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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진요 회원들에 의하면 타블로 영어실력이 그리 형편없다던데...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동양인이 학기 중엔 샌드위치 아르바이트하지, 에픽하이 결성했지, 힙합공연다녔지,
방학 때는 한국와서 학원강사했지, 영화촬영도 도왔지 19번 비행기타고...이거 다 하면서
스탠퍼드..그것도 영어로 창작하는 게 주된 영문과에서 3년 반만에 학석사 위드디스팅션으로 졸업하는 게
그리 쉬운가봐요???
아,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그냥 일반인이...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김건모 5집에 영어로
작사하는 것도 쉬운가보죠??
근데 듣기로 스탠퍼드 역사상 동양인 서양인 구분없이 3년 반 코스 학석사 졸업 자체가 전례가 없다던데..
타진요 레이더망은 뭐라던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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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부 학생들이 들으면 기분 좋아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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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 |
10-10-09 0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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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명문대라도 타 전공에 비해서 가장 편하게 졸업할 수 있습니다."
하하... 이솝 우화의 신포도 얘기가 생각나네요.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스탠포드 영문과 우등 조기 졸업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못 믿겠다며 입에 게거품들을 물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런데 끝없는 자기 합리화는 보기에 다소 측은합니다. 그냥 내면의 외침을 솔직하게 표현하세요.
"타블로가 미운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내 입으로 '난 타블로가 싫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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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 / 저는 타블로 논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 이곳에도 그런 글을 올렸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타블로가 대단하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대단해서 못믿은게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들만한 여러 근거가 있으니 의심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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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 |
10-10-09 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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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가 "지잡대"를 6년만에 열등생으로 졸업했다면 애초에 "합리적 의심"으로 회칠되는 아니면 말고식의 음모론적 광기가 만연하지도 않았겠죠.
평균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던 자들이 남몰래 가지고 있던 학력 혹은 여타 지적 컴플렉스가 이때닷! 하며 광적 집단 분출을 한 것이죠.
솔직히 말해 타까짓 하던 사람치고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못봤습니다.
시카고사는 중년 빵집 주인 아저씨한테 다들 낚여 버둥거리던 그 희극적 모습이란... 왓비도 참 불쌍하군요. 미국의 경제난에 따른 경영 악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악플질로 풀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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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 / 타블로가 "지잡대"를 6년만에 열등생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합리적 의심"이 든다면 의혹제기가능합니다. 게다가 타블로처럼 해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시간질질끌면 파장도 커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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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맨 |
10-10-09 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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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속에선 가능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타까광기와 같은 집단 발작은 불가능하죠. 학력 컴플렉스를 건드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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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진주 |
10-10-09 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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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전공자가 들으면 기분 좋나요? 기분 나쁠 것 같은데요.
아뭏든 흥미로운 가설입니다. 미국에서의 인문학 공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면이 좀 있죠. 이 말도 기분 나쁘려나...
전에도 미국 의사 관련 댓글에 쓴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영어 모국어 아닌 사람입장에서 공부하는 게 무슨 전공이든 쉬운일이 아니겠지만
영어가 끝까지 괴롭히는 것 같더군요.
법전원이 제일 어렵다고 알고 있어요.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문화에도 통달한 원어민 아니면 힘들다고 하고요.
한국어 거의 못하는 교포 1.5세도 영어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원어민처럼 안된다네요.
그다음 의대도 외국인 입학 거의 안된다고 하고요. 학비도 너무 비싸고.
의대 졸업한 의사들은 빚이 몇억씩...
그래서 금나나씨 주위엔 제대로 진로지도 해준 사람이 없었나보단 말이 있죠.
경북의대 졸업하고 미국시험쳐서 미국서 레지던트 했으면 아마
벌써 꿈꾸던 미국 의사가 되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여태 생각한 가장 가능성 있는 건 이공계입니다.
이것도 영어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할만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어찌 생각하면 널널할 것 같고
어찌 생각하면 높은 수준의 영어를 요구할 것 같고
그래서 법대 못지 않게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미국인한테 들은 말로는 (종교학학사)
학사, 특히 인문학 분야는 별 의미가 없고 취직도 안된데요.
이건 만국 공통인듯 합니다.
이공계기피도 말이 많지만 인문쪽은 이공계만큼도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인데
너무 공격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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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N/
얼마전 여기 스켑렙에 올라온
인문학 by palemedes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01_main_square/83002
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인문학을 論하실 때 지식 짧은 제가 끼어들기 어려운 논의라 보아 그냥 읽기만 했습니다.
각설하고,
'공부하기'라는 주제에 대해 최근에 드는 솔직한 저의 생각은 ['學'은 죽을 때 까지 평생하는 것]이다 입니다. 그것이 인문학이던 철학이던, 아니면 법학, 수학, 과학이던 배움이란 그러하다 여겨집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이제는 과거와 많이 아주 현격히 다릅니다. 과거와 달라진 근본 동기는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급격히 많아진 것이 이유라고 봅니다.
외부로 부터의 지식이 내부로 들어오며 가치충돌을 일으키는 지식 경쟁이 과거라면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가치의 변화가 일상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완벽에 가까왔던 법지식이나 몇 년전의 의학지식 등 지역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조차 그 경계가 허물어져 가면서 격변하고 있습니다.
