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과학을 인정한다. 모든 일의 결과에는 그 원인이 있다.라는 말을 인정한다.
팩트를 확정한 후 팩트로 인한 결과에 대한 판단은 그 사회구성원에게 달려있다.
<싸이언스타임즈지 인용>
[그럼 과연 과학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동성애가 선천적인 쪽에 가깝다는 연구결과 두 개가 동시에 발표된 것은 1991년이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마이클 베일리 박사는 161명의 남자 동성애자를 조사한 결과,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한 명이 동성애자이면 나머지 쌍둥이 형제가 동성애자일 확률이 52%나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그 확률이 22%, 입양된 형제의 경우는 11%에 불과했다.
이 연구결과를 두고 베일리 박사는 동성애 유전자가 태아의 남성화를 막아서 게이가 된다는 게이 유전자 가설을 세웠다.
또한, 미국 솔크생물학연구소의 사이먼 리베이 박사는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여성에 대한 성충동을 지배하는 뇌 특정 부위의 크기가 정상 남성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즉, 동성애자는 선천적으로 다른 뇌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였다.그 후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의 딘 해머 박사가 발표한 연구결과도 동성애가 선천적일 가능성을 높였다. 해머 박사는 게이 76명의 가계도를 조사해 동성애 유전자가 모계로 유전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또 해머 박사는 동성애를 하는 쌍둥이의 염색체를 검사한 결과, 일정한 유전적 공통점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들의 연구결과처럼 동성애가 유전자에 의한 것이라면 한 가지 모순점이 발생하게 된다.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큰 딜레마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식을 만들 수 없는 동성애 유전자가 어떻게 자연선택 과정에도 도태되지 않고 진화하며 보존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친절한 게이 삼촌’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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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성애를 그린 영화 '친구사이'의 한 장면 |
이에 대해 설명이 가능한 연구결과도 나왔다. 2004년 이탈리아 파도바대의 치아니 교수가 98명의 동성애 남자와 100명의 이성애 남자의 친척 총 4천600명을 조사한 결과, 게이의 부계쪽 여자 친척이나 이성애자의 여자 친척보다 게이의 모계쪽 여자 친척이 자식을 훨씬 많이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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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아직까지 동성애를 유발하는 구체적인 유전자는 밝혀진 바 없다. 그러니 동성애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나지 않은 상태이다.]
읽은 감상: 피디수첩의 아레사 빈슨의 보도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이유는 아래의 정보 때문이다.
[그럴리가 없다고 강력하게 논박하면서 자신의 원래 주장을 고집한 헤머 등이 2005년에 더 많은 가게등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하였다.하지만 자신들의 초기결과와는 달리 동성애 성향과 유전자들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김종철 박사의 기고>
난 동성애가 유전적인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누구 말이 맞느냐라는 것은 내가 직접 그 논문을 해석하고 내가 판단하고 싶다. 이와 같은 2차 문언은 누군가의 가치관이 투영되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것 뿐이다. 하나는 과학저널이라는 명칭으로 하나는 혐오대상인 종교단체라는 명칭으로 의견을 제시한 것인데 모두 과학으로 포장되어 있다.
모두 통계를 기반으로 하여 유의미하다고 말하고 하나는 통계로 유의미하다고 먼저 말한 딘 헤머의 결론이 아니라고 통계치를 낸 캐나다 조지 라이스의 1999년의 연구에 대해 다시 반박하기 위한 연구에서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는 것이다. 누구 말을 믿어야할까?
문제는 추적의 단서가 없다는 것이고 추적의 단서가 있다고 할 지라도 쉽지 않다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내가 사이언스 잡지에 대해 못 마땅한 것은 김종철박사의 종교지기고문에는 있는 내용이 그 곳에믄 빠져서 독자들로 하여금 결론적으로 유전자와 관계 없다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시에 있어서 종교계의 주장에 대한 근거는 과학적임이 없고 그 근거제시에 대한 면도 작은 반면에 진보계에 대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과학적으로 보이게 하며 그 근거제시에 대한 면도 커서 이를 읽은 독자로 하여금 유전적인 면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이비과학잡지가 아닌가?
난 일원화 사이트가 잘 운용되기를 바란다. 한방의 사이비 의술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비판에 대해 나로서 헛점으로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두 근거를 담고 링크문은 두가지의 문제가 있고 이는 여러 과학보도를 하는 언론에도 있는 동일한 문제다. 근거제시는 하는데 그 원문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들이 근거를 두고 판단한 것으로 읽으라는 것이다.
판단 주체는 나다.타인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김박사의 견해에 난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김박사는 동성애 유전론에 대해 모르겠다는 것이 그의 견해일 뿐 같다. 그런데 그 근거 부분은 내가 찾을 수 있는 단서는 2005년에 있은 연구결과라는 부분이고 언론에 조명도 별로 안되었다는 말 이었기 때문이다.
침술의 효과부분에 대한 글등 이런 류의 과학의 논쟁부분은 대중에게 흥미를 준다.동성애가 유전인가 아닌가 부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언론에 바라는 것은 공정보도의 원칙이다. 일원화사이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밝혀진 과학사실이 있다면 기존에 맞다고 한 것과 상이한 것을 서로 비교하여 올린 후 그 원문을 독자들에게 검증할 수 있도록 전문을 올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논문이 백개가 하나의 사실에 대한 평가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야무진 한 개가 하나의 사실에 대한 평가로써 백개의 논문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난 과학이라고 본다.
