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W       Auto        
<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광주사태. 교도소공격에 대한 진실여부와 항소심판결의 의미
-
+
  Writer : 갈천     Date : 11-05-30 22:44     Hit : 10010    
  Trackback URL :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01_main_square/96119
아마데우스님께서 광주사태당시 시위대의 교도소 공격은 사실이 아니며 실상은 광주사태의 비극을 타지방으로 알리려 빠져나가려는 시위대들을 공수부대가 차단하면서 시위대들을 학살한 것이라고 주장하셨으며
그 근거로 광주교도소는 사면이 고속도로와 담양행국도로 둘러쌓여 있는 형태이고, 시위대 차량과의 충돌은 모두 진압군이 21일 저녁 교도소로 부터 200~300m 떨어진 도로에 설치한 바리케이트에서 발생했다고 했습니다.(필명 오월님과 김영택씨의 글을 참조)
 
제가 항소심의 판결문 일부를 인용하며 시위대들은 교도소를 공격한 것이 맞다고 말씀드렸더니
 
항소심판결은 전두환통치 당시 이루어졌던 제반 법률행위들에 대한 법적 안정성을 흔들지 않기 위해 진압군의 행위를 과잉진압 학살이 아닌 정당한 방어로 판정했던 것으로서 사실을 부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소심 판결에 따라 교도소 공격이 분명히 있었고 그 의미는 제봉님의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광주측의 위험한 반역적 행태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봅니다.
 
교도소 공격이 분명하다고 보는 이유는
 
첫째 이미 제가 제시한 판결문 요약문에 분명히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무장시위대로 부터 도합 5차례의 공격을 받은 사실, 5.22 00:40경에는 무장한 시위대가 차량 6대에 분승하여 광주교도소로 접근하여 계엄군과 교전한 일이 있고

같은날 09:00경 다시 무장시위대가 2.5t 군용트럭에 엘엠지(LMG) 기관총을 탑재한 상태에서 광주교도소 정문방향으로 접근하면서 총격을 가하였고...인용끝>

 
정문을 목표로 2.5톤 군용트럭으로 돌진하면서 기관총을 난사하면 그것이 교도소 공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정문은 교도소 남쪽과 동쪽이 만나는 모퉁이에 있고 담양행국도변에서 160m 왼쪽 교도소쪽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시위대들은 진압군의 바리케이트를 뚫고 담양국도에서 교도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교도소 정문으로 110m를 돌진하다가 정문을 50m 남기고 3공수11대대의 공격으로 저지되었던 것입니다.
 
아래 특전사 전투상보에 기재된 것을 보면 

23일 08:00 교도소 앞 총격 - 21/2 톤에 탑승한 폭도 6명이 교도소로 접근, 50미터 전방의 바리케이트에 봉착, 진출하지 못하자 11대대에서 즉각 응사 

--> 교도소 앞이라 함은 담양행 국도상이 아니고 바로 교도소 정문 앞이었던 것입니다

 
판결문 원문을 보면 재판부는 1심의 증거에 더해서 임헌표 당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의 진술을 채택했습니다.
<인용....그러나 위에나온 증거들과 증인 임헌표의 당심 법정에서의 진술과 검사작성의 임헌표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 및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회의록 제26호 중 임헌표의 진술기재(동 수사기록 제37권 43963~43997면)를 종합하면...인용끝>
 
임헌표는 소위 전두환 메모 "소선배, 공수부대애들 기죽이지 말아주십시오"의 존재를 증언하여 신군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사람입니다.
 
 
둘째 나머지 4차례의 공격 역시 교도소를 목표로 했다고 판단 되는데
 
1. 아무리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시위대의 차량이라 하더라도 캄캄한 야밤에 버스,트럭등 중형차량을 동원하여 교도소를 방어하는 진압군에 총격을 가하는 행위가 단순히 통행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없고
 
2. 무엇보다 전남대 5.18연구소에 보관된 광주시위대측의 증언들 상당수가 시위대들이 교도소를 목표로 이동했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친구와 헤어지고 다시 시민군 차를 탔다. 교도소로 간다고 했다...(.위성삼)

차에 탄 우리는 곧바로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교도소에서 군인들이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한다는 소리를 들어서..(김기광)

교도소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들은 우리 소대장은 대원 5명과 함께 지원하러 교도소로 떠났다.(안성옥)

바로 그때 지프차 한 대가 교도소를 습격하러 가기로 했다면서 차에 타라고 했다.(최인영)

운전대를 잡은 청년이 교도소로 간다고 했다. 교도소를 향해 가고있는데...(손종대)

모두 죽는다" 면서 말렸으나 시민들이 죽는 광경을 보고 온 그들은 시민군들을 태우고 교도소를 향해서 갔다(임춘식)

교도소로 가자며 다시 차를 돌려 교도소로 향했다...교도소는 안 되겠다며 3시에 도청을 탈환하니 가자고 했다(이지형)

일부 사람들이 4대의 군용트럭에 나뉘어 타고 교도소로 간다고 했다. 나는 일행들과 자켜보고 있다가 무서울 것 같아 따라가지 않았다(김연태)

 

교도소를 방어했던 공수부대측의 증언을 들어보면 여러분은 좀 더 입체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증언은 사실 광주사태를 비판하는 보수우파들이라면 생기초적로 알고 있는 자료입니다.좌파 여러분의 눈에는 거슬리는 표현도 있을 것입니다만, 아래 김치년씨의 증언을 읽어보십시오.

