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에 타블로 논란이 학벌 중심 사회라는 패러다임 탓이라는 칼럼이 실렸는데, 너무나 엉터리 논리가 판치는 기사라 이를 비판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타블로 논란의 이면, 학벌과 스펙이라는 역린
[황정현의 문화비평] 결국 학벌 중심 사회라는 패러다임 문제
2010년 06월 14일 (월) 황정현(영화 프로듀서)
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타블로에 대한 학력위조 논란이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이 문제는 ‘학력위조 논란’이라는 주제부터 잘못됐다. 전형적인 네거티브 네이밍 전략인 이 ‘언명’(言明)은 논의의 진행과 사실관계가 어떻든 타블로가 학력위조라는 추문에 휩싸여 있다는 이미지를 짙게 풍기기 때문이다. 타블로가 스탠포드 석사 학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어떤 네티즌의 문제제기에서 시작한 이 문제는 ‘학력과 스펙(Specification : 사양)’ 문제라는 젊은 네티즌들의 최대 관심사를 건드리면서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고 확대 재생산됐다. 급기야 타블로는 스탠포드대 성적증명서를 공개하기에 이르렀고, 사그라지는 듯 했으나 몇몇 네티즌들은 이마저도 위조라며 졸업증명서 등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의 핵심 주장은 “타블로는 공인이니 대중들이 요구하면 그 의혹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근거는 타블로가 스탠포드 유학파라는 학력을 이용해 인기를 얻지 않았냐는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음악 소비자들이 음악과 관계없이 외국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자라는 학벌에 혹해 무비판적으로 그의 음악을 소비했던 사람들인가. 스타는 대중들이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가 스탠포드라는 학벌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갔다면 그건 타블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걸 소비하는 대중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타블로와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들 간의 진실게임에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거짓말쟁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논란의 그 이면이다. 타블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은 스탠포드라는 학벌이 현재의 타블로를 구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외국 대학을 나온 모든 연예인들이 타블로처럼 ‘성공’한 것이 아님에도 왜 대중들은 타블로에게 만큼은 학벌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결국엔 ‘정말 프라이비트’한 성취도가 명기된 성적표까지 공개하게 만든 것일까. 자신은 현재 타블로 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학벌에 부화뇌동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랬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사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자신들 주장의 상위 개념인 학력과 인기의 상관관계라는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왜 타블로가 자신의 학력에 대해 증명해야 하는가. 그가 공인이라서? 타블로가 싫다면 음악을 듣지 않고 텔레비전에서 보지 않으면 된다. 사실에 대한 증명과 논란을 벌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면 타블로가 공격받는 이유는 학벌과 스펙이라는 젊은 세대들의 ‘역린(逆鱗)’이 건그려졌기 때문이다.
‘진실’과 ‘책임있는 행동’이라는 말로 덮여 있긴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주장은 결국 ‘학벌’이라는 말로 수렴된다. 타블로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속았기 때문”이다. 그의 학벌을 믿었고, 그걸로 좋아했고, 그게 아니라서 싫다는. 그런데 그게 믿고 안 믿고 할 만큼 중요한 문제인가. 타블로의 노래를 들었던 사람들은 타블로의 음악이 아닌 스탠포드대 졸업생의 음악을 들은 것인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자가당착적인 공격과 비판은 결국 어느 순간엔가 분노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학벌과 스펙’ 그리고 ‘군대’라는 젊은 세대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만나면서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중략)
줄어드는 일자리는 젊은 세대들을 스펙 경쟁으로 내몰았고 각종 자격증과 어학성적 등 수치화되고 문서화된 능력들을 학원과 같은 ‘재교육’을 통해서라도 얻길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국무위원들 같은 지도층은 안 가는데 자신은 가야하는 군대 문제 또한. 자격증 공장으로 전락한 서열화된 대학 교육의 붕괴에서 기인한 학벌과 스펙 집착은 (적어도 젊은 세대에겐) 생존의 문제나 다름없다. 타블로의 학력 ‘위조 주장’의 사실 여부에 젊은 네티즌들이 목매는 건, 그게 자신에게 그렇듯,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전부라고 생각하게끔 되었기 때문이다.
타블로 논란은 진실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학벌과 스펙이라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수치와 문서로 계량화된 인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길을 잃어버리고 학벌과 스펙이라는 ‘중요한 가치’에 ‘몰두’하게 된 사람들을 ‘마녀 사냥을 일삼는 키보드 워리어’, ‘인터넷 쓰레기’라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어찌 보면 무책임한 짓이다. 우리 사회를 옭아매는 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마녀사냥’에 몰두하는 무책임, ‘마녀사냥’을 일삼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무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기사의 핵심 주장인즉슨,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을 문제삼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길을 잃어버리고 학벌과 스펙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전부라는 천박한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패러다임이 우리 사회를 옭아매고 있어서 그렇다는 진부한 이야기도 함께 넣어줍니다.
