨 권력을 휘두르겠는가? 오히려 저학번들과의 세대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또한 취업준비에 치여 다들 도서관에 짱박혀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예전의 복학생 상을 고수한다. 나는 그걸 이렇게 생각한다.
 
  복학생이란 존재는 현재 대학에서 어둠의 그림자에 가깝다. 그건 한창 꿈과 이상을 위해 돌진하고 있는 여성주의자 대학생이나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두려움에 가깝다. 별로 보고 싶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은 존재이다. 취업 같은 개인적 안위를 위해서만 노력하고 천박한 문화나 즐기고 이상과 정의감도 없는 3류 대학생. "우리가 아무리 운동을 해봐야 나중에 졸업할 때쯤 되면 저렇게 되겠지."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다. 또 하나, 복학생들이 정말 그렇게만 살아주면 그냥 개무시하듯 넘어가면 되는데 가끔가다 1학년 학생과의 술자리에 끼게 되면 그들이 가장 두려운 말을 쉽게 내뱉어 버린다. "야. 나도 한 때 운동 좀 해봤는데 그거 다 어릴 때 하는 장난이야. 너도 내 나이 되보면 알아." 특히 아직 여성주의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복학생이라면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성주의자 과 후배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들이 성폭력을 저지른다거나 예쁜 여자 후배에게 술을 따르게 한다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에 그런 짓은 하라고 시켜도 못한다. 그냥 "에이. 여성주의, 열심히 해봐. 세상 살다보면 그게 아니란 거 알 거야." 이런 정도의 말만 해도 그 복학생의 천박한 현실주의와 여성주의자 대학생과의 갈등은 이미 잠복하게 된다. 역시 나의 경험이지만 월장에서 말한 그런 복학생이 없었던 우리 과에서도 이런 방식의 여성주의자와 복학생간의 갈등은 매우 심각했었다. 그래서 우리 과 복학생들은 과에서 완전히 철수하여 종강파티와 개강파티까지 따로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내가 파악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복학생에 대한 불만은 바로 이것이다. 거기다 이미 10년 전에 쓰여진 교재를 들고 군대와 복학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예전의 잘못된 복학생 상을 머리에 넣고 복학생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기에 편견이 개입 안 되겠는가? 물론 복학생들의 천박한 문화가 없다는 게 아니다. 내가 강조하는 건 그게 핵심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잘못된 스테레오타입의 복학생을 상정하고 있는 이상 똑같이 행동해도 복학생만 잘못하고 있다는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월장의 여대생이 과연 몇 명의 복학생과 생활을 해봤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우리 과 여자 후배들도 성폭력 노트를 쓰며 "복학생 선배가 내 몸을 훑어봤다.", "고학번 선배가 쭉쭉빵빵이라 그랬다." 이런 글을 쭉 게시했는데 내가 알아본 결과 구 복학생 고학번 선배는 딱 한 명이었다. 딱 한 명이 실수하고 있는 걸 여대생들은 "복학생이 실수하고 있다." 이렇게 세뇌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딱 한 명은 군대에 가기 전부터 그랬다는 걸 알려둔다. 여성주의자들과 복학생들이 대학에서 거의 물과 기름의 관계에 가깝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마도 월장의 여대생이 체험한 복학생 수는 극히 적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 복학생의 특징은 단 한 명의 특징일 수도 있다.
 
  내 진단이 맞다면 이미 대학의 중심에서 사라진 복학생들을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만 난무할 뿐이다. 지금부터 여성주의자들을 포함한 대학의 리더들이 해야할 일은 구조적으로 필연일 수밖에 없는 천박한 현실주의자 복학생들을 어떻게 대학에서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해하는 것이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대안을 갖고 아직까지고 계속 대학에서 이를 실험하고 있다. 최소한 나보다 더 큰 세력을 갖고 있고 이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여성주의자들 쪽에서는 보다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군필자들의 국가에 대한 군복무 보상요구와 여성주의자들의 국가에 대한 모성보호법 제정 요구가 다른 성격의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모두다 국가주의에 대한 저항성을 담보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자꾸 둘이 싸우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한 개인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패러디글 갖고 뭘 그러냐는 논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려 한다. 대자보 독투에 올라와 있듯이, 한 경상도인이 전라도 사람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전라도 개새기들, 천박하고, 품위없고 유치한 놈들." 이런 글을 올렸다고 치자. 그에 대해 전라도인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항변했다고 해서 그게 전라도인에 대한 비판을 성역화하는 발상이라 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패러디를 그냥 재미로 보자고 용납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물론 군필자를 사회적 약자로 보는가 강자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이미 별 추잡한 짓을 다해대는 군필자들의 반응만으로도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게 증명되었다고 본다. 공적 소통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강자가 그런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겠는가?
 