 

3공수여단 12대대 작전병 출신의 실명수기/내가 겪은 광주사태 「전투는 있었지만 학살은 없었다」 기고자 : 김치년 월간조선 [발행일] 1996.04.01

....특히 장갑차에서 기어 나온 시민군은 그때까지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는데 그의 등에는 「운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매우 심하게 구타를 당한 뒤 후송됐다. 장갑차는 한동안 공터에 세워져 있었다.

필자가 확인한 그 장갑차 속에는 주먹밥 두어 개와 소주병 그리고 태극기가 들어 있었으며 20대 전후로 보이는 그 사람은 그때까지 만취되어 있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가 지르는 소리는『대한민국 만세, 날 죽여라 이놈들아』등이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양쪽 다 대한민국을 위한다며 생지옥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대는 서둘러 광주 교도소에 도착하였고 우리 대대는 교도소에서 정문 방향으로 우측 그러니까 광주 시내를 향하여 호남고속도로와 인접한 부분까지 배치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당시 계엄군들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은 대체 누가 저들을 그토록 광분시키며 조직적으로 시위에 합류토록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대부분 첫날부터 비롯된 과잉진압으로 公憤에 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란 설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상황을 자세히 겪은 사람들은 이런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장갑차를 탈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외국 군대도 아닌 국군에게 달려든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 교전 끝에 버스만 그대로 돌아갔고 지프차는 고속도로 위에 총격을 받은 채 멈추어 섰다. 우리는 30여 분 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자 우리는 지프차로 향했다. 가보니 그 속에는 2명의 젊은 생명이 태극기를 감싸고 총을 든 채 죽어 있었다. 시민군들이 몰고 온 차량 모두가 그런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지프차 안에도 소주병과 김밥, 주먹밥이 탄창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5월 22일 아침 교도소 정면 도로에 서 있던 버스 1대를 견인해 왔으며 조금 후에도 또 다시 총성이 났다. 교도소 정면 도로 너머에 조그마한 야산이 있었는데 당시 이곳에는 백설표 설탕을 선전하는 커다란 광고탑이 있었다.

총알은 이 광고탑 부근에서 날아왔다. 약 50~60여 명의 시민군들이 이 광고탑을 주위로 하여 교도소를 향해 사격을 가해 왔으며 그것은 우리 대대 정면 방향이었다. 우리는 이 고지를「설탕고지」라고 이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대대장은 1개 지역대를 선정했고, 지역대장 중 가장 고참이 근무하던 6지역대가 선발대로 시민군과 교전을 하게 됐다. 당시는「설탕고지 탈환작전」인 셈이다.

약 1시간에 걸친 부대의 진격 끝에 이 고지는 우리가 점령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교도소 옥탑 양쪽에 설치된 M-60 기관총에의 지원 사격 때문이었다. 이때 시민군 사상자들이 얼마나 됐는지 필자는 알 수 없다.

설탕고지를 진압한 6지역대가 임무교대를 위해 철수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이번에는 군용트럭 1대가 교도소 정문을 향하여 맹렬하게 질주하며 달려들었다. 교도소 옥탑에 설치된 M-60 기관총에서 실탄을 차량에 퍼부었다.

시민군이 몰고 온 군용차량은 총알 구멍을 무수히 낸 채 멈추어 섰고 그 위에서 4명이 뛰어내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 중 1명은 저격병에 의해 죽었고 나머지 3명은 포복으로 끝내 인가 쪽으로 기어서 도망가 버렸다.(이 무렵 트럭을 타고 지나던 민간인이 총격을 받아 한 명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곧이어 그 트럭을 견인해 왔는데 거기엔 놀랍게도 다이너마이트 2상자와 수류탄 4~5개가 실려 있었다. 만약 이것이 폭발했다면 교도소 정문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이제 제봉님의 주장에 대해 답할 차례입니다.

비록 시위대들이 산발적으로 교도소를 공격했다해도 그것은 최정예 공수부대 1개여단이 강력하게 지키고 있는데 그것이 무슨 충격을 주는가하는 의문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역시 죽일놈의 전두환이 쿠테타를 하면서 시민을 죽였기 때문에 이 모든일이 발생되었기 때문에 광주시위대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당시는 전두환이 쿠테타를 했다고 볼수는 없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국헌문란에 의한 내란범행을 시작하고 막 진행중인 상태입니다만 본격적으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쿠테타는 국보위 활동 부터일 것입니다. 전두환 본인도 자신의 행위를 쿠테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최규하 정권내에서 혼란을 이용한 정국장악 시도 정도이겠지요.  

교도소 공격은 말이죠 심각한 사안입니다. 외부에서 총격이 계속되면 감방안에 갇혀 세상을 증오하며 특히 공산주의혁명을 꿈꾸고, 노동자 천국의 도래를 기다리며 한평생을 살아왔던 사상범들에게는 세상이 뒤집혀지는 새 날이 오는 겁니다. 성냥불 하나 그으면 폭발하는 것이죠.

교도소안에서는 심야에 교도소밖 사방에서 발사되는 총소리를 듣고 드디어 새세상이 왔다며 2000명의 죄수들이 일제히 폭동을 일으키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밖에 배치되었던 병력을 교도소안으로 돌리면 외곽경비는 그만큼 취약해 지고.. 밖에서는 계속 총격을 가하고. 교도소 밖과 안이 서로 호응하면서 연쇄반응으로 사태가 악화되어 가는 것이지요.   

신현확의 경험을 들어보시겠습니까? 4.19 직후부터 5.16 직전까지 교도소 안에서 무슨 일이벌어졌는지.

