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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만] 우파가 좌파에게 이길 수 없는 이유. 제레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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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mahlerian     Date : 10-05-27 00:39     Hit : 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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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좌파와 전교조, 김우재 박사의 장점에 대해서 쓰겠다고 했는데, 이미 강준만 교수가 이미 관련 거의 저와 비슷한 논지의 얘기를 한 게 기억나서 이곳에 소개합니다. 저만의 글은 따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강교수의 아래 글은, 그의 공정성의 원칙에서 보면 제레미 리프킨의 사기극은 거의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한 현실에서 부적절한 감도 없지 않지만, 글 자체로 보면 아무튼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닙니다. 반한의학 운동을 하는 분들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변희재가 리프킨보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정직성 등 훨씬 수준은 높은데, 얼핏 그의 얘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변희재가 리프킨의 팬이기도 했다고 하죠.
 
조갑제를 제외하고선 근래 우파에서 활약하는 분들의 다수는 아웃사이더 좌파거나, 뉴라이트를 비롯 전향 좌파거나 라는 점은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우파가 좌파에게 이길 수 없다면 그건 바로 공익추구(이게 항상 실제 공익으로 연결되는건 아니지만)에 대한 '정열'때문이 아닐까요?
 
 
 
 
*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올라온 글인데 카피레프트가 된 글 같아서 제가 손을 봐서 다시 올립니다. 
 
  
* * *
 
 
 
 
 
하려면 화끈하게 하고 아니면 관두자
 
내가 ‘운동’은 포기하고 ‘비판’만 하겠다고 그랬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질 못했다. 도대체 그 차이가 뭐냐는 것이다. 무리는 아니다. ‘이것이 운동이다’고 딱 내려진 정의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각종 ‘운동’에 대해 평소 좀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왔다. 뭐라고 할까. 이런 그림을 그려 드리는 게 설명에 큰 도움이 되겠다.
 
배가 고파 길거리에서 아무 음식점이나 찾아가 음식을 주문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점 내부도 불결하거니와 친절하지도 않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는데 이건 영 아니올시다 이다. 맛이 형편없다.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돈을 내고 나온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왜 저렇게 장사를 하지? 차라리 장사를 하지 말든가.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음식 장사로 한 번 돈을 벌어보겠다는 정열이 없는 음식점들은 우리 주변에 숱하게 많다. 음식 장사 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더라 해서 음식점을 차린 사람들 많다. 먹고살자니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정열이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운동이 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운동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우리 나라 전체의 각종 운동단체들이 보여주고 있는 전반적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운동은 한다고 간판은 내걸었는데, 그냥 대충 하는 시늉만 내는 그런 운동단체들 좀 많은가.
 
나 역시 그런 식으론 죽을 때까지 운동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매사에 분명한 걸 좋아한다.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 거지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닌, 그런 흐리멍텅한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그런 흐리멍텅한 운동도 운동하는 거라고 불러준다. 그 기준으로 보자면 내가 운동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정열을 보일 수 있는 일에 나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 나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에만 의존하는 운동? 그건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그냥 ‘비판’이라고만 부르는 게 온당할 것이다.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시위도 조직해야 하고 다른 단체들과의 연대를 위해 머리 숙이고 찾아가 호소도 해야 할 것이다. 운동은 장난이 아니다. 그거 정말 만만치 않은 거다. 나는 진정한 운동가들에겐 뜨거운 존경심을 갖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엔 그런 진정한 운동가는 매우 드물다. 나는 진정한 운동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정직하게 내 한계를 인정하고 운동은 나의 몫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것인지 그걸 놓고 고민하다가 후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물론 나로선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일임에 틀림없으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흐리멍텅하게 얼렁뚱땅 운동 합네 하면서 자신의 모든 열성을 다하지 않는 그런 운동가들을 생각하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당당하다. 운동도 서로 하겠다고 경쟁하는 세상이다. 얼렁뚱땅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정작 운동에 미쳐보고 싶은 사람이 설 땅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리프킨은 저술가인 동시에 운동가
 