또한 타블로가 만든 음악이 중요한 것이지, 도대체 그의 학벌이 '믿고 안 믿고 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왜 되어야 하느냐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얼핏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가수가 음악만 잘 하면 되었지 학벌이 뭐가 중요한가요? 옳습니다.
하지만 이 칼럼은 타블로 학력위조 논란이 정확히 어떤 성질의 논란인지에 대해 잘못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니, 완전히 정반대로 알고 있는 것이지요.
타블로 논란은 '마녀 사냥'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진품 vs 가짜 진품 논란인 것입니다. 그야 가짜 진품, 짝퉁 명품, 모조 예술품이 예술적 가치와 아름다움이란 면에서 진품, 명품에 비해 반드시 떨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진품과 가짜 진품을 가려내는 일은 결코 의미없는 일이 아니지요.
어떤 예술품이 실제로 미켈란젤로 같은 대가의 작품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위조한 가짜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가짜가 설혹 진품보다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더 뛰어나다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시당초 그런 뛰어난 예술품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이름으로 당당히 작품 발표를 해야 하는 것이지, 남의 이름을 사칭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짝퉁 명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짝퉁 명품이라해도, 제조 능력에 따라서는 진짜 명품에 비해 얼마든지 더 뛰어난 품질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조 능력이 있다면 기성의 명품을 사칭하지 않고, 독자적인 브랜드로 명품의 반열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뉴스위크 최근 기사가 하나 떠올라서 소개합니다.
[(전략) 오늘날 관람객들은 미술계가 그런 실수로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일반 대중에게 전문가의 실수를 파헤치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고 브루스 미술관의 피터 서튼은 말했다. 2007년 브루스 미술관의 전시회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조 미술품으로 꼽히는 ‘엠마오의 예수와 제자들’을 주제로 했다.
17세기 네덜란드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화풍을 모방해 1930년대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작품은 한때 베르메르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며 칭송받았다. 이 그림을 그린 한 판 메헤렌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또 다른 베르메르 위조품을 나치 고위 장교인 헤르만 괴링에게 판매하려다 체포됐다.
그리고 자신이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위조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감방에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입증하도록 또 다른 베르메르 작품의 모사를 강요받기도 했다. 사실 판 메헤렌의 ‘엠마오의 예수와 제자들’은 너무 훌륭해서 그가 위조 사실을 자백한 후에도 일각에선 진품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미술 작품이란 유명 미술가의 사인이 아니라 미학적 가치로 평가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한때 높이 평가받던 작품들이 미술관 지하실에 처박혀 있다가 ‘모조품’ 전시회나 열려야 빛을 봐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미(美)는 믿지 못할 작품의 출처 따위를 초월해야 마땅하지 않나?
철학자들과 미술사가들은 이 질문에 답하려고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 위대한 미술가는 미술적 기교와 창조성을 동시에 지녀야 하지만 위조전문 화가들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스스로 미술가로서 성공하지 못하고 기성 미술계에 원한을 품은 위조 화가들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베르메르 같은 미술가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능력뿐 아니라 이전의 미술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창조성을 지녔었다. 따라서 모조품의 진정한 문제는 역사적 기록을 오염시킨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그릇된 뭔가를 보여준다면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서튼은 말했다.
“작품 위조는 어떤 화가의 화풍을 그릇되게 전달하는 행위다.” 그런데도 위조 미술품의 제작은 계속된다. 위조전문 화가들은 그들의 사기극을 성공시키려고 위조 문서를 제작하기도 한다. 존 마이어트와 존 드루는 1990년대에 영국에서 위조 미술품을 제작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들은 마르크 샤갈,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의 작품을 위조한 다음 그 위조품을 진품처럼 보이게 하려고 위조 문서를 작성해 테이트 미술관 등의 자료보관소에 유입시켰다. 또 미술적 재능이 뛰어난 아들과 80대의 노부모가 합세한 영국의 그린핼시 가족 일당은 위조 문서를 이용해 수백 점의 위조 미술품을 여러 화랑과 미술관에 팔아 넘겼다.