 

신현확이 만난 간첩. / 월간조선 1999년 2월. 신현확의 육성증언에서 발췌.

대통령 암살과 군부의 하극상, 정치권의 대공세라는 국가위기상황을 맞은 신총리의 역할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그의 소신과 국가관, 시국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한 배짱과 통찰력, 현실인식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 답은 아마 신총리의 감옥살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신총리는 자유당 말기 부흥부장관으로서 3.15부정선거에 관여한 죄목으로 2년 3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바 있다.

<3.16 선거가 부정선거가 됐단 말이야.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내죄목이 “자유당표가 너무 많으니까 국무회의에서 자유당표를 줄여야한다는 결의를 했다”는 죄목으로 징역을 받았지.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나>

이 장면에서 신총리 측근의 보충설명. “신총리의 증언에 의하면 3.15선거 당시 국무위원들이 개표상황을 지켜보고있는데 부통령후보인 이기붕씨와 장면씨의 표가 92대8로 나오자 국무위원들이 최인규장관을 불러 ‘이건 시중여론과 너무 다른 것 같소’하고 지적했답니다. 그러자 갑자기 개표결과가 70대30으로 바뀌었답니다. 이것이 4.19 이후 국무위원들이 부정선거에 개입한 혐의의 증거가 된 거지요”

< 전 국무위원이 15년 구형을 받았고 선고는 7년6개월으로 잘랐지. 그중에 중심인물은 무기, 최인규는 나중에 사형이 집행됐고 나머지는 전무 7년6개월. 이래가지고 있었는데...5.16 혁명 나기전에 어땠나 하면 내 방에 간첩이 두 명 있었어. 그러면 어떤지 알아? 아홉명이 앉아 자요. 거기엔 살인범이 있고 쓰리꾼도 있고...전부 같이 넣었어. 그리고 우리 일행은 한 방에 한사람씩 집어 넣었어. 두 사람이 있으면 의논한다고..말로 형언할 수가 없는 거요. >

하루아침에 장관신분에서 죄수가 된 신총리는 간첩과 한방에 투옥됨으로써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오죽했으면 5.16이 일어 났을 때 감방안에서 “이제 赤化는 면하게 됐다”면서 만세를 불렀을까. 다시 신총리의 증언.

< 그 감옥 내부는 어땠느냐. 간첩도 같이 있었는데, 서울대학교 졸업생도 한 놈 있었어. 서울대 졸업하고 월북해서 김일성대학 졸업하고 간첩교육을 5년 받고 넘어와서 활동하다가 붙잡혀 들어왔다 이말이야. 잡힌 것이 아니고 저희형 아버지가 알고 이놈을 억지로 붙잡아 가지고 자수시켰단 말이야. 자기들이 무사할려고.

똑똑하긴 똑똑한 놈이야. 그게 학생조직에 들어가서 어떻게 활동했고 4.19를 어떻게 조직하고, 그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다 하는거야. 내가 그 얘기를 다 들었지. 이 놈은 그 얘기를 나한테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다른 놈들 교육시키는 거야. 절도, 강도, 살인범 이런 놈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거지. 사흘만 지나면 전부 간첩 지지자가 되는 거야.

그 안에는 이체제에 대해 좋다고 찬성하는 놈 한 놈도 없는거야. 간첩 한 놈만 있으면, 사흘 지나면 간첩이 오야붕 되는 거야. 그래 얘기를 죽 하기에 내가 물었어.

‘네가 넘어왔을 때 처음 어디에 갔느냐?’

‘서울시내 명동에 갔습니다’

‘명동에서 어떻게 느꼈느냐?’ 하니 그놈 말이 명동에 가보니, 시골에서 닭을 키우면 새벽에 닭장을 열어준다. 그럼 닭이 와하고 닭장에서 나가는 거와 똑같다는 거야. 무슨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 닭이 몰려나가는 거하고 똑같지 이게 뭐 사람사는 사회냐. 이렇게 말하더라고.

내가 이북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평양은 다 목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나오고, 줄서서 다니고,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 닭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지 않습니다. 이러는 거야.

자유가 뭐고 통제가 뭐라는 걸 전혀 모르는 거야. 그 놈이, ‘남한적화가 이제 얼마 안남았다’ 는 거야. 오래 가야 두 달 남았다. 신문도 안들어 오고 라디오도 없는 콘크리트방안에 앉아있는 데도 정보가 다 들어오는 거야. 온갖 기술 동원해서 통신이 24시간 계속되는 거야. 내가 2년 7개월 살아서 잘 알아. 목침을 벽에다 대고 말하면 전화랑 똑같 해. 옆 방에서 말하면 다 들리는 거야. 이런 식으로 모든게 다 전달이 되었어.

사회상을 판단해 보니 정말 간첩들 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뒤집어지겠구나. 2년3개월 동안 거기 들어앉은 우리가 최대로 걱정한 것이 “이 나라가 언제 뒤집어 지나” 이거야. 대한민국 망하는 거 아니냐고 !

그러다가 5.16이 떡 났을 때 그 안에서 모두 만세를 불렀어. 이제는 赤化 안된다 하고. 이게 진짜요! 아 죄수들 중에서도 우리들 같은 사람들 있지만. 대부분은 저짝이었다고. 군사혁명을 누가 했는지도 모르고, 그 소식만 듣고는 “이제 赤化를 면했다”고 만세를 불렀다니까!! >

< 5.16 혁명이 나니까 또 다시 혁명재판을 한대..내가 혁명검찰에서 3분 조사받고..하하. 조사를 3분 받았다니까. 또 다시 기소, 재판, 언도 7년6개월.. 이렇게 된거지.