타 영역의 지식과 담을 쌓고, 지식과 정보의 변화 그 자체에서 소외되면 결국엔 경쟁에서 뒤쳐지고 죽은 지식을 우려먹게 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과거지식을 현실적용하는 한때의 [과거 선]이 [현실 악]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근대적 가치가 인정되기 전의 지식은 충효라는 가치에 사회전반이 지배됩니다. 과거 "충효예의"를 외치던 김氏 이氏 박氏로 통합계승된 가부장적 권위의 [전근대적] 시대에는 과거시험한 번 치르고 지방관할의 고위직 관리가 되어 노예수탈 등으로 축재함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던 制國 시절도 있었습니다.
악덕한 폐습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오늘날의 民國시대에도 [시험 한 번 잘봐서 팔자 고친 者] 들은 일시적으로는 그 직위자체 때문에 인정될 런지 몰라도 함량미달인 자는 끊임없는 내부와 외부로 부터 심지어는 세계적인 석학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좌절하고 도퇴하는데, 대개 그런 폐악된 자는 자기 스스로의 부정직함과 불성실함 그리고 나쁜 머리와 노력 부족을 한탄하지 않고 지연 학연 등 인맥이 약함을 억울해 합니다.
.. 학문은 엄정, 엄밀합니다. [~학]의 접두어로 "인문"이란 단어가 들어가던, "수"란 단어가 들어가던. 사소한 전제의 오류와 중간과정의 오차가 때로는 큰 惡을 결과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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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철학자의 사회'…'희망의 인문학'은 없다!
by 노정태 전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928153959§ion=03
(인용)
1. 내가 만났던 빈곤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모두 무력의 포위망에 대해 일종의 창조적 대항, 적극적 대응을 했으며, 이것은 계급투쟁이라는 개념보다는 운명에 대항하는 자유의 성장과 더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161쪽, )
2. 블룸 교수와 나는 4년 동안의 대학 교육과정 대부분이 '위대한 고전들(Great Books)'을 읽는 것으로 구성된, 허친스 총장 시대의 시카고 대학교를 다녔다. (…) 레오 스트라우스(Leo Staruss)는 블룸 교수를 우파로 끌어들였고, 이 세상은 나를 좌파로 인도했다. (186~187쪽 각주)
3. 나는 말했다. "우리는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변명(Apology)>, <크리톤(Crito)>의 일부분, <파이돈>에서 몇 쪽, 아마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소크라테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학생들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을 것입니다." (234쪽)
4. "뭔가 빠뜨린 게 있는데요." (…) "'동굴의 비유'요. 그걸 빼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철학을 가르치려고 하죠? 동굴이 바로 빈민 지역이고, 빛이 교육인 거죠. 가난한 사람들은 분명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234~235쪽)
..... (마지막 인용)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누군가의 내면적 주체성을 북돋워줌으로써 그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왜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그 누구보다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자살하고 있을까?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왜 '희망의 인문학'이 승리하는 가운데, 인문학자들은 절망하고 좌절하여 목숨을 끊고 병에 걸리고 눈물을 삼켜야 하는가?
..... (진짜 마지막 인용)
7월 4일 세상을 뜬, 대표적인 하이데거 전문가 고(故) 신상희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하이데거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번역해온 사람으로, 후기 하이데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숲길>을 포함해 다수의 작품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하지만 대학들은 인문학 교수의 정원을 줄여나가기만 할 뿐이었고, 그는 늘 교수 임용에서 고배를 마셨다. 오랜 절망 끝에 헤매던 그는 50세의 이른 나이에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둔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고 신상희의 "아내는 남편의 깊은 사색 저편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오랫동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인용 끝)
"왜 인문학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자살을 하고 있을까?" 라는
글쓴이 노정태의 질문이 남의 일같지 않고 예사롭지 않습니다. 해당 연예인은 죽지 않기 위해서 노래를 부른 것 일까요?
아니면 전공을 살리지 못했으므로 그 역시 죽어야 마땅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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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진주 |
10-10-09 1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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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E/바로 윗 댓글 읽었는데 인문학에 관한 내용에 공감합니다.
희망의 인문학이란 거 TV에서 보니 외국에서 시작한 거 같던데요.
외국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저런 반례를 들면 할 말이 별로 없는것 같아요.
예술은 부자들이 하는게 아닌가...
옛날에 과학은 유럽 귀족들이 취미로 하던거...
돈 없으면 공대, 집에 돈 있으면 하고 싶은거 한다...
이런 말들도 생각나고 목구멍이 포도청, 곳간에서 인심난다... 이런게 한국에선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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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진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유인들의 노력은 수세기(십여 세대)에 걸쳐 이루어 내어
생명, 권리, 재산 등 근대적 헌법정신을 '자신의 것'으로 되돌렸지요.
남한의 인문학도 혹은 어떤 과학자분이 삶과 가치관을 세우실 때
개인존중을 기본으로 한 검소, 겸손함과 관용을 허용하는 [자유인]이 되려는 노력이 아닌
계급간의 갈등을 종식하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보는 [사회주의적 인간]으로의 개조에 뜻을 두신다면 그래서 개인과 자유라는 가치를 뒤로 물려두고 소중히 하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생각합니다.
그 가치를 완성하는 기초 원소는 개인이고 현실에서의 완성장소는 가족이 아닌가 요즘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고 신상희氏의 죽음이나 자살한 행복전도사 최현희氏의 죽음에 인간으로서의 연민을 가집니다. 주말에 강촌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죽음에 대해 [자유]와 [개인] 등의 [사람먼저]의 가치로 살기 위한 의견을 고민해 볼까 합니다. 주말 잘 지내시고 또 글로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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