 
  왜 약자들끼리 싸우는가?
 
   대학에서 가부장제 문화나 군대문화 퍼뜨리는 주범이 과연 누구던가? 복학생인가? 이것 모두가 다 아는 거다. 대학교수로부터 시작되는 정점의 피라미드 조직이다. 이게 대학의 가부장제 문화의 주범이다. 그런데 운동권이든 대학교수든 복학생이든 이 권력에 대한 저항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과 학과장과 싸움판 벌인다는 건 목숨을 내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복학생에 대한 불만은 그 위에다 기어대는 비열함이다. 천박한 현실주의를 넘어서 기지 않아도 되는데 가서 기어버리는 노예근성을 군대에서 체득해 온다. 나는 왜 월장의 기사에서 이런 복학생의 가장 비열한 특성을 무시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찾아본 다른 글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권위적이고 게으르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비판 다 때려치우고 나보고 하나 잡아내라면 그 비열함인데도 말이다. 그 여대생에겐 왜 비열함은 하나도 안 보였냐는 거다.
 
  나보고 대학문화가 엉망진창으로 되버린 원흉을 찾으라 그러면 자신의 과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폭압을 그대로 지켜보면서 어느새 힘 앞에 익숙해지는 대학생들의 자신감 상실을 꼽고 싶다. 그런데 이게 복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교수가 걸려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도 이상으로 비굴해진다. 월장이든 누구든 대학사회의 가부장제 문화나 군대문화를 다루려 한다면 1차적으로 대학교수들의 권위적 문화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 와중에서 그런 교수에게 비굴하게 기어대는 복학생들을 비판했더라도 이런 반발을 사게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군가산점제 파동의 문제점은 군필자들이 정작 칼을 겨누어야 할 곳은 피해가고 상대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달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사회의 가부장제 문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이런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핵심이 보이는데 그 핵심을 피해가고 상대적으로 약자에 불과한 복학생에게 화살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언제끼리 약자들끼리 치고 받고 싸울 건가?
 
  복학생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자신들이 대학에 약자라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저학번인 여대생들이 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강자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런데 강자로 인식되던 여성주의자들이 안 그래도 피해의식에 젖어 숨어 있는 자신들을 두들겨 팼다. 지금의 복학생들의 반발은 이런 성격을 갖고 있다. 내가 그래서 무리한 요구인지 알지만 정말 대학사회의 가부장 문화의 철퇴를 가하기 위해서라면 이걸 꼭 해달라는 거다. 진짜 강자와 싸워주면 그 앞에선 거의 다 고개를 숙일 거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입은 함부로 열지 못할 거다. 여성주의자들이 대학문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교수사회의 비판을 첨가해달라는 거다. 그런 식으로 최강자와의 싸움을 준비해줘야지만 약자들끼리 물어뜯는 일이 없어진다. 하기야 내가 아는 한 과에서는 교수의 불법적 강제노동 지시에 여성주의자와 복학생이 나란히 힘을 합쳐 노가다를 뛰어주었으니 그것도 약자들끼리 물어뜯지 않은 건 마찬가지겠다. 아무리 여성주의자라도 대학원만 가면 커피노동에 잔심부름 다해야 되는 상황 아니던가? 이걸 학부시절부터 고쳐나가려 할 때 과연 복학생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그들의 비굴함 때문이다. 정말 복학생을 욕하고 싶으면 이런 걸 지적하라는 거다. 내가 아는 어떤 과처럼 교수의 불법적 강제노동 지시에 여성주의자와 복학생이 합심해서 열심히 노가다 뛰어주는 약자들의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고.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여기서 정문순씨를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할 의도가 없다. 어차피 그들이 이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할 주체들이다. 다시 한번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에는 이런 의견을 버리지 말고 섬세하게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이기고 지고의 싸움이 아닌 이상 서로의 논리 중에서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것을 골라 비판하든 수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한번 겪은 군가산점 토론처럼 또 다시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를 "사이버 폭력 퇴치 작전" 정도로 희석시키며 끝내고 아마 조만간 또다시 이런 문제가 터지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긴 글을 마칠까 한다.
 