우리는 “한국은 赤化 안되고 이제는 살았다!” 이러카는데 아무 조사도 안하고, 나한테는 3분 조사하고...혁명정부라는게 또 도대체 뭐냐. 엉터리도 분수가 있지. >

 

이상입니다.

 

Main Square에 남겨주신 갈천 님의 최근 포스트 MORE▶
빨갱이 딱지와 칼포퍼 (3)
광주폭동 대 민주화운동으로 대립, 5.18관련 뉴욕타임즈 기사...일베를 안볼 …
한 일베인의 12.12, 5.18 의문에 대한 설명
불쌍한 박정희. 이제는 딸 한테서도 버림받는구나.. (9)
독도 영유권에 대한 대한제국 때의 근거 소개 (26)
아마데우스   11-05-31 12:42
1.광주교도소는 광주~담양 29번 국도와 호남고속도로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습니다. 교도소 바로 옆에 도로가 붙어 있죠. 교도소 정문은 광주~담양 29번 국도 방면에 있습니다. 호남고속도로 방면은 교도소 정문과 정반대편이고 5m이상되는 교도소 담장에 막혀있기 때문에, 적어도 호남고속도로로 향한 차량은 교도소 습격 의도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계엄군 전투상보, 작전일지를 보면 교도소 근처를 지나간 차량들 대부분은 광주교도소 정문과 관계없는 호남고속도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정문이 있는 광주~담양 도로를 향한 경우는 2차례인데, 이 경우 관련자의 수가 각각 2.5톤 트럭 1대에 탑승한 6명, 소방차 1대에 탑승한 4명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교도소 습격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교도소 습격 인원이라기 보기에는 평시에도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글만 보시지 마시고, 위성사진으로 광주교도소 위치를 직접 보십시오. 작전일지나 전투상보도 한두개가 아닌, 여러개를 종합해서 보시고요. 현장답사를 마친 검찰과 국방부과거사위는 왜 교도소 습격은 사실이 아니고, 지나가던 차량에 발포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겠습니까. 교도소 직원들은 왜 교도소 습격 사건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했겠습니까.

----------------------------------------------------------------

2.광주 시민의 증언이라고 퍼오기는 했는데, 맥락을 무시하고 교도소라는 부분만 따왔네요.

김기광, 안성옥, 손종대, 임춘식의 증언을 읽어보면 교도소를 습격하려고 한게 아니고, 교도소 주변에 배치된 공수부대가 바리케이드로 통행을 막고 지나가던 차량에 사격을 하기 때문에 공수부대와 싸우기 위해 교도소 쪽으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교도소로 향하는 도중 공수부대의 경계가 삼엄한 것을 보고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이지형, 김연태는 21일 오후 시민이 무장하기 전, 비무장상태에서 체포시위대 석방 시위를 위해 교도소로 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우 31사단 전투상보를 보면, 지휘관이 비무장시위대에 해산권유를 하자, 비무장시위대가 순순히 해산을 했다고 합니다.

-----------------------------------------------------------------------

3.임헌채가 신군부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걸로 증언의 가치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보이는데, 임헌채가 소준열이 전두환의 메모를 받았다고 증언을 하기는 했죠. 그런데 소준열이 메모지를 전달받았다는 것은 신군부 측에 유리한 진술을 한  소준열 본인도 21차 공판에서 인정한 사실입니다. 