나는 운동에 관심은 많다. 운동도 포기한 자식이 왜 관심은 보이느냐고 욕하지는 마시라. 관심도 못 갖나? 외국의 운동가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보다는 운동하는 방법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지금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경우에도 그의 사상이 아니라 운동 방법론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리프킨에 대해선 이미 널리 보도됐던 터라 나까지 가세해서 그의 사상을 반복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리프킨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소개는 할 필요가 있겠다. 리프킨은 흔히 문명비판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주장이 워낙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환경 파괴 위험과 테크놀로지의 재앙적 남용을 경고하며 유전자 조작에 반대한다. 단지 그것 뿐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인류의 진보라고 하는 개념 자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과학적 탐구의 성격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 활동의 개념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사람들이야 이미 있었던 것 아니냐고? 그렇다. 그러나 리프킨의 경우엔 그가 활발한 저술가인 동시에 몸을 아끼지 않는 운동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국내에 가장 먼저 번역돼 소개된 리프킨의 책은 『엔트로피』다. 『도서신문』(98년 1월 5일자) 최성일 기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저서 『엔트로피』는 80년대 중반 독서계에 붐을 이뤘는데, 정음사(1983), 범우사(1983), 안산미디어(1984), 원음사(1987) 등의 출판사들이 번역본을 냈고 정음사의 것은 1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고 한다. 정음사판은 동아출판사(1992)로 이어져 97년까지도 교양과학 분야의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지금은 어떤지 그건 모르겠다.
 
그러다가 96년 『노동의 종말』(민음사)과 『생명권 정치학』(대화출판사)이 나왔고, 99년에 『바이오테크 시대』(민음사)가 선을 보였다. 다 좋은 책들이다. 그러나 나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책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리프킨의 운동 방식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이 이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지금은 나오지 않는 『사회평론 길』 97년 12월호엔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사회평론 길』의 편집위원이며 과학세대 대표인 김동광씨가 쓴 글이다. 아주 좋은 글이다. 김씨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 글에서 상당 부분 해버렸다. 김씨의 글을 많이 인용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정보와 생각을 좀더 보태는 걸로 만족해야겠다.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
 
리프킨은 1945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플라스틱 백 제조업자였고 어머니는 자선사업으로 맹인들을 위해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리프킨은 한국 유학생이 MBA 하겠다고 많이 몰려가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터프스대 법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정도 학력이면 미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전공도 돈 벌기에 아주 좋은 전공이다. 그런데 리프킨의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후일 리프킨도 그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자기가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한 바 있다.
 
리프킨은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대충 참여한 게 아니다. 그는 반전 시위를 주동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운동 경험으로 인생관이 달라진 리프킨은 돈 버는 길을 버리고 70년대부터 워싱턴 DC에 진을 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결성한 조직은 1971년에 만든 ‘새로운 아메리카 운동’(New American Movement)이었으며, 이 조직은 다음 해에  ‘200주년 국민위원회’(People's Bicentennial Commission)를 출범시켰다.
 
리프킨은 미국의 건국 200주년과 관련된 기념 행사들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에 반대했다. 미국의 영광이나 뻐기려드는 정부의 기념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건국 당시의 혁명 이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기념 정신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3년에 『미국식 혁명을 이루는 법』이란 평론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은 200주년 캠페인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급진적으로 재구성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대대적인 군중혁명을 어떻게 이룩하느냐 하는 데에 관한 것이다.…… 새로운 미국혁명은 우리의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인권은 풍요라는 가치보다 상위에 존재할 것이다. 개인적 이익은 공동의 이익과 동일시 될 것이다. 기술은 인간과 환경을 착취하기보다는 이에 봉사하게 될 것이다. 경제에 대한 통제력은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손을 떠나서 근로자와 소비자의 품 안으로 돌아갈 것이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5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포드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200주년 개시 행사에 4만 명의 시위 군중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원래 목표했던 ‘대중혁명운동’까지 일으키진 못했다(사실 그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렇다고 주저앉을 리프킨이 아니다. 리프킨은 ‘200주년’이라고 하는 이슈가 사그라들자 ‘국민기업위원회’(People's Business Commission)를 조직했다. 이건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면서 기존 경제 시스템의 민주적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제법 성과를 거둬 리프킨은 일부 평자들로부터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에 가장 재능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얻었다.
 