 
 
 
2. 
건드리지마! 다쳐-예비역은 성역
웹진 ‘월장’ 사이버테러 봉변
/조이 여울 기자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이 창간호로 예비역 대학생들의 문화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예비역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남성 네티즌들의 무차별 사이버 테러를 받았다.
 
지난 달 25일 사이트를 개설한 월장(home.pusan.ac.kr/∼wallzang)은 ‘도마 위의 예비역’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예비역 남학생들의 음담패설과 매매춘 문화, 내리까시(얼차려), 술자리에서의 성희롱 등을 문제삼았다. “예비역 선배들의 권위적인 모습들로 인해 그 앞에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문화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월장이 가진 문제의식의 발단이다.
 
그러나 한바탕 폭풍우를 겪고 난 지금 이들은 “예비역은 역시 성역이었다”고 말한다. 부산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사이트를 홍보한 첫날부터 ‘월장’ 게시판에는 “XX를 찢어 죽일 년들” “지금 강간 때리러 간다” 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이 쏟아지면서 오픈한 지 불과 3일만에 학교 서버가 다운됐다.
 
인터넷 까페 ‘월장 커뮤니티’(www.freechal.com/wallzzang)의 회원들 중 7명의 정보가 공개됐고 이 중 4명의 회원들이 ‘폰섹스’ 요청전화를 받는 등 피해를 입었다. 커뮤니티 회원 김모씨는 “4월 30일부터 모르는 남자한테 폰섹스 하자고 전화가 왔어요. 더럽고 수치스럽고 무서웠습니다. 이후로 밤늦게 집에 가는 것이 조심스럽고 꺼려집니다”라고 밝혔다. 또 월장 멤버 ㅂ씨는 학교 게시판에 실명과 소속과가 밝혀져 “00과 000 밤길 조심해라” “너의 성기를 찢어버리겠다” 등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는 “그런 욕설들을 보면서 눈물이 다 났다”며 “수업시간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웠고 분노와 공포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월장은 폰섹스 사이트에 회원정보가 공개됨으로써 입은 피해사실에 대해 부산성폭력상담소와 연계해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놓은 상태지만 수사대 측으로부터 “직접 전화한 것이 아니라 증거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남학생이 올렸어도 이렇게 비난했을까"
막무가내식 성역지키기 반성해야
 
“예비역 문화를 도마 위에 올리다니… 월장에 대한 사이버 테러는 예견된 것이었다.”
 
일파만파로 커진 일명 ‘월장사태’를 읽어내는 키워드가 무엇일까. 굳이 게시판을 장악하는 마초들이 대부분 ‘군필자’ ‘예비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는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마초 문화는 상당부분 남성들의 ‘군 경험’과 관련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부산대 자유게시판과 월장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중 욕설을 제외한 게시물에서 이들이 월장 기사에 대해 주로 문제삼는 것은 “왜 2년 넘게 목숨 걸고 나라 지키고 온 군인들을 싸잡아 욕하느냐”는 것이다.
 
“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었다면 군에 안 갔을 것이다. 기껏 제대하고 나왔는데 가부장적이라고 욕하다니 슬프다”고 말하는 네티즌도 있다.
 
예비역 ㅎ씨는 “조국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수고한 예비역들을 욕되게 한 월장을 엄중 처단하겠다”며 안티월장 커뮤니티(www.freechal.com/antiwallzzang)을 개설했고 몇몇 예비역들은 법적 대응까지 나섰다. 그러나 민원을 접수받은 경기지방경찰청 민원실에선 “법적 적용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고, 최근 명예훼손에 관한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모변호사도 “감정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지 실제 법적으로 문제될만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예비역들 "왜 우리를 싸잡아 욕하느냐"
월장의 말걸기, 인간적 접근 아쉬워
 
한편 월장 멤버 ㄹ씨는 “예비역 문화에 대해 갖는 불만을 ‘여성’이 말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냐”며 항의하고 있다. 올해 초 부산대학교 교지 <효원>에서도 예비역 문화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지만 이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체 때문이라기보다 글쓴이가 예비역 남학생이기 때문이죠. 같은 글이었어도 여학생이 썼다면 아마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겁니다.”
 