메모공방은 지난 11일의 21차 공판에서도 있었다. 소준렬씨는 신문에 『하얀 백지로 된 메모지는 전달받았지만 공수부대원의 사기를 죽이지 말라는 내용만 기억납니다』라고 말하면서 확실히 받았음을 강조했다.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1996071570439
갈천   11-05-31 12:46
아마데우스님. 님의 말씀은 이 글을 보는 분들이 판단하겠지요. 좌파사이트에서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은 합니다만...글쎄요.
1. 님은 교도소 공격이 별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계속 시위대의 공격이 정문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군요.
  - 위성사진을 보세요. 담양국도에서 교도소동쪽장벽까지 몇m 입니까? 3공수 전투상보,상황일지에 나와 있지요. <교도소앞 총격...50m 전방에 바리케이트에서 저지> 50m라는 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까? 또 다른 바리케이트에서 50m 떨어진 바리케이트입니까?
  - 군용 2.5톤 트럭은 우리가 시내에서 보는 용달트럭과는 많이 다릅니다. 용달보다는 육중한 덤프트럭에 가깝지요. 군용트럭에 기관총을 쏘며 교도소 정문으로 돌진해갔는데 교도소 공격이 아닙니까? 김치년의 증언으로는 그 트럭에 '놀랍게도 다이너마이트 2상자와 수류탄 4~5개가 실려'있었다는데...
2. 시위대들이 공격하려는 것이 교도소가 아니라 교도소 앞에 있는 바리케이트입니까? 제가 언급한 시위대들의 증언을 열어보십시오. 그들이 국도를 따라 담양으로 가겠다고 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무기를 들고 광주시내를 돌아다니다가 한 놈이 '교도소로 가자'고 하면 따라가는 형태였지요.
    위성삼은 교도소와 한참 떨어진 두암동 말바위사거리에서 교도소를 향해 총격을 하는 시위대를 보면서 한심한생각이 들었다고했습니다.
    교도소가 아니라 교도소를 지키는 공수부대를 공격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무엇때문에  싸우지도 않고 되돌아갑니까? 공수부대의 경계가 삼엄한 것을 보고 총한번 안쏘고 되돌아갔구만요. 이상하네요.
3. 님의 머리에는 광주시위대가 전두환 쿠테타에 항거한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은 그냥 폭도입니다.
아마데우스   11-05-31 12:49
50m 전방의 바리케이트라고 하는데, 교도소 정문의 50m 전방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어디로 부터의 50m 전방 바리케이트인지 불확실합니다.
갈천   11-05-31 13:00
임헌표는 전교사 소속 고급장교입니다. 광주사태 기간 내내 전교사 장교들은 공수부대 장교들로 부터 거친 욕설을 먹으며 지냈기 때문에 사이가 안좋았지요.
전교사와 31사단은 제대로 일처리도 못하고(예, 5월21일 아침 20사단 지휘부차량 피탈, 광주시 외고가 무기고 피탈로 시위대들 무장), 전교사 교도대,31사단 병력이 공수부대 병사들을 공격하여 11공수대원 십수명이 죽었지요(오인사격).
전교사의 김기석, 정웅, 임헌표 등은 특전사장교들에게 모두 감정이 않좋다가 광주청문회,재판이 열리니까 거짓말도 하고...
그런데도 교도소 정문 피습 사실은 임헌표가 제대로 증언했다는 겁니다. 종전 1988년2월 민화위에서부터 여러번 증언했던 것이 있기 때문에 속일래야 속일 수가 없는 것이죠.
임헌표는 소준열에게 시내정보동향 수집임무를 부여받고 활동했던 담당자입니다. 교도소 전투상황 조사도 담당했지요.
갈천   11-05-31 13:03
교도소가 담양국도에서 160m 들어가있다 - 이 말의 출처는 무엇입니까.
 --> 구글지도로 들어가 교도소 정문과 담양국도 사이의 거리를 재보십시오.
어디서 부터의 50미터이겠어요? 그 앞에 교도소 앞 총격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교도소 앞 총격.
아마데우스   11-05-31 13:08
교도소 부근 도로에서 벌어진 총격들은 모두 교도소 기습, 교도소 총격으로 왜곡해놓았습니다. 글쎄요..
갈천   11-05-31 13:10
도대체 소준열이 어째서 (사실과 달리) 신군부측에 유리한 증언을 했다고 하나요? 소준열은 원래 12.12 당시 신군부가 아니라 육본 측에 있었던 자입니다. 12.12일 밤 9시경 장성민육참차장이 소준열에게 지시하여 신군부측 20사단 박준병을 체포하라고 지시 내렸었지요. 신군부가 그를 윤흥정을 대신하여 내세웠기 때문에 신군부편이다??? 광주사태진압 직후 중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에 신군부편이다???
갈천   11-05-31 13:12
교도소 총격으로 왜곡시켜놓았다구요? 신군부측이 3공수 전투상보,상황일지를 조작했습니까? ㅎㅎㅎㅎ
아마데우스   11-05-31 13:12
소준열은 12.12 사태에 대한 증언은 하지 않고, 5.18 사건에 대한 증언만 하지 않았습니까? 5.18 사건 중간에 신군부로부터 전교사령관에 임명되었고, 5.18 사건 재판에서 지휘권 이원화 등에 대해 신군부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죠.

신군부 측이 조작했다는게 아니라, 3공수가 보고를 할 때 무조건 교도소 습격, 교도소 총격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갈천   11-05-31 13:16
소준열이 12.12에 대해서 별로 증언할 것이 없지요. 박준병은 그가 체포하기 이전에 이미 경복궁 30단으로 가버렸기 때문이에요. 당시 그의 근무위치는 육본이 아니라 성남의 종합행정학교장입니다.
아마데우스   11-05-31 13:19
교도소 주변 도로 총격 사건 중에 교도소 정문쪽인 광주~담양 국도에서 발생해서 교도소 습격하고 연관 지을 수 있는 경우는 딱 2개 밖에 없는데. 관련자가 22일 9시 트럭 1대 탑승한 6명, 22일 10시 소방차 1대에 탑승한 4명 밖에 없죠. 과연 6명, 4명으로 교도소를 습격하려고 했을까요?

야밤에 차량 여러대 분승해서 이동한 경우는 호남고속도로 말고도 22일 새벽 광주~목포 도로에서도 있었습니다. 20사단이 광주~목포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세워놓고 막아놓았죠. 바리케이드에서 총격전도 벌어진걸로 압니다. 그렇다면 광주~목포 도로 상의 차량들은 어디를 습격하려고 간 것일까요?
갈천   11-05-31 14:07
그렇다면 광주~목포 도로 상의 차량들은 어디를 습격하려고 간 것일까요?
---> 잘 모르지요. 목포로 탈출하려고 했겠지요. 그걸 왜 교도소 공격이 없었다는 주장과 연결시킵니까?

님은 법원이 판결문에 <정문>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까지 교도소를 공격했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다시 검찰측이 옳다고 우기는 것입니까?
아마데우스   11-05-31 14:09
그렇다쳐도 교도소 정문방향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사건은 단 한 차례뿐이지 않습니까.

