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창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FTA 결사반대’는 또 어떤가? 이것 역시 조중동이 잘못 설정한 아젠다 중 하나다. 잠시 그 내막을 살펴보자.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경제전문가들과 주요 언론들은 막 출범한 국민의정부에 대해 ‘5년 안에 환란만 극복해도 역사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기록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 이면에는 ‘무능한 국민의정부가 환란을 감히 어떻게 쉽게 극복할 수 있겠냐’라는 비아냥거림이 숨어 이었다. 그만큼 외환위기는 심각한 사태다. 실제로 1980년대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중남미 국가들은 10년 가까이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물가가 한 해에 5천 퍼센트 이상 오르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불과 1년만에 극복했다. 1998년 말에는 고갈 직전이었던 외환보유고를 과거 최고 수준보다 거의 두 배 많은 520억 달러나 쌓았다. 외환위기 즉, 외환보유고 고갈사태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남은 문제는 경기 회복이었는데, 이것도 세계사에서 가장 빠르게 이뤄냈다. 외환위기 1년 뒤인 1999년의 성장률이 무려 10.7%에 달했던 것이다.
국부유출이나 공적자금 투입 그리고 빈부격차 악화 등 부작용과 후유증도 세계사에서 가장 적었다. 반면에, 1976년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영국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난이 10년 가까이 지속됐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며 사회혼란도 심각하여 데모로 날을 세웠다.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철강산업, 석탄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은 거의 모두 초토화됐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대부분 소유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국민의정부가 환란극복에 성공하자 조중동은 보도태도를 돌변했다. ‘IMF의 구제금융 조건이 너무 가혹했고, 노예처럼 그것을 무조건 수용함으로써 흑자 기업까지 도산시키고 실업사태를 발생시켰다.’고 줄기차게 보도했던 것이다. 조중동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던 자칭 진보 먹물들은 조중동의 이런 보도태도에 열심히 부화뇌동했다. 특히 미국과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 민영화 등을 미국식 경제시스템의 강제이식이라고 앞장서서 가열차게 비난하며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구제금융을 받았으면 당연히 갚아야 했고, 구제금융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국제수지를 개선시켜야 했으며, 국제수지를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긴축정책과 구조조정 등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향상시켜 국제수지를 장기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민영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역시 필수적이었다. 무엇보다 웃기는 것은 ‘미국 경제시스템의 강제이식’이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경제사를 들여다보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고립주의를 내세웠다. 심지어 세계대전 직후에 국제무역기구(ITO)를 설립하기로 했던 국제적인 약속마저 파기했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 말부터 국제수지가 적자로 돌아서자 주요 소비제품에 대해 직접적인 수입규제에까지 나섰다. 미국이 주도하여 창설했던 GATT와 IMF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짓을 앞장서서 저지른 것이다.
먼저 섬유류와 신발 등의 수입을 규제했고, 철강도 수입규제를 했으며, 나중에는 자동차까지 간접적인 수입규제를 했다. 이걸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자간 협상을 벌였고, 쌍무협상도 함께 전개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MFA(다자간섬유협정)’이고 ‘철강협정’이며 ‘자동차 수출 자율규제’ 등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을 시행했던 것이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미국의 국제수지는 과연 개선됐을까? 아니다. 미국의 국제수지는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보호무역의 보호를 받은 미국 산업들은 경쟁력과 성장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경쟁력과 성장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1960년대 후반부터는 물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는 성장률까지 떨어져 본격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었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경기가 하강했고, 경기를 상승시키려면 물가가 불안해지는 전형적인 딜레마에 걸려든 것이다.
미국의 경제난은 198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 실업률은 10%를 넘어섰고, 물가 역시 10%를 넘어섰다. 어느 사시엔가 미국의 국민소득은 패전국인 일본에게 뒤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뭔가 획기적인 변신이 필요했다. 획기적인 변신을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고, 그런 용기를 낸 사람은 카터였다.
카터는 개방화를 통해 미국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추진했다. 과거의 보호무역주의 전통을 과감하게 청산한 셈인데, 이처럼 용기를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국내 자칭 진보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꼴통 보수나 추진할 법한 개방화 정책을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카터가 본격적으로 펼친 것이다. 한마디로, 개방화는 1970년대 말에야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미국 병’을 치유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 성과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이 너무 짧아서 미국 국민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고, 카터는 재선에는 실패했다(그러나 이제는 존경받는다). 그 뒤를 이은 레이건은 카터의 개방화 정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나아가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했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마냥 일본경제에 뒤처지기만 했던 미국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결국 1990년대에는 일본경제를 다시 뛰어넘는 성과를 남겼다.
그러자 세계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주목했다. 특히 경제난이나 경제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미국의 뒤를 열심히 따랐다.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1990년 전후에 뉴질랜드와 호주는 나란히 금융위기에 처했고, 경제난이 찾아왔다. 호주는 과감하게 개방화, 규제완화,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얼른 추진하여 경제위기에서 벗어났고, 경기회복도 2년만에 이뤄냈다. 이런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은 뜻밖에도 노동당 출신인 봅 호크 총리였다.
반면에, 뉴질랜드는 경제위기를 벗어날 거의 유일한 처방인 신자유주의를 배척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4년 동안이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경제난이 점점 심화되자, 1993년부터는 호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야 했다. 40만 명이 넘었던 공무원을 10만명 아래로 줄였고, 심지어 감옥까지 민영화했다.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 1994년 성장률은 이례적으로 6.4%를 기록했다.
국내 자칭 진보가 얼마나 세상물정에 어두운지는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한다. 그들은 과학적 진보가 결코 아닌 셈이다. 현실에 밀착하지 않고 어떻게 과학적 진보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언뜻 보기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천동설을 폐기하고 지동설을 받아들인 뒤부터 인류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FTA 결사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관념적 진보, 공상적 진보들이나 내세울 일이다. 해외 과학적 진보는 이런 일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은 민심의 추이다. 뛰어난 ‘정치 쇼’를 통해 그리고 뛰어난 ‘정치적 선동’을 통해 지금은 민심을 휘어잡은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게 얼마나 가겠는가? 아무리 격렬하게 반대해도 FTA는 어차피 국회를 통과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질 폭력적 사태는 일시적으로 민심을 얻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다.
FTA가 통과된 뒤, 지금 자칭 진보가 주장하는 중대한 사태들이 좀처럼 벌어지지 않을 게 빤한데, 실제로 그런 사례를 세계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데, 그 때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반대의 핵심인 ISD도 마찬가지로서, 중대한 사태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민심은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열렬히 동참했던 만큼 극심한 열패감 나아가 배신감을 머지않아 느낄 게 빤하다.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WTO 가입했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에도 진보 진영은 우리 경제가 곧 파국에 처할 것처럼 외치며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한 경제파국이나 중대한 사태는 어디에서도 벌어지지 않았다. 특히 유통산업 개방은 더욱 그랬다.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국내 유통산업을 지배할 것이 빤하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실제로 다국적 유통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했지만, 지금은 다국적 기업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유통기업들이 개방화를 통해 체질개선을 단행했고, 결국은 다국적 거대기업을 거의 모두 물리친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FTA 결사반대’를 방관하고 비웃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와 같은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은 ‘FTA 결사반대’를 열렬하게 찬성하고 지원하지만, 그들이 실망할 날도 머지않았다. 국내 자칭 진보들이 겁주고 있는 중대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젊은이들도 나이든 사람들처럼 자칭 진보의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럼 민심은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그때는 국민 인식은 어떻게 변할까?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을 한 꼴로 인식되지 않을까?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나라를 맡길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