실제로 많은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 어디를 보아도 여학생들의 의견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성네티즌들은 “왜 여자들은 토론을 하지 않느냐”며 항의하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게시판에 들어갈 용기가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
 
현재 월장을 둘러싼 사이버 공간의 분위기는 올해 초 군가산점제 논란 이후 줄곧 벌어지고 있는 전형적인 사이버 테러와 이로 인해 여성네티즌들이 겪는 사이버테러 증후군이 혼합된 양상이다. 이제 사이버 마초의 출현과 사이버 테러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 돼버렸지만 마초의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대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월장은 “우리는 실제로 겪거나 목격한 일들을 말한 것인데 어떻게 ‘너 불쾌하니?’라고 확인하려 들지도 않는단 말인가”라며 비난 일변도인 사이버 여론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다. “왜냐고 묻지 마십시오. 군에 대한 것이라면 법이나 이론보다 정서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91년 제대한 이모씨는 “사이버 테러를 가하고 있는 소수 남성들이 예비역을 대변하고 있는 양 행세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다른 예비역’의 목소리로 월장사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나라 지키려고 군에 간다는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무섭고 외로운데 끌려갔다 오는 거죠. 군은 공론화되지 않은 담론이라서 제대한 후 더욱 피해의식이 커집니다. 반면 험한 세월을 겪었다는 것에 대한 우월감도 공존하죠.” 이씨는 “피해의식과 우월감이 이성보다 앞서기 때문에 여성이 군에 대해 건드리면 공격적이 되고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97년 제대한 변모씨는 “욕설과 껄렁한 태도로 대표되는 예비군들의 행동은 그간 억눌렸던 군 생활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라며, “여기에 대고 여학생들이 예비역이라는 집단을 ‘호명’하면서 비판한 것은 위험한 시도였다”고 지적한다. 변씨는 “할 말은 해야겠지만 군 생활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인정해주고 어떻게 풀어줄 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모습이 아쉽다”는 의견이다.
 
이씨와 변씨 모두 “예비역 대학생들이 사회의 여성차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고 관심이 없어서 자신의 피해의식을 온통 여자들에게 쏟아 붓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여성 못지 않게 예비역 문화를 혐오하는 남학생들도 많다”며 월장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한 김모씨(98년 제대)는 “문제는 그 문화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습성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씨는 “계속 군에 갔다온 것이 억울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피해 보는 사람이 있다는 데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당부한다. 김씨 외에도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군사문화에 찌든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예비역 대학생들도 있다.
 
월장은 “아무리 욕을 먹었다 해도 앞으로 최소한 예비역들이 술자리에서 이쁘장한 후배들 앉혀놓고 술 따르라는 행동은 안하게 된다면 좋겠다”면서 그간의 ‘공포’를 극복하고 ‘다음 말하기’를 준비중이다.
 
 
 
 
 
 
3. 
여성들에게 군대문화를 말하게 하라
/정문순(여성 문화동인 살류쥬 편집위원)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기를 하나 쓰것다. "  오적(五賊) 첫 부분
 
31년 전 김지하 시인이 담시 <오적>을 발표할 당시, 중앙정보부는 볼기가 불이 나게 맞을 각오를 한 작가를 무시무시한 반공법 위반으로 잡아갔다. 당시 지배권력의 아량으로는 자신들을 천하에 '흉포'한 '도둑'으로 풍자한 시를 문학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의 기사와 관련하여 일군의 예비역들이 벌이고 있는 소동을 논하는 이 자리에 옛날 필화 사건을 글머리에 꺼내는 이유는, 문학적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는 그때의 공안당국이나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터뜨리며 사이버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 익명의 예비역들의 심사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예비역을 풍자하면 안된다?
 