광주~목포 도로 차량도 교도소 습격한다고요?  목포방향에 교도소가 있습니까. 호남고속도로와 광주교도소는 광주 북구에 있고, 광주~목포 도로는 광주 서구(?)에 있습니다. 님께서 야밤에 호남고속도로에 수 많은 차량이 나타난 이유가 뭐냐고 본문에서 물으셨길래, 광주~목포 도로에서도 차량 여러대가 광주외곽을 오고가는 중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겁니다.
갈천   11-05-31 14:22
ㅎㅎㅎ. 어쨌든 지금 여기서 왈가왈가 해봐야 님의 주장이 증명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갈천   11-05-31 14:26
반복하지만 교도소를 향해 총격을 가하는 것 만으로도 교도소내 폭동유발등 상당히 위험한 상황으로 전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시위대가 이를 인식했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시내에서 배외하다가 교도소 자체를 목표로 이동한 정황이 여러군데 나타나므로 교도소 정문 공격과 더불어 시위대들의 교도소 공격은 인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지요.

광주측에서는 부인하고 싶지만 잘 안되는 것이에요.
아마데우스   11-05-31 14:58
신군부는 교도소 자체를 목표로 이동했다고 했지만, 광주교도소가 호남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국도로 사방으로 둘러싸인 교통요충지라는 점을 무시했을 때 얘기고요.

계엄군은 교도소 주변뿐만 아니라 모든 광주 외곽도로에서 바리케이드를 막고 통행을 막았죠. 그렇기 때문에 도로상의 바리케이드에 막힌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교전했다고 해서 무조건 교도소를 습격했고 보는건 단순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갈천   11-05-31 15:58
시위대가 교도소를 공격했다는 것은 신군부의 주장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이미 항소심 법원이 판결내린 것입니다.

22일 0시에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교도소로 접근한 시위대가 비무장이었습니까?  먼저 총격을 가하며 접근해 오는데 이들이 폭도가 아니고 정의의 사도입니까?

계엄군이 모든 광주 외곽도로에서 바리케이드를 막고 무장한 시위대의 통행을 막은 것은 아주 잘한 것 이고 당연한 것이지요. 시위대(폭도)들이 무슨 사고 칠줄 압니까?

교도소와 더불어 주남마을 미니버스에 대한 계엄군의 총격은 지원동의 탄약고를 털기위해 간 것이라고 하지요.
진명행 "앞 포스팅에서도 얘기했지만 저 (주남마을) 미니버스는 괜히 광주외곽으로 나가려던게 아니었다. 지원동에 보관된 TNT를 털러간 것이었고 무장한 시민군이 타고 있었으며, 경계병력을 향해 돌진하다가 사격을 받은 것이었다.http://parshas.net/bg/391

교도소와 탄약고를 공격하는 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것입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교도소와 탄약고를 공격하려고 덤비면 당연히 서슴치 말고 죽여서 저지시켜야 합니다.
아마데우스   11-05-31 16:13
1심에서는 교도소 주변총격 사건에  대해 신군부 측에 책임이 있는데, 2심에서 갑자기 교도소 습격은 정당방위라고 뒤집혔습니다.

1심에서는 신군부 집권 과정의 불법성만 따지고, 교도소 주변 총격사건은 신군부 집권 과정 중 일어난 광주 외곽도로 봉쇄작전의 한 부분으로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취지로 판결내렸습니다.

그런데 2심에서 제5공화국을 쿠데타불법정부로 규정하는 무리한 판결을 했는데, 제5공화국이 쿠데타불법정부로 규정되면 법적안정성을 해치게 돼, '선량한 정부' 또는 '합법적인 정부'라는 개념을 도입을 했습니다.  2심에 따르면, 쿠데타불법정부가 선량한 정부가 취할 조치를 행한다면, 합법적이라고 합니다.

판결을 지배하는 구도가 그렇게 바뀌어서 그런지, 2심에서 뜬금없이 교도소 주변 총격사건이 교도소 습격으로 둔갑하고,  교도소에 다가오는 폭도에 대한 사격은 선량한 정부가 취할 조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 사건은 광주~화순 도로에서 일어났는데, 지원동 탄약고를 턴다는것은 진명행 개인 주장이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관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 방면으로 간 것이라고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3&aid=0000018778

뭐.. 이만큼 말했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판단은 독자에게..
갈천   11-05-31 18:33
쿠테타불법정부의 선량한정부가 취할 행위여부와 교도소 정문공격 판결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원참.
신군부의 정통성을 세워주기 위해서 일부러 교도소 공격을 사실인 것처럼 왜곡시켰다?????

