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쪽. A NEW ENGLISH-KOREAN DICTIONARY. 어문각. 1964.
지식론 ver. 0.0.2
인류에게 인간 스스로 뇌를 마음의 출처로 인정한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습니다. 과거 여러 지역의 인류 종족 중에는 인간의 생각, 마음이 심장에 있다 주장한 자들이 허다합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침팬지는 인간과 DNA근친도가 98%로 밝혀 졌습니다. 그 2%의 차이때문인지, 침팬지와 인간 뇌를 비교할 때 인간의 더 큰 전두엽이 큰 특징이라 합니다. 소리나 발성으로 의사표현하기는 인간 外 多種에서 가능하나, 문자는 인간만의 독점 자산입니다. 돌연변이로 등장한 최초의 인류의 뇌와 현 인류의 뇌 자체는 진화 계보적 동질성 있음은 아직 반박없이 받아들여 집니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IQ나 현대들인들의 IQ가 대동소이하다고 전제하겠습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로제타 스톤 등 돌에 새긴 비문이나 ‘사자의 서’ 外 현재까지 발견된 인간의 마음을 주제로 한 책 중에서 고대 아테네 등 그리스 철학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남겨진 유물의 절대량으로 비교할 때, 아마도 제 추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13세~17세까지 배운 알렉산더가 부친 필립보스 II의 유업을 따라 세계정복하면서, 정복지에 70여개의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 도서관을 세우는 과정에서 알렉산더의 주장이 옳다 여겨 기존의 다양한 책들을 불태워 없애는 분서갱유를 감행하지 않았나 상상해 봅니다. 식민지 알렉산드리아 마다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들에는 훌륭한 내용이 담긴 원전들은 거의 다 자신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가장 많은 분량으로 남겨져 있게 됩니다. 과연 스승의 道를 벗어난 서적들은 소실되었을까요?
알렉산더의 행동은 유명한 주정뱅이 디오게네스와의 일화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림 등에서 드러납니다. 위의 이야기 진위여부를 떠나 저는 알렉산더가 자만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물론 알렉산더에게 '자만하다'라는 표현을 씌운 이유는 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만知의 창시자]라여기는데, 그 생각은 칼 포퍼의 글에서 살짝 스쳐 드러납니다.
| 5. 아리스토텔레스에 오면 그 관계가 결정적으로 단절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지어 어떤 조율의 신학을 가진 유신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상하게도 신적인 지식과 인간의 추측을 구별하는 전통과의 관계를 단호하게 끊어버렸다. 그는 그가 안다고 믿었는데, 그 자신이 인식, 즉 증명 가능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플라톤에게 과학적 가설이었던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지식, 증명 가능한 지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래로 지금까지 여전히 서양의 대다수 인식론자들에게 남아 있다. |
링크 :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01_main_square/78259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할 때 신의 지식은 진리Aletheia, Episteme라 하고, ‘우리’는 스스로 자존감 충만한 인간 지식을 의견Doxa이라 인정합니다(註: 이 문장에서 ‘우리’란 밀레투스학파 동의자입니다). 진리는 애초에 인간이 알지 못하는 지식일 것입니다만, 모든 가능한 진리탐구를 허용하고 스승보다 뛰어나다 자부하는 학생간 힘있는 과감한 경계를 뛰어넘는 의견제출은 인간 지적 호기심의 충족, 실현과정입니다.
겸손知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신문에서 한국과 나이지라아의 축구결과를 두고 볼 때 "이길 확률 60%"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저런 근거로 우리는 추정을 하고 예상하는 확률론은 겸손知라 할 수 있습니다.
자만知도 흔합니다.
일례로 복지주의자인 제주대 이상이 교수의 최근(10.07.20 09:52) 주장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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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보-민주 합치면 잡탕정당 될 것 박근혜표 복지는 시혜적 복지에 불과"
(중략)
다음은 이상이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를 구성했다. 어떤 조직인가.
"정식 명칭은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가)'다. 아직 출범식은 안 했다. 한쪽에서는 발기인을 모으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담론에 대한 논의를 해나가고 있다. 이미 큰 틀은 정해져 있다. 복지국가론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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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15914
무상급식이나 평등교육 등을 통해 진보적 주장을 펴는 사회주의자들의 핵심적 공통 사상은 '이타심'의 강조, 강행입니다. 타인을 돕는다는 善을 공동善으로 승화시키면 인간세상이 더 살기 좋고 아름다와 진다고 주장하지만, 궁극적 결과는 사회주의자들의 황제적 군림과 서민의 착취 고통 확대입니다.
마치 알렉산더가 알렉산드리아라는 낙원을 건설하면 지구 평화가 찾아오리라 한것 처럼 자만함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의 자만知를 잘 표현한 것이 이사야 벌린이 언급한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입니다. 인민의 낙원, 평등한 사회주의국가 건설이라는 자만知를 나열하고 그것에 맞추라는 강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은 파괴되고, 창의는 소멸됩니다.
일전에 편재부재님은 왜 의학은 완전하지 않은가? 라는 글을 올리면서 '인간 전체의 조화'를 통한 생명살리기 등을 언급하셨지요. 제가 알기로 지금도 각종 가설이 난무하는 [의학]은 과학의 응용이며, 겸손知의 실현場입니다. 가설론은 겸손知를 구현하는 도구로서, 누군가 우선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의견Doxa)을 입증합니다. 그 의견은 여러 전문분야에서 반박수용절차를 거칩니다. 더 나은 의견이라 여러차례 검증된다면 최초의 가설은 해체되고 새로운 가설, 의견이 자리하거나 엉터리 의견으로 판단되면 기존 가설은 확고한 입지를 구축합니다. 이러한 잠정진리의 수 없는 반복의 과정으로 인간은 진리(이때 probability)에 조금 더 다가서게 됩니다.
복지국가라 함은 역사적으로 반박되어 해체되어 마땅한 정치체제입니다. 복지국가는 자유주의를 부인해야 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이타심으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러한 이상이의 복지국가 주장이 명백히 교조적 원리적 자만知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기초 원리가 바로 겸손知이며, 겸손知는 인간이 도저히 알 길 없는 '보이지 않는 손',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 혹은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철인정치의 자만知를 재현한 제주대 이상이가 말하는 그들의 복지국가주의는 엄밀히 따져 지적 타락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겉으로는 복지국가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만인이 평등한 프롤레리아 천국의 환상을 목적한다면, 복지주의란 그들에게는 인민들의 귀를 유혹하는 선동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유럽 복지국가가 역사적으로는 약탈로 경제기반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지적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