그들은 2006년 체포됐지만 그들의 범죄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미술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후략)]
영화 프로듀서 황정현이라는 양반이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논리를 적용하자면, 위조 예술품이나 짝퉁 명품의 제조 행위도 전혀 비난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한 사기 행위를 비난하면 오히려 '수치와 문서로 계량화된 인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찾는 길을 잃어버리고 유명 미술가의 사인이나 유명 브랜드의 명성에만 집착하는 자들'로 몰려서 욕을 먹을 판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러한 논리는 사실을 거꾸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애초에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길을 잃어버린' 자들은 위조 예술품을 만들고, 짝퉁 명품을 만들고, 학력을 위조하는 바로 그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 칼럼은 적반하장식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위조의 결과물이 대중의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을만큼 뛰어난 수준이었다해도, 그러한 사실은 정상참작의 여지를 제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사기 행위를 벌인 자를 더욱 한심스럽게 보이게 만들 뿐입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재능을 지닌 사람이 왜 광명정대한 길을 걷지 않고 위조를 한단 말입니까?
위조 예술품을 만들고, 짝퉁 명품을 만드는 경우 경제적 이익은 얻겠지만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지하에 파묻는 행위인 반면, 가수나 작가 등의 학력 위조는 경제적 이익과 명예을 동시에 추구하는 행위이므로 죄질이 전자에 결코 못지 않다고 봅니다.
타블로 논란에서 타블로 본인의 명쾌한 학력 인증을 끝까지 요구하는 사람들은 결코 마녀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 대해 또다른 비유를 하자면, '순유기농 한국산 곡물'로 만들었다고 광고한 과자를 오랬동안 사먹어왔는데, 이 과자가 사실은 중국산 곡물로 만든 것이었으며 순유기농 제품이란 것도 의문시된다는 논란이 벌어진 것과 비슷합니다. 광고대로 '순유기농 한국산 곡물'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는 제조업자 측에서 소비자의 의문이 풀릴 때까지 철저히 해명하면 끝날 일입니다. 구린 구석이 없는 상황이라면, 억울하다고 질질 짜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요구되는 인증의 몇 배로 파워풀한 인증을 하고, 그래도 논란이 잠재워지지 않는다면 필히 소송을 벌여서 공적인 인증까지 받는 것이 제품 이미지에 좋겠지요. 억울하다고 질질 짤 틈이 어딨나요?
그리고 마녀 사냥이란 것은 원래 "네가 마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봐!"라는 것입니다. 마녀로 몰린 자에게 입증책임이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는 것은 입증이 불가능하므로 한번 이렇게 몰리면 결국 누구나 마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너의 학력이 과연 네가 말한 그대로인지를 입증해봐!"라는 것은 결코 마녀사냥이 될 수가 없습니다. 논란이 계속 벌어진다면 인터넷에서 요구하는 것의 몇 배로 확실한 인증을 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비록 결백하기는 하지만, 구태여 그러한 인증을 하지 않겠다면, 논란이 벌어지는 것에 대하여 아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됩니다. "아니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고 있어? 미친 것들 같으니. 무시하자. 내가 신경을 뭐하러 써?" 이러면 되는 것입니다. 질질 짜면서 마녀사냥 당한다고 호소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결백하다면, 대중이 요구하는 것의 몇 배로 확실하게 인증하든가, 공적인 인증을 위해 재판을 걸든가, 무시하든가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질질 짜면서 동정을 호소하는 것은 잘못돼도 뭔가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선택지가 아닙니다.
저는 원래 대중의 폭압을 몹시 증오하는 사람입니다. 연예인들, 지식인들의 언행에 대해 인터넷 파시스트들이 폭압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번 비판했었지요. 저의 인터넷 글쓰기에서 가장 큰 주제가 바로 대중의 폭압에 대한 증오입니다. 그러므로 타블로 논란에 대해서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인터넷 파시스트들이 일 개인에 대해 가해온 기존의 마녀 사냥식 폭압 사건들과는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실은 아주 다른 사건입니다. 타블로 논란은 가짜 예술품, 짝퉁 명품, 식품 재료 사기 논란 등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건인 것입니다.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한, 입증 책임은 어디까지나 타블로 측에 있는 것입니다. 그가 결백하다면 더 파워풀한 인증을 해서 논란을 끝내든지, 소송을 벌여 공적인 인증을 받던지, 신경쓰지 말고 무시하던지 할 일입니다. 결코 질질 짜고 잠적하고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인터넷 파시스트들에 대한 제 비판은 위의 글들에 나와있습니다.)
타블로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까페의 운영진들을 고소하든지, 아니면 타블로의 책을 구입한 독자들이 타블로를 공동으로 고소하든지 어느 쪽이든지 일이 진행되어 속시원하게 전말이 밝혀지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