아마데우스님. 2심 판결이 억울하시죠. 저는 1심 판결은 아예 소설을 쓴 것이고, 2심 판결도 오히려 신군부측에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2심 판결은 모든 증거와 상황을 법이 허용하는 대로 최대한 광주시위대쪽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판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심 판결은
5월18일 아침 시위대들은 먼저 전남대 정문앞에서 투석을 하여 도발하였고, 시내에서 격렬히 시위하며 경찰 30명을 체포하여 포승줄에 묶어 끌고 다님으로 해서 계엄군 투입을 자초한 점.
윤흥정,정웅의 잘못된 작전에 따라 대낮부터 포위섬멸식 작전을 실행함에 따라 시위대들이 분격한 점(진압방법이 전교사의 작전 재량범위에 있는지 여부, 과잉진압이 작전실패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언급하지 않았음)도 크지만
19일 아침 11공수의 착검위력시위 차량에 투석을 하고, 공수부대 장갑차 안에 불더미를 집어 넣었던 행위
20일 시위대의 무차별적인 차량돌진 테러를 통해 경찰관 4명을 깔아죽이고 3공수 공수부대 깔아 1명 죽이고 4명을 중상입힌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고
21일 새벽 전남대 정문에서는 이미 시위대들이 칼빈소총으로 무장을 하고 공포를 쏘며 차량돌진테러를 시작했다고 하지요.(이때 시위대들의 칼빈총은 어디서 언제 탈취한 것이지?)
7시30분경에는 20사단 60연대가 광주로 진입하려다가 시위대를 만나 차량 14대, M60 중기관총 3대, 무전기 등을 줄줄이 피탈
08시 나주 무기고 피탈,
13시경 광산 하남파출소에 시위대 80여 명이 차량 3대를 타고 와 카빈 9정을 탈취, 13시경 10여 대의 차량에 탑승한 광주 시위대가 함평에 도착해 신광지서에서 총기 100여 정, 실탄 2상자 탈취
13시30분경 시위대 쪽으로부터 장갑차 1대가 빠른 속력으로 도청 쪽으로 또 돌진하자 그 순간 경계 중이던 공수부대원들이 장갑차를 향하여 일제히 發砲(발포)하여 장갑차 위에서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태극기를 흔들던 청년이 피격
13시35분경 화순 소재 4개 파출소에서 총기 460정과 실탄 1만 발을 탈취,
14시경 나주 남평지서 무기고에서 카빈 20여 정과 실탄 7~8상자를 탈취, 나주경찰서에 군용 레커차로 무기고를 파괴하고, 카빈 500여 정, M1 소총 200여 정, 실탄 4만6000여 발을 탈취
14시45분경 20사단 61연대장이 11공수여단과 병력을 교대하기 위하여 61 항공단 203대대장이 조종하는 UH-1H 헬기를 타고 전남도청 上空에서 공중 정찰을 하던 중 시위대의 對空 사격으로 6발이 피격
14시50분경 공수부대. 전남도청 본관과 신관, 전남일보, 水協(수협) 도지부, 상무관 등 인근 건물 옥상에 일부 병력을 배치하여 도청 부근으로 접근하는 시위대를 향하여 銃擊

이상과 같이 계엄군이 도청 주위건물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총격하기 전까지 이루어진 무수한 시위대의 무리한 저항과 도발에 대해서 재판부는 어째서 평가하지 않았는가.

전두환의 범죄에 대한 재판이 주 목적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역사법정이 필요한 것이지요.

