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된 글을 쓴이는 경제학과 국제정치학만을 들고 있지만 나는 또하나 더 진화심리학을 접했을 때 비슷한 고민을 했다. 물론 나는 세 학문 중 어느 것의 전공자도 아니어서 입문 수준 이상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입문서를 읽은 것만으로도 내가 학부 때 느낀 저항감은 꽤 컸다. 한때는 원 글에서도 보이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 세 학문을 이데올로기로 치부하고 관심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내게 책은 마약과 같은 것인지라 이것저것 책을 읽는 한 이 학문들의 성과에 아예 무관심할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학문들의 설득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설득력이란 바로 이 학문들이 전제하는 가정의 단순함과 그 가정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가정의 단순함을 이 학문들의 비현실성으로 간주하는 비판 입장과는 달리 내게 이 세 학문의 전제는 현실의 복잡함을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추상했다고 보였다. 거기에 더해 내게는 이 학문들이 단순하고 현실적인 전제로부터 일관된 추론을 거쳐 현실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링크된 글에서 '안타깝게도 소수의 학자 그룹과 학생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거나, 이론적으로는 동의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그것을 행위의 준거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조차도 정치적 신념과 이상, 그리고 학문적 탐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와 간극에 괴로워한다' 의 문장은 특히 한국의 식자들의 현실을 잘 설명해 준다. 나는 전공이 철학이었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이 학문들의 부도덕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이 학문들의 강한 설득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의 신념에 통합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 세 학문은 '사실'을 설명할 뿐, '당위'를 지시하고 있지 않다. 또는 그렇게 주장한다. 나는 지금 이 명제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 세 학문에 대한 진리 판단은 학문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도덕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전환은 내 신념의 변화도 일부 동반했다. 나는 지금 이 세 학문이 인간에 대한 사실을 잘 설명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이 세 학문에서 밝혀낸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당위론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광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괴리와 간극으로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주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내 견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방어적 태도이기는 해도 사실에 대한 겸허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결국 최후에 이기는 것은 사실이지, 도덕에 대하여 사회가 공유하는 선입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