법원에 대해 거짓증거 세 개가 진실한 하나의 증거를 물리치는 현실로써 세간에 알려져 있지만 과학도 그래서야 되겠는가? 법원도 과학도 그래서는 안된다.
물론 나는 이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언론이 몸서리치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전관예우,스폰서 검사등등을 줄줄히 외치지만 난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도 마찬가지고.다만,장자연 사건의 복사문서만 봤을 때 믿어야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원문을 전체 공개했을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측에서 집요하게 몇가지의 팩트를 끄집어내어 주장햇기에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뿐 필적감정이나 특정단어의 틀림,그리고 당시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사싱에 대한 언급등이 그 문서가 신빙성이 없다라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냐의 부분은 거짓이다라고 그 문서를 말하게 하기는 하지만 단정하기는 그래도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복사문서는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수중에 있는 유일한 복사본이 폐기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내용적 문제가 없다면 필적감정이나 특정단어의 틀림등은 특정인이 썼음을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는 김기설사건의 재심으로 알고 있다.
김기설사건은 김씨가 자살방조를 했느냐 안했느냐에 대해 했음이 틀림없음으로 기소를 했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는데 재심후 무죄가 된 사건인데 법리적으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지가 쟁점이었던 것 같고 내가 아는 바는 전혀 없고 언론상의 기사에 대해 내가 행간의 뜻을 유추한 것 뿐이다.
내가 침술의 효과에 대해 돌팔이라고 결론을 내린 김선생님의 결론부분에 대해 그 방법론에 대하여 질문을 했는데 여전히 답이 없다. 다들 바쁘셔서 그렇겠지만 시간을 좀 내 달라.
WHO부분의 보고서의 질적부분 언급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다들 양방의사가 추측이 된 단체에서 논문의 질에 대한 평가가 엉터리였다니? 그 단체 자체가 정치적 성격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뇌물기사 하나 올려놓고 그것을 쓴 과학자들이 모두 결론에 과정을 맞추기위해 실험디자인을 황당하게 했다는 주장인데 논문전문을 올려놓고 조심스럽헤 해야될 것을 하나의 문단만으로 내가 다 읽어보았으니 믿으라라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아무대나 침과 침 비스무리한 것을 찔러놓고 이중맹검실험이라고 하여 그 결론에 대한 판단은 어떤가?
침술은 침과 그 혈자리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에 앞선 것은 진단이고.한방의가 참여했으니 제대로 진단을 한 것이고 두번의 설문조사로써 실험집단을 바꿔 실험을 하니 효과가 확 달라져서 플라시보효과라는 결론인데 그 결론에 대해 믿어지는가?뇌의 특정부분을 자극하는 뇌가 아닌 인체부분의 자극이 작동되지 않은 것을 기가 막힌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진단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이다. 그런데 한방은 진단의 중요성을 설파하지 않던가.
양방도 10번중 4번 정도 평균 오진을 한다고 하는데 그 오진은 여러번 오는 환자에 대해 예후를 보고 수정하여 진단을 한 후 완전해 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글을 쓰면 아티나님은 대화가 안된다고 거부하시겠지. 그러면 난 한동안 글 쓰면 안되겠고. 난 토론하자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깐.그런데 선생님들이 너무 불친절한 것 같다. 질문을 하면서 다시 선생님들이 쓰신 글을 읽고 답변을 들으면서 또 읽는다. 읽다보면 자꾸 의문이 난다.그렇다고 질문을 멈추는 것을 선생님들은 바라는 것인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누군가는 말했던 것 같다. 과학의 확실성을 말하는 것이다.
신문을 보면서 여론조사통계에 대해 두가지의 결과에 대한 해석부분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강원도 도지사 결과에서 엄기영이 최문순이한테 졌다. 여론조사시에는 20프로정도 차이가 났는데 바뀌었고 이를 설명하는 가설이 브래들리효과라는 것이었다.그런데 유시민 김문수 대결에서는 여론조사와 별차이없이 결론이 났다. 도대체 통계는 쓸모가 있는지 난 모르겠다. 과학을 하는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기위한 것이 아닌가.브래들리효과에 대하여 반박으로 정규분포가설을 설명한다.그럴듯 하다. 그런데 앞날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말해주니깐. 그래도 참고는 해야겠지?
1인당 가구수가 늘어간다는 통계치가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라고 한다. 왜인지 주구장창 논리적인 이유를 댄다.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1인당 가구수가 늘어간다는 통계치는 토지이용에 있어서 작은 집 즉 원룸수요가 늘 것이다른 생각에 접하게 되고 그렇게 집을 짓도록 앞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오히려 내가 돈이 있다면 반대쪽으로 중형집으로 간다는 쪽에 돈을 걸고 싶다. 가구수랑 원룸이랑은 관계 없고 문화적인 것에 돈을 걸고 싶다는 것이다. 나한테 펀드들어서 이익금 나누자라고 한다면 이런 추세를 들이대면서 너 미친 것 아니냐라고 할 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모두가 살 때 팔고 모두가 팔 때 사라라는 격언. 심리투자법칙인가 하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내가 보기에 언론에 떠들어대는 순간 정부가 나서는 순간 그 사업은 사양산업이라고 나는 본다.정점에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