No Subject writer Date Hit
제 1회 주간 미디어워치 독자보고 대회 (5월 25일, 토요일 3시) mahlerian 05-16 2177
5월 18일, 과학중심의학연구원에서 공개강연이 있습니다. mahlerian 04-25 5112
[CSI] 논문 표절 고발을 위한 ‘연구진실성검증센터’ 출범 ChiefEditor 03-10 6162
[!] 스켑렙 사용설명서 ChiefEditor 01-11 68101
[!] 이곳의 운영원칙, 운영자의 공정성 ChiefEditor 06-22 60520
8958 [CSI] 논문표절 손석희가 도망가는 이유 (4)  factualism 05-10 1894
8957 안철수의 두 번째 주식 문제 흑진주 05-09 737
8956 손석희 , JTBC로 간다는 기사 흑진주 05-09 672
8955 [CSI] 손석희 교수 유학수기 2 (<여성동아>, 1998년 8월호) (2) mahlerian 05-09 1448
8954 [CSI] 손석희 교수 유학수기 1 (<월간중앙>, 2002년 4월호) mahlerian 05-09 1422
8953 [CSI] 손석희 씨 논문 표절 의혹 자료 2 (짤방수정) (1) mahlerian 05-09 2270
8952 [CSI] 손석희 씨 논문 표절 의혹 자료 1 (7) mahlerian 05-09 3217
8951 박근혜는 미국에서 우리말로 연설해라 흑진주 05-09 812
8950 '법학 분야 논문작성 및 문헌인용에 관한 표준안' (한국법학교수… (5) mahlerian 05-08 2842
8949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가면 항상 흑진주 05-08 830
8948 굴러온 돌의 비애 (1) 산셋으 05-07 297
8947 브라에스 역설(Braess's Paradox) #2 표절 교수 논문 까발리기는 공익? THESE 05-07 1462
8946 [CSI] 조국 교수 석박사 학위 논문 입수 (3) mahlerian 05-06 5892
8945 [CSI] 조국 교수의 동료교수와 제자의 논문에서도 표절 의혹 mahlerian 05-06 3653
8944 브라에스 역설(Braess's Paradox) #1 - Definition (2) THESE 05-06 1443
8943 [CSI] 백지연 씨 석사학위 논문 전문입니다. 2 mahlerian 05-06 3593
8942 [CSI] 백지연 씨 석사학위 논문 전문입니다. 1 mahlerian 05-06 3653
8941 에드짜르트 에른스트(Edzard Ernst) 교수님이 블로그를 열었군요. mahlerian 05-06 3378
8940 사이먼 싱(Simon Singh) 선생님이 절 언급해주셨네요! mahlerian 05-06 2572
8939 [CSI] 진중권 씨 참 무식한 소리를 해대네요. (5) mahlerian 05-03 6822
8938 [CSI] 백지연 씨 논문 표절 판정 가이드라인 2 (연습문제) mahlerian 05-03 3813
8937 [CSI] 백지연 씨 논문 표절 판정 가이드라인 1 mahlerian 05-03 3794
8936 [CSI] <조선일보> "죄의식 없는 '표절' 대한민국" 기획기사 (2) mahlerian 05-02 4326
8935 [CSI] 백지연 석사논문에서도 표절 혐의 발견 (3) mahlerian 04-29 4265
8934 [CSI] 전 MBC 앵커 백지연 씨 학위논문 표절 의혹 3 mahlerian 04-29 3386
8933 [CSI] 전 MBC 앵커 백지연 씨 학위논문 표절 의혹 2 mahlerian 04-29 3230
8932 [CSI] 전 MBC 앵커 백지연 씨 학위논문 표절 의혹 1 (11) mahlerian 04-29 11753
8931 안철수에게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 흑진주 04-27 2188
8930 [CSI] 낸시랭, 석사논문 표절 혐의로 ‘슬픈’ 표절사 드러나나 (4) mahlerian 04-27 4647
8929 5월 18일, 과학중심의학연구원에서 공개강연이 있습니다. mahlerian 04-25 5112
8928 [CSI] 한수경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1) mahlerian 04-23 4603
8927 [CSI] 낸시랭 석사학위 논문도 표절? (5) mahlerian 04-23 4849
8926 [CSI] 조준모 성균관대 연구윤리위원 논문에서도 표절 발견돼 (2)  mahlerian 04-23 4555
8925 [CSI] 왜 표절을 좌파들이 자꾸 저지르나? (2) mahlerian 04-22 4436
8924 대한민국 언론, 문제가 참 많습니다. 가끔영화 04-22 259
8923 책 (시리즈) 소개 - 어려운 말 쉽게 풀기 흑진주 04-22 2041
8922 김미화 씨의 엇나간 자리 잡기 (3) 흑진주 04-22 2256
8921 [CSI] 김미화씨 참 정신 못차리네요. (4) mahlerian 04-21 4446
8920 국정원 사건' 경찰 윗선에서 은폐 의혹.....원세훈은 출국금지 (7) alleviate 04-21 2009
8919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한 가지 덕목 (10) 흑진주 04-21 2363
8918 [CSI] 성균관대 연구윤리위원 조준모 교수 자기표절 혐의 (4) (2) mahlerian 04-21 3960
8917 [CSI] 성균관대 연구윤리위원 조준모 교수 자기표절 혐의 (3) (1) mahlerian 04-20 3707
8916 [CSI] 성균관대 연구윤리위원 조준모 교수 자기표절 혐의 (2) (1) mahlerian 04-20 3677
8915 [CSI] 성균관대 연구윤리위원 조준모 교수 자기표절 혐의 (1) (2)  mahlerian 04-20 3512
8914 [CSI] 성균관대 연구윤리위원 조준모 교수 표절 혐의 발견 (8)  mahlerian 04-20 3029
8913 변희재 대표 낸시랭 가족사 언급 그만하세요 (10) 빵셔틀 04-19 891
8912 경찰, 국정원 대선 개입 결론 (15) alleviate 04-16 2475
8911 [CSI] 연세대 “김성환 석사논문 표절, 본조사 수행 결정” (1)  mahlerian 04-15 4059
8910 [CSI] "표절 비판 칼럼도 표절하는 표절공화국" (2) mahlerian 04-13 4620
8909 [CSI] 성균관대 "김미화 논문 표절 혐의, 본조사 실시 결정" (1)  mahlerian 04-13 4604
8908 [번역] 현대의학은 얼마나 근거중심의학적인가? (4) mahlerian 04-09 4980
8907 드라마 <<죄와 벌 : 날조된 낭만>> (2) 흑진주 04-07 2309
8906 [CSI] 안철수가 대학원생으로 있었던 서울대 생리학실험실의 문제 (3) mahlerian 04-05 6512
8905 괜찮은 사이트 하나 소개 . . . mahlerian 04-04 4654
8904 [CSI] 진실성이 없어 아쉬웠던 김미화 씨 사퇴의 변 (5) mahlerian 03-29 5189
8903 변희재 씨를 이해할 수가 없다. (7)  그림자 03-28 1654
8902 [CSI] 김미화 표절 문제 관련 강태호 인터뷰에 출연했습니다. (2) mahlerian 03-27 5557
8901 [CSI] 법대 교수들의 표절은 대한민국의 전통 (7) mahlerian 03-27 5553
8900 [CSI] 서울대 법대 ㅈ교수의 표절 스캔들 (1) mahlerian 03-27 5547
8899 왜 서민들은 힘드는가? (5)  제봉 03-26 1319
 1  2  3  4  5  6  7  8  9  10    
경심파와 연심파
Maverick/2013-05-18
[CSI] 진중권의 무식
mahlerian/2013-05-18
당신은 욕먹기 위..
흑진주/2013-05-18

말러리안님, 질문..
Kuusinen/2013-05-19
그래도 깐죽거리는..
Maverick/2013-05-18
재인용 표절이 무..
athina/2013-05-18
그러면 문대성은 ..
Kuusinen/2013-05-18
"'표절'이란게 남의..
factualism/2013-05-18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 의료일원화국민연대 healthlog 데일리안 광주.전라 빅뉴스 미디어워치 柱, 나는 사실을 존중한다 한국무신론자 모임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 TED the skeptic's dictionary 한글판 the TalkOrgins Archive 한글판 Quackwatch 한글판 COUNCIL for SECULAR HUMANISM the Brights CSI RICHARD DAWKINS.net (주)시대정신 조갑제닷컴 하종강의 노동과 꿈 사회디자인연구소 공공경영연구원 김경재닷컴 skyang.com
2013년 이후 미디어워치

   About Us   |   FAQ   |   Terms Of Service   |   Private Policy   |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