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W       Auto        
<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여동생을 홀로 두고 떠나는 오빠의 유언
-
+
  Writer : medizen     Date : 09-02-20 18:33     Hit : 3415    
  Trackback URL :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commu_3/1117
   http://blog.hani.co.kr/medicine/20869 (469)
화창한 봄날,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후배가 생겼다며 나름 뽐내는 시기인데 이 친구는 6인 병실에 항암제를 맞고 있었다. 하나도 없는 머리는 니트모자로 가리고, 손에는 만화책을 들고, 다리는 흔들며, '선생님 내일은 외출 되는 거죠? 꼭이요. 친구들이랑 영화보러가기로 했어요!!!' 라고 외치는 남학생이 있었다.
 
180cm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 만화 슬램덩크의 서태웅이 떠오를 정도였다. 이 녀석도 농구를 좋아해서 침대 밑에는 항상 농구공이 있었고, 틈틈히 손가락 위로 농구공 돌리기 연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불 위에는 '슬램덩크'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이 만화책들은 밤에는 내 차지였다. 저녁에 이 녀석 병실에 가서 만화책을 한아름 뺏어와 옛날 책들은 복습을 하고, 신간은 예습을 하고......
 
이 학생(이하 태웅이)은 3달전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배를 열고 들어갔더니 이미 복막에 쫘악 전이가 되어 그냥 닫고 나왔다(Open & Close). 그리고, 생명연장과 삶의 질을 위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고, 이미 1,2차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젊고 건장한 체격과 체력 덕에 그럭저럭 잘 버텼다. 이번 5일 간의 3차 항암치료를 위하여 입원했는데 빨리 퇴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간혹 찾아오는 친구들과 퇴원하면 뭘 할지 고민하느라 여념없는 모습에 내 학창시절 생각도 났다. 이 녀석과 친구들이 병동을 들락거리면, 암환자 병동이 생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슬램덩크2.jpg

[지금도 슬램덩크를 보면, 병실에서 빌려보던 태웅이의 만화책이 떠오른다.]

 

-너무 젊으니까...... 더 빨리 진행하는 암 
퇴원하고 얼마가 지났을까? 응급실에서 이 녀석이 와 있다고 호출이 왔다. 배가 빵빵하게 부르다. 복수가 차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주사기로 배를 찔러 2L 정도 복수를 뽑으니 조금은 편해졌다 한다. 먹고는 싶은데 뭐든 먹으면 자꾸 토한다고 한다. 입원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혹을 형성하는 위암이 아니라 위벽에 스펀지처럼 스며드는 암(Borrmann type IV AGC)이라 위에서 음식물 배출을 직접 막지는 않지만, 위의 소화기능이 없어져서 음식물에 위 안에 고스란이 머물기 시작한 것이다. 미음으로 먹이니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저 그렇다. 어린 나이에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으까. 친구들이 들고온 과자나 통닭을 먹고 밤이면 토하는 날일 반복되었다. 그래도 놀러오는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락(樂)'을 뺏을 수는 없었다.
 
급기야 완전 장폐색까지 왔다. CT를 찍어보니 암이 복막에 워낙 많이 퍼져서 소장, 대장의 운동도 저하시키고 완전히 막히기까지 했다. 비위관(Levine tube)를 코에서 위로 삽입하여 위액과 침이 장으로 넘어가지 않고 몸 밖으로 나오도록 했다. 입으로는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화를 내거나 울진 않는다. 얼마나 살을 날이 남았는지 묻지도 않는다. 기운이 없어 비틀비틀 간신히 걸으며 비위관을 삽입한 채, 농구공을 들고 병원 뒷편 농구장에 간다. 친구들이 기다린다며......


NG tube.jpg

[이렇게 불편한 비위관(naso-gastric tube)를 삽입한 채로 농구공을 들고 나간다. 8층 병실 창가로 보니, 코트 옆 공 위에 걱터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이 녀석에겐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지 모르겠다.]