 문제가 된 웹진 월장의 기사가 예비역들에게 공격을 받는 주된 근거는 대체로 두 가지다. 즉 기사 내용이 예비역들의 실상와 다르다는 것과, 군사문화의 피해자인 예비역들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둔갑시켜 놓았다는 것. 월장의 기사에 불만을 품고 한창 난리를 치고 있는 예비역들이건 예비역 중에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건 월장의 기사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기사가 '감정적이고 비약적인 논리'로 전개되었음에 동의한다. 과연 그런가? 그러나 그 중 가장 문제가 된 기사, '예비역이 싫은 몇 가지 이유'를 막상 꼼꼼이 읽어보면 초장부터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솔직히 내가 가진 예비역에 대한 악감정은 나 스스로가 봐도 비논리적이다. '나'라는 '발 좁은' 한 인간이 대학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너무나도 수적으로 한정된 사람들을 기준으로 성급하게 내린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건 나 스스로가 현재진형형으로 반성하는 점이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예비역이 싫은 몇 가지 이유>, 제목 그대로 내 생각이 비논리적이건 말건 간에, 싫은 이유를 쓰는 거지 뭐, 난 이래서 니들이 싫다. 그럼 니들이 내 궁색한 논리에 토를 달아라. 난 그들에 대한 좋은 감정, 내 반성의 지점들을 다 무시하고, 예비역을 100% 적대관계라 상정한 후 욕만 늘어놓을란다."
 
 정말 월장 기사가 직설적으로 모든 예비역들을 싸잡아 공격했는지 여부를 살펴보려는 사람으로서는 맥이 풀릴 정도의 사족에 가까운 해명이다. 글쓴이는 스스로 자신의 글이 '비논리적'이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이 논리적 엄정성과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따질 수 있는 건조한 글이 아님을 밝힌 것이며, 예비역에 대한 욕만 늘어놓겠다고 미리 전제함으로써 설령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예비역 독자들에게 양해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글쓴이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예비역 학우들의 반발을 의식하고서 풍자적으로 쓴 글임을 구태여 친절하게 밝히고 있는 이상, 그런 글을 감정적이니 비약적이니 따지는 것은 대단히 우스운 노릇이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풍자란 대상의 약점을 과장되게 폭로하거나 야유하는 표현 방식이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문제 인식만 갖추고 있다면, 과장이나 비약이 수반됨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흥부전에서 놀부가 오장칠부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독자는 없으며, 장화홍련전에서 계모 허씨의 용모를 언급한 대목 중, 그 입술을 썰어놓으면 한 사발은 되겠다고 한 표현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똥개훈련' 따위 자극적인 표현만 눈여겨보고서 모든 예비역들을 모독한 것이라고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군의 예비역들의 처사는 대단히 치졸하고 유아적이다. 게다가 '감정적인 문체'를 구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글쓴이 스스로 사과를 표명하지 않았는가.
 
 월장 기사를 처음으로 다룬 인터넷신문 『뉴스보이』의 기사는 예비역들의 불만이 응집되어 폭발하도록 오히려 선동하는 구실을 했다. 해당 기사의 글쓴이 표중규라는 이는 기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월장의 기사들이 '남성성'을 무조건 공격한다는 등 성난 예비역들을 대변하는 전형적인 마초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는 기사의 의도와 풍자적 글쓰기 기법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필진들이 일방적으로 예비역을 매도했다는 기사를 씀으로써, 사건의 파장을 줄이려고 애쓰기는커녕 도리어 예비역들의 광란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여기서 표씨의 독해력 수준을 잠깐 언급한다. 이를테면 학내에서 '불법(비디오) 유통업자들의 십중팔구가 예비역들이다'는 월장의 기사를, '모든 예비역들을 불법 포르노 유통의 주범으로 몰고' 있다고 기상천외하게 풀이하는 식이다. 월장에 분노하는 예비역들은 실상 이런 수준의 독법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월장 기사에 대해 논리적 오류라고 꼬집은 '잘못된 일반화' 운운은 거꾸로 자신들의 오류와 무지를 말하는 것일 따름이다.
 
 예비역은 피해자인가?
 