 
리프킨의 운동 방식
 
리프킨은 77년에 현재 그가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세웠다. 그가 처음에 주로 다룬 이슈는 노동 문제였지만 그와 동시에 오늘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전자 조작에 대해 본격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김동광씨는 77년 3월에 리프킨이 벌인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인 1977년 3월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돔형 구조물로 이루어진 초현대식 강당에 밀어닥쳤다. 그들은 “우리는 복제되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be cloned!)”……고 외쳤다. 이들의 시위의 표적은 이 기관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던 3일간의 심포지엄이었다. 그것은 과학자, 정부관리, 기업가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유전자를 조작한 생물체의 향후 전망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그 ‘생물체’ 중에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회의의 의장인 데이비드 햄버그 박사는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의학분과 책임자로 이 회의가 매우 유익한 과학 회의가 될 것이며,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전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활발한 토론을 벌일 것으로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시위대를 이끈 인물은 제레미 리프킨이었다. 시위대는 플래카드로 무장하고, 구호를 외쳐대며 심포지엄의 토론자들에게 격앙된 목소리로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들은 과학자와 정부 관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생물의 유전자 조작이 갖는 도덕적, 윤리적 함축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또한 시위대는 연구자들에게 도대체 누가 그 연구의 자금을 대주고 있는지 출처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공개토론회의 비용 중 일부는 여러 제약회사들이 분담하고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이 앞으로 생물공학이 새로운 우생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물고 늘어지자 시위대에게 공식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이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생물공학의 반대자 중 한사람으로서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리프킨은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곡물에서 유전자 특허, 나아가 생물학적 무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생물공학적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한 것이었다. 그는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법률소송, 불매운동, 게릴라식 시위, 13권에 이르는 저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문투고 등등.
 
 
리프킨의 탁월한 선동술
 
그렇다. 리프킨의 운동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그는 우선 탁월한 저술가다. 그의 저서는 이미 16개 국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서 읽히고 있다. 게다가 그는 탁월한 연설가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솜씨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그는 지난 25년간 10여 개 국 300개 이상의 대학에서 강연했다고 한다. 그는 TV 출연도 활발하게 한다. 그뿐인가.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시위를 주동하기도 한다.
 
리프킨이 벌이는 시위는 주도면밀하다. ‘We Shall Not Be Cloned’는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과거 민권운동의 주제가라 할 ‘We Shall Not Be Moved’를 흉내낸 것이다. 시위를 하면서 내건 깃발의 구호도 대단히 선동적이다. Don't Tread on My Genes! 내 유전자를 건드리지마! 가슴에 와 닿지 않는가?
 
선동 없는 운동을 하라는 건 운동을 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선동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머리로야 다 공감하더라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동은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필요악일 수도 있다. 상아탑의 세계에만 머무르는 과학자들이 리프킨의 선동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리프킨이 83년 『알제니(Algeny)』라고 하는 책을 내자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과학잡지인 『디스커버』 85년 1월호에 서평을 기고했다. 굴드는 그 서평에서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리프킨의 기본 정신엔 동의한다고 말하면서도 리프킨의 운동을 다음과 같이 혹독하게 비판했다.
(이 책은) 반(反) 지성적 프로퍼갠더를 교묘하게 구성하여 마치 학술적 저술이나 되는 것 같이 행세하고 있는 허울좋은 가식(假飾)일 뿐이다. 중요한 사상가에 의한 지적 저술이라고 판촉되는 책 중에서 이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를 나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만일에 리프킨의 주장이 서로 상반된 생각을 대비해 검토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좌파 대 우파의 대립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반지성적 형태의 낭만주의와 지식인 인류에 봉사하는 것을 존중하는 지성적 입장과의 대립일 뿐이다. 내용이나 표현에 있어서 『알제니』는 지저분한 반(反)과학적 쓰레기에 속한다. 지적 사색을 통해 비판하기보다는 감정을 앞세워 어떤 것을 배척하자고 주장하는 운동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리프킨의 탁월한 연대 전술
 
그러나 그런 비판에 기죽을 리프킨이 아니다. 리프킨은 ‘연대’를 시도했다. 그는 생물공학에 대항하는 운동에 대한 동조자로서 환경운동단체, 동물보호단체, 평화단체, 여성건강단체, 생명권 옹호단체 등을 끌어 들였다. 그는 복음주의 교회와도 손을 잡았다. 그는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성명서에 기독교계의 거물급 지도자 60명의 서명을 얻어냈다. 그 지도자들 가운데엔 극우적 성향으로도 유명한 근본주의적 기독교운동의 지도자인 제리 팔웰 목사도 포함돼 있다. 어떤 기준으로 보건 리프킨은 좌파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일에 있어선 좌파와 극우가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리프킨의 전술이 돋보인다.
 