 

-예쁜 여동생 소연이 
이 녀석이 병실을 비우면,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여동생, 소연이(가명)가 남아서 침대를 치우고 책을 정리한다. 착하고 예쁜 예동생이다.
 
'선생님, 우리 오빠 저렇게 돌아 다녀도 되요?'
'안되지. 네가 좀 말려 봐라. 죽어도 저러고 싶다는데 참...'
'우리 오빠 완치되는 거죠? 대학도 갈 수 있는거죠?'
'......'

항암치료나 CT, 입원 등의 동의서를 받을 때면 항상 숙모가 온다. 코 흘리게 꼬마를 손에 달고, 항상 짜증이 많이 나있다. 간호사들은 마귀할범이라고 부른다. 밤 늦게 나타나서는 아픈 애 한테 짜증이나 내고, 여동생에게도 일찍일찍 다니라고 혼을 낸다고 한다. 간호사들에게도 병원비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며 화를 내고. 나도 이 아줌마가 조금 밉다. 하지만, 사정을 알면 이해는 된다.
 
2년 전 교통사고로 이 녀석들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뒤로 아이 둘을 키우며 트럭 운전을 하는 작은 삼촌댁에 얹혀 산다고 한다. 이 녀석들의 마음 고생이야 말할 나위 없겠지만, 어려운 살림에 갑자기 떠안은 조카들과 엎친데 덮쳐져 버린 이 녀석의 위암으로 떠안은 병원비까지...... 보통의 촌부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큰 삶의 무게겠지.
 
몇달 동안 간병하다 지친 '소연이'도 숙모가 많이 미워졌나보다. 그 수줍음 많던 소연이가 몇일째 집에도 안들어오고 학교도 안갔다고 한다. 태웅이는 이제 혼자서는 일어서기도 힘들다.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소연이를 찾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 태웅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몇일 뒤, 숙모의 손에 끌려 소연이는 병실에 나타났다.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에 물도 들이고, 옷도 날티(날날리티의 줄임말)나게 입고.


 

-몇 주 되지 않아...... 
태웅이가 너 같은 동생 필요없다고 소리치자,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 주저 앉아 소연이는 울고 있었다. 태웅이도 울었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태웅이의 약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태웅이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태웅이는 소연이에게만 줄 유서를 예쁜 편지지에 삐뚤빼뚤 쓰곤 했지만, 맘에 안든다며 버리는 종이가 태반, 누가 볼까봐 구겨서 버리는 것이 태반이었다. 떠나기 전 소연이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은 기억난다.
 
"까부는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작은 엄마,아빠 말씀 잘들어. 그리고, 너 꼭 대학에 가야 된다. 그래서 내가 못 해 본 것들 나 대신 다 해봐야 돼. 안그러면 하늘에서 엄마,아빠랑 기다리다 너 가만 안둘꺼야."
 

오늘 오전에 만난 젊은 환자분이 유서와 장기기증에 대해서 물어 보시더군요. 아이들이 많이 어린데, 간암이 너무 빨리 진행을 하네요. 누구나 남겨진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 같아, 옛날 일을 적어봅니다. 

  내과의사 한정호의 의료와 사회(im.docblog.kr), 출처 포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가능 

Community에 남겨주신 medizen 님의 최근 포스트 MORE▶
박병선 박사에 대한 짧은 기억
통혁당이 용공조작??? (5)
살인죄(과실치사)로 조사받느나 당분간 휴제합니다.| (9)
지방대 나와서 교수 할 생각을 해요? (2)
애 낳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생각하며
산책자   09-02-20 20:30
허참...
medizen님의 글만 읽어도 눈물이 나는데, 이런 일을 늘 지켜보는 분들의 마음은 어떨지.
athina   09-02-21 05:10
잘 읽었습니다.
김대호   09-02-21 09:28
부모님 교통사고에, 오빠는 고2에 암이라, 트럭운전하는 삼촌네는 어렵고....
우리 애들이 고3, 고2 남매라서 그런지, 애들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네요. 더욱이 슬램덩크 만화책을 보니......
(나도 눈물 샘이 정상이라는 것을 정말 오랜 만에 확인하네요. 나도 나이가 들어서 약해졌나! )

젊은 사람을  교통사고로 순간에 데려가는 것보다, 암 투병시키다가 데려가는 것이 너무 잔혹한 것 같습니다.
구오스   09-02-23 08:46
메디즌/
요즘 들어 더 느끼는 것이지만, 님은 결국 종교에 귀의하실 분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이런 얘기 기분 나쁘실 수도 있지만, 저로서는 솔직한 생각입니다.