 월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 글들이 주로 개인의 경험에 의존한 것이기에 객관성이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체험적 글쓰기 방식은 되려 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보다 나는 글쓴이의 체험에 의존한 글쓰기 방식은 오히려 풍자의 강도나 문제 의식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본다. 비판의 효과로 따지자면, 월장의 글들은 특유의 과장된 몸짓으로 허를 찌르는 『딴지일보』 투의 거침없고 세련된 풍자나 패러디에 미치지 못한다. 풍자를 하더라도 '100%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 한다는 조심성이, 질주하려는 글쓴이의 의식을 붙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기사에 언급된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고 얘기되는 일반적인 내용일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새롭거나 놀라운 것은 없다. 예비역들이 음담패설을 잘 한다, 집단 폭력을 잘 행사한다, 후배들에게 권위적이다 등의 말은 여성들 뿐 아니라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인정되는 것들이다. 다만
 
그동안 여성의 입으로 그들만의 문화에 대해 "싫다."라고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것이 힘들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 군사 문화의 다른 이름인 예비역 문화의 문제성을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기사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발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 드물게나마, 제대한 남자 대학생들은 '인격에 많은 문제점을 보인다'거나, 특히 '여성에 대한 냉소주의, 소비주의적 경향이 강해진다는' 여학생의 지적은 있어왔다.[박노자, '인간성을 파괴하는 한국의 군사주의' 당대비평10호] 만약 예비역들이 이를 군대 책임으로 돌리고 자신들은 군사문화의 피해자임을 부각시키려 한다면, 먼저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어온 가부장적 군사문화의 뿌리 깊은 폐해를 인정해야 한다. (마초 예비역들이 자신들을 군사문화의 피해자라고 명명하는 것도 모순이다. 그들이 피해자라고 자각하는 순간, 군사문화의 부정적인 면모를 인정하는 셈이 되며, 여성 등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비쳐왔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죄 없는 자신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난리를 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과연 예비역들의 말마따나 그들이 국가주의의 희생양이라는 점이 가해자라는 점보다 부각되어야 하는가? 물론 월장 운영진의 입장은 예비역이 피해자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며, 예비역 문화를 낳게 한 근간이 군사주의에 있음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예비역들은 결코 군대라는 제도적 폭력의 희생자일 뿐이 아니다. 군대에서 겪는 가공할 폭력을 내면화한 남성은, 제대 후 병영 문화를 고스란히 답습한 조직 사회에 적응하는데 적합한 인적 자원으로 환영 받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과 장애인 등 군복을 입을 수 없는 이들은 정치적 소수자로 재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주었으니 군에도 가지 못한 허약한 자들을 상대로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식이 있다. 군 복무는 건강한 남성들이 제대 후에 사회에서 누릴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치르는 한시적인 희생 제의이자, 분단을 빌미로 병영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국가와 정치적 다수자 남성들의 소극적 공모라는 측면도 살펴야 한다.   
 
  사실 예비역들이 자신들을 국가주의의 피해자로 생각해달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을 철저히 물화된 수동적 존재로 생각해달라는 위험한 말과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그들이 국가주의를 직접 욕하지 않고 자신들만 난도질했다고 월장을 다그칠 일이 아니라, 기사에서 자신들을 타율적 객체로 묘사하지 않은 데 대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까. 월장이 예비역들을 도마 위에 올려 놓은 건 그들을 문제 해결의 적극적 주체로 판단하는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피해자 의식은 그 자체로 상당히 문제적이다. 이들이 '월장이 지적한 예비역 문화가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관련기사)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체화된 군사문화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시각이 완강히 버티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자신들을 군대의 희생자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들의 희생양 의식은 그 근거나 실체가 애매모호하고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으며, 제대 후 평생에 걸친 제도적인 보상으로 상쇄되는 과정을 통해 상당히 변질되어 있다. 그들의 내면에는 젊은 날 군대에서 죽도록 고생했다는 억울함과 더불어, 사회적 약자들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자신들만이 해냈다는 우월감이 뒤얽혀 있다. 만약 그들이 진정 군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병역을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신성한 의무'를 수행했다는 사람이, "나는 피해자란 말이야." 라고 항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비역들이 나라를 지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노라고 말해서도 안되며, 그 자부심을 건드린 '철없는' 여자들을 공격해서도 안된다. 그들이 월장 운영진을 성토하러 몰려간 곳이, 하필 자신들을 죽도록 고생시킨 가해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국방부의 홈페이지란 말인가?
 
