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케네 문명의 멸망을 앞당겼다는 10년 간의 트로이 원정을 불러 일으킨 원인이 되었으며, (그리고 나서도 다른 트로이의 여인들은 다 노예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헬렌만은 뻔뻔스럽게 다시 前 남편에게 복귀) 헤로도투스의 [역사] 앞부분에서 페르시아 학자들과 그리스 학자들이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따질 때 거론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괴테의 [파우스트] 2부에서 파우스트 박사와 결혼하여 바이런을 낳기까지 했으니, 서양 최고의 怪美人 헬렌의 생산력(?)과 미모, 영원한 젊음은 가히 하늘을 뒤덮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DJUNA님이
판타스틱 최근호에서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타 볼프(sic?)의 작품을 예로 들며 헬렌이 실은 기나긴 트로이 전쟁 와중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말하자면 木石에 지나지 않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길래 불초 소생이 기억하고 있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와 약간 다른 점이 있어 위키와 인터넷을 뒤져 보았는바, 역시 "나의 헬렌(우웩~)은 그러치 아너"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호머의 [일리어드] 자체가 아킬레우스가 왜 아가멤논에게 삐졌고 그 삐짐을 어떻게 풀게 되었는냐만 달랑 나오는 얘기인지라 소싯적 [일리어드]를 꽤 두툼한 완역본으로 처음 읽고 나서 황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木馬, 木馬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뒤에 자세히 붙은 해설을 읽고 나서야 트로이 전쟁 얘기가 호머의 [일리어드]를 비롯한 여러 傳承들을 종합한 것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결국 쉴리이만도 실은 어린 시절에 축약판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선물받은 것이지 일리어드부터 대뜸 선물 받았더라면 그런 꿈을 키우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지요.

(호머 선생, 木馬는 대체 어디 두셨나요-_-;;)
그런데 [일리어드]의 뒤에 붙었던 해설 중에서 흥미로왔던 것은 헬렌이 트로이 성 안에 잠입했던 그리스인들을 만나고서도 이를 '트로이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들에게 협력했다는 얘기였지요. 얘기가 이렇게 된다면 왜 헬렌이 세상이 뒤바뀌고 나서도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태연하게 살아 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설명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요. 이 때 [일리어드]의 번역자께서 인용하신 문헌이 어떤 문헌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만, 앞에서 말씀 드린 DJUNA님 인터뷰를 읽고 나서 그 얘기가 다시 생각 나서 위키의 트로이 전쟁 항목을 뒤지니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더군요.
Disguised as a beggar, Odysseus went to spy inside Troy, but was recognized by Helen. Homesick, Helen plotted with Odysseus. Later, with Helen's help, Odysseus and Diomedes stole the Palladium.
(거지로 위장^^하여,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성) 안에 첩보 (목적으로) 들어 갔지만, 헬렌이 오디세우스를 알아 보고 맙니다. 鄕愁에 시달리던 헬렌은 오디세우스와 함께 계교를 꾸몄습니다. 후에, 헬렌의 도움으로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팔라디움-트로이의 보물-을 훔쳤습니다.) 헬렌이 향수에 시달린다는 말 자체는 출전이 호머의 [오디세이]로 되어 있길래 그렇게 인용했구요.

(이 남자, 이 때만 흔들린 것이 아니군요^^;;)
그러자 듀게의 다른 회원 분이 페넬로페와 오디세우스를 헷갈린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길래 우선 위의 인용구를 다시 알려 드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출전이 오디세우스라고 하니까 "
적어도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죠. 트로이가 멸망한지 한참 후인데... 회상으로도 나온 기억은 없는데요."라는 당당한 덧글이 실리더군요. 그래서 나름 근성가이인 저로서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
오디세이]를 찾아 보니까
Book IV에 메넬라우스와 헬렌을 찾아 온 텔레마코스에게 헬렌이 다음과 같이 트로이 시절을 회상하는 말을 하더군요.
"Menelaus, son of Atreus, and you my good friends, sons of honourable men (which is as Jove wills, for he is the giver both of good and evil, and can do what he chooses), feast here as you will, and listen while I tell you a tale in season.
I cannot indeed name every single one of the exploits of Ulysses, but I can say what he did when he was before Troy, and you Achaeans were in all sorts of difficulties. He covered himself with wounds and bruises, dressed himself all in rags, and entered the enemy's city looking like a menial or a beggar. and quite different from what he did when he was among his own people. In this disguise he entered the city of Troy, and no one said anything to him. I alone recognized him and began to question him, but he was too cunning for me. When, however, I had washed and anointed him and had given him clothes, and after I had sworn a solemn oath not to betray him to the Trojans till he had got safely back to his own camp and to the ships, he told me all that the Achaeans meant to do. He killed many Trojans and got much information before he reached the Argive camp, for all which things the Trojan women made lamentation, but for my own part I was glad, for my heart was beginning to oam after my home, and I was unhappy about wrong that Venus had done me in taking me over there, away from my country, my girl, and my lawful wedded husband, who is indeed by no means deficient either in person or understanding."

(이 남자 말고도 원 나잇 스탠드까지^^;;)
강조한 부분만 대강 설명 드리면, 거지로 변장하여 트로이 성내에 잠입한
오디세우스를 헬렌만이 알아 보고 헬렌이 그를 씼기고 상처에 기름을 발라 주고 갈아 입을 옷을 주니까 오디세우스는 다시 그리스군 진영으로 오디세우스가 돌아 갈 때까지 그를 만났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면서 잠입 목적을 알려 주었던 모양입니다. (강조하지 않은 부분에 남편인 메넬라우스를 찬양한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건 헬렌으로서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더군다나 얘기하는 상대방이 오디세우스의 正妻의 아들 텔레마코스니까 그러려니 하시면 되겠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찌기 시오노 나나미 선생께선 오디세우스가 10년 간 고생하다가 돌아 온 얘기를 했다는 [오디세이]를 두고서 왜 하필이면 고생하고 돌아 다녔다는 곳이 풍광 좋은 지중해냐면서 술 처먹고 외박하고 돌아 온 남편이 아내에게 지어 낸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지요. :-) 그런데 이걸 보면 오디세우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파리스나 메넬라우스를 제치고 헬렌과도 "응응응"을 했던 것은 아닐까 살짝 의심이 가는 것도 어쩔 수 없군요^^

(오디세우스가 10년 간 "죽도록 고생하며" 헤매고 다녔다는 지중해 지도)
ps. 감동적 크리스마스 포스팅을 구상했었는데 엉뚱하게 흘렀군요...하여간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