님의 글은 아주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종이컵   09-02-23 17:23
기도만이
오직 기도만이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때.
제발
제발 나의 이 기도에 듣고 응답해 주시기를
그 응답을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때.

태웅이의 너무도 짧은 시간과
푸르를 나이라서 더 깊었을 절망에
저의 탄식을 보탭니다.
medizen   09-02-24 14:47
구오스/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이해합니다.


종이컵/

소아 혈액종양을 전공하면, 꼬마들 항암치료하며 살아야하는데... 저는 미칠 껍니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참고 버티는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p.s. : 제가 백혈병환우회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카소   09-02-24 16:47
암이 점차 퍼지면서 사람이 망가져 가는 것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든 일입니다. 어린 나이라면 더욱 그랬겠군요. 마지막 유언을 보니 이럴 때는 정말 천국이란 곳이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Venus   09-11-01 13:09
소년과 소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No Subject writer Date Hit
[!] 새 게시판 관리지침입니다. 꼭 읽어주세요. ChiefEditor 10-12 6581
502 MBC 9시뉴스 기상캐스터 박은지 (11) tailspin 07-29 14289
501 성희롱의 추억 (6) athina 08-18 7303
500 [!] 새 게시판 관리지침입니다. 꼭 읽어주세요. ChiefEditor 10-12 6581
499 내 생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들 [3] (8) medizen 08-29 5847
498 스켑렙 회원들끼리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2) ChiefEditor 10-08 5804
497 평등사회의 공포, <해리슨 버거론> mahlerian 10-29 5005
496 Irreversible(2002)에서의 문제 장면 2개 (2) THESE 12-29 4868
495 설설설 (4) jawoon 04-28 4370
494 성공, 과외, 대학입시 (21) 하킴 07-18 4179
493 내가 경제학을 좋아하는 이유 (16) 하킴 01-16 4146
492 사채업자의 빚독촉에 시달리던 악몽들, 안재환씨 편히 가시기를 (15) medizen 09-09 4061
491 [변희재] 연애 못하는 자들의 여러 가지 유형 (6) mahlerian 10-12 3893
490 사랑을 놓치다 (2) ScarletPark 11-10 3719
489 마르크스땅 -학원의 계급투쟁- 마나 11-16 3718
488 아빠랑 함께 있어 좋아요." 합병증으로 병실을 지키는 딸의 대답 (5) medizen 04-21 3546
487 지방대 나와서 교수 할 생각을 해요? (2) medizen 05-18 3541
486 편재부재님의 글 ChiefEditor 06-13 3463
485 조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 1 ScarletPark 12-01 3441
484 경제학 공부 (1) 하킴 12-20 3440
483 난감한 인생 (6) tailspin 10-29 3435
482 특별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들, 저 하늘의 태양, 그리고 삶과 죽음. (3)  medizen 10-23 3420
481 여동생을 홀로 두고 떠나는 오빠의 유언 (8)  medizen 02-20 3416
480 여자의 매력 (7) 하킴 06-03 3413
479 좌파, 리버럴, 페미니스트 (1) 하킴 10-29 3390
478 결혼, 섹스 (3) 하킴 08-09 3276
477 Politics is personal (8) 하킴 01-08 3240
476 펌글-나의 일생?-부재 [채팅이야기] 경청하는사람 07-02 3240
475 고려대 여학생의 한 대자보 (12) alleviate 03-11 3236
474 skeptical LEFT... (3) 고효진 02-22 3223