  박노항을 생각해서라도 치가 안 떨리는지? 참으로 군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아로새겨진 사람이라면,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군대 이야기로 술잔을 기울이거나 지옥 같은 병영 생활을 추억으로 떠올리는 것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예비역들의 분노는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몰라주는 사람들에 대한 항변으로만 볼 수는 없다.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을 제대 후의 보상을 통해 승인하면서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역화 의식에 길들여진 그들로서는, 지금 그 허위 의식에 균열을 낸 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성역과는 무관한 순수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자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군필자 가산점 논쟁과 호주제 폐지 운동 등에 대한 그들의 파괴적인 대응에서도 잘 나타난 바 있다.   
 
 맹수에게 거울을 비쳐주면 적으로 알고 덤비거나 피한다. 반면에 침팬지는 거울 속의 동물을 자신으로 알아차린다. 유인원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아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월장에 실린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으러렁댄 일군의 예비역들에게도 근대적 자아 개념이 없다. 근대인은 혼자다. 그는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등불을 들고 어둠 속에서 홀로 길을 찾는 존재이다. 그러나 병사가 참호를 몰래 파고 그 속에서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보안대에 끌고 가는 한국의 군대라는 곳에서는 반성하고 성찰하는 개인이 양산되기란 꿈 같은 일이다. 군사문화에서는 나와 너, 개인과 개인이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우리 아니면 남, 아군 아니면 적군, 희지 않으면 검은 것 밖에는 없다. '우리'가 남일 수는 없는 법. 그러니 믿을 것은 '우리'끼리 뭉치는 것밖에 없는 일군의 예비역들은 '개떼'로 몰려다니며, 거울을 비춰준 이들에게 무지와 야만을 행사한다. 월장의 필진 중 개인의 이름으로 자신의 글에 대한 사과문이 나왔어도 이들이 단체 명의의 사과문을 끈질기게 요구했던 것은, 자기 내면에 개인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표성도 구심점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 무리에게 개별 자아는 없고 오로지 성난 군중만 있을 뿐이다. 그 뒤틀린 의식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병영적 사회 질서의 가장 가혹한 '피해자'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여성들의 말을 허하라 
 
 월장의 기사들은 사유와 글쓰기 방식이 하나로 통일된 정교한 글이 아니다. 그 내용과 형식 사이의 간극을 날렵하게 뛰어넘어 읽지 못하는 마초 예비역들의 반응을 생각하면, 월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예비역들이 한바탕 웃으라고 익살을 떨었는데 웃음은커녕 욕설이 터져나온다면 대학 공간의 군사주의에 대한 말 걸기는 일단 실패했다고 본다. 그러나 여성의 입으로 누구도 건드리기 힘들었던 성역을 깨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딴지일보에서는 국회의원들을 4년마다 털갈이하는 동물로, 예비군들을 개구리복만 입으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희귀동물이라 조롱한 적이 있어도,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고 항의하는 국회의원과 예비군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등굣길에 후배들이 예비역 선배에게 야구빳다로 기합 받는 모습을 보고 통탄하는 글을 교지에 실은 남학생이 무사하지 못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예비역들을 실컷 욕하지도 않은 여자들은 돌을 맞다니! 대학 캠퍼스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성역화된 예비역 문화에 대해 여성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데야 누구라도 그 말하는 입을 다치게 할 권리는 없다.
 
  봇물처럼 터져나올 여성들의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 예비역들이 이번 기회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는지 자성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죽 좋으련만, 그녀들로 하여금 제대한 남자들과의 소통 불가능성을 새삼 확인하도록 하거나, 여성의 이름으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좌절하게 만들까 두렵다. 예비역들은 어렵게 입을 연 여성들을 때려잡는 데 열을 올릴 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들에게도 신성한 국방 의무라고만 명명된, 병역에 대한 공식적 담론을 걷어내고 내면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제발 안티월장 같은 폐쇄적인 사이트에서 놀지 말고 소통의 공간을 찾아, 개인의 이름으로 나오기 바란다. 그때 월장이 흔쾌히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예비역 편에 서겠다. 예비역의 말을 허(許)하라고!
 
피에쑤: 나도 너희 예비역 넘들을 비꼬았다. 고까우면 덤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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