473 여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6) mahlerian 08-12 3223
472 반페미니즘 (20) 탈속인 09-22 3183
471 올해의 사자단어 한번 만들어 보시죠. (5) 외환가 12-18 3155
470 Urgency and importance (13) 하킴 10-19 3151
469 학벌과 시그널링 (10) 하킴 11-24 3137
468 이런 남자가 매력있지요 (11) 하킴 05-22 3131
467 설문조사: 사랑과 섹스 (14) 하킴 01-26 3061
466 전자마약이라 불리는 i-doser라는게, 요즘 커뮤니티를 통해 보이기 시작하는데.. (3) axosize 02-16 3047
465 이영훈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읽고... (9)  ZEPPIN 10-11 3014
464 밀양연합사건을 보며 든 생각, 그리고 배신에 대한 처벌(?)의 방법 (19) medizen 08-01 2981
463 극적인 반전, 힐러리의 뉴 햄프셔 생환 이야기 (7) 오돌또기 01-09 2980
462 능력있는 유전자와 무능한 유전자의 머니게임 (9) 오돌또기 01-14 2960
461 시술 직후 갑자기 환자가 죽었을 때 의사의 심정 (7) medizen 10-12 2944
460 내가 꿈꾸는 사회, 내가 미국을 좋아하는 이유 (10) 하킴 10-27 2941
459 남자의 매력 (13) 하킴 12-26 2927
458 식객 (2) ScarletPark 11-08 2925
457 [소개] 환상적인 필력의 축구 칼럼니스트 이형석 athina 02-01 2925
456 가족,학교,스켑렙 (4) Perrennis 08-16 2911
455 2009년 4월 19일 故박찬우동지 9주기 추모제 (2) medizen 04-13 2892
454 조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면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 2 ScarletPark 12-01 2886
453 [질문] 경제학 : 맬서스의 인구론 (2) 종이컵 06-19 2881
452 헬렌과 오디세우스의 관계에 관한 소수의견 (5) Cato 12-25 2880
451 이승만 박사 논문 pd f화일 (2) 흑진주 01-12 2867
450 좌장면 먹고 좌로 누워 좌는 좌파 (1) heysugah 11-16 2854
449 ==== 이 게시판은 앞으로 새로운 관리지침으로 운영됩니다. ==== ChiefEditor 10-12 2848
448 '돈 없어서 항암치료 안 받으려고 해요?', 의사가 이렇게 말해도 될까? (7) medizen 09-24 2839
447 ========================================= ChiefEditor 10-12 2835
446 은근히 점 같은 거 맞는 거 같지 않아요? (4) 이녁 10-09 2819
445 <18금>미래의 성충동 조절 paracelsus 01-31 2819
444 헌화 (5) 종이컵 04-29 2815
443 '사랑을 놓치다' (4) 하킴 11-11 2807
 1  2  3  4  5  6  7  8  9  
갈천입니다. 사무..
갈천/2013-05-22
[CSI] 손석희 씨 논..
mahlerian/2013-05-22
[CSI] 손석희 씨 논..
mahlerian/2013-05-22

영문 문헌들을 고..
mahlerian/2013-05-21
손석희 논문표절 ..
factualism/2013-05-20
학계 자체가 썩어..
Kuusinen/2013-05-20
보니까 <한겨레>는 ..
mahlerian/2013-05-20
밝혀두지만 김미화..
mahlerian/2013-05-20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 의료일원화국민연대 healthlog 데일리안 광주.전라 빅뉴스 미디어워치 柱,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한국무신론자 모임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TED the skeptic's dictionary 한글판 the TalkOrgins Archive 한글판 Quackwatch 한글판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the Brights CSI RICHARD DAWKINS.net (주)시대정신 조갑제닷컴 하종강의 노동과 꿈 사회디자인연구소 공공경영연구원 김경재닷컴 skyang.com
화해를위해서 미디어워치

   About Us   |   FAQ   |   Terms Of Service   |   Private Policy   |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