리프킨의 그런 유연한 전술은 80년대에 선을 보인 건데, 리프킨은 90년대에도 그 전술을 계속 구사했다. 김동광씨는 리프킨의 ‘연대 전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프킨이 거둔 가장 큰 성공은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기층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생명공학과 연관된 주제에서 반대활동을 벌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프킨의 조직 활동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노력은 1995년에 이루어졌다. 그는 최소한 80개의 서로 다른 종교단체들에서 나온 1백80명의 지도자들을 설득해서 유전자 조작된 동물들과 사람의 장기에 대한 특허에 반대하는 성명에 서명하게 했다. 이 성명은 『뉴욕타임즈』에 대서특필되었고, 신상품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 특허를 필요로 하던 생물공학회사와 제약회사의 경영자들에게 공포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신학교수는 ‘어떻게 그처럼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과 전통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을까’라고 감탄했다.
 
리프킨은 또한 자신의 운동을 위해 법률 소송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소송은 뉴스 가치가 매우 높다. 글과 말로 아무리 떠들어도 꿈쩍도 않던 언론매체들도 소송이 벌어지면 그건 뉴스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정작 중요한 건 소송에서의 승패가 아니라 언론이 소송 자체를 뉴스로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리프킨은 소송에서도 여러 건 승소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는 꿩 먹고 알 먹는 전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리프킨의 운동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건 리프킨이 선진적으로(?) 사용한 운동 방법이 다른 환경운동 단체들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다른 환경주의자들도 리프킨이 애용해온 국가환경정책법과 멸종위기종자보호법 등을 자신들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양 극단을 치닫는 평가
 
리프킨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나뉜다. 아니 그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조선일보』(97년 9월 30일자) 고종원 기자가 『엔트로피의 법칙』을 ‘20세기를 만든 책’으로 다룬 기사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평가야말로 그런 중간적인 입장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주장은 현대 문명을 근저부터 부정하는 일종의 급진론이다. 환경론자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비판 논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이미 대량 소비와 편리함에 익숙한 현대인(으)로부터 공감은 얻을지언정 실천을 끌어내기에는 불가능하다. 정밀한 대안의 부재는 이 책의 최대 단점이다.
 
일리 있는 평가다. 그러나 ‘정밀한 대안의 부재’라는 건 말이 안된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무슨 얼어죽을 정밀한 대안이란 말인가? 리프킨의 운동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꾸 그의 자격을 문제삼는다. 국내에서 리프킨의 어느 책을 번역한 어느 역자는 “과학자로서 서구 문명 전반을 꿰뚫어보고 있는 냉철한 통찰에, 그의 해박한 지식에 때로는 전율을 느끼는 경험도 해보았다”고 말하고 있으나, 미국 내에서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리프킨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 가운데 가장 많은 게 리프킨이 과학적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리프킨은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만을 받았을 뿐 과학에 대해선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물고 늘어지면서 리프킨을 선동가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나마 과학계에도 리프킨의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자격을 물고 늘어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찌됐건 리프킨이 직면하고 있는 반발과 저항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김동광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반대자들은 리프킨이 문제를 지나치게 극단화시키기 때문에 토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오류를 저지른다고 비난한다. 또한 코넬 대학의 영양생화학 교수인 데일 바우만씨는 동식물에 대한 호르몬의 사용이 사람들이 이용하는 음식물에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리프킨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리프킨이나 그의 재단이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리프킨이 제시하는 정보가 부분적으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의 정보를 지나치게 일반화시키는 식으로 잘못된 해석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나 기업들이 그를 싫어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 우유생산자연맹은 제레미 리프킨을 ‘식품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그가 소에게 재조합 성장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호르몬은 젖소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게 해준다. 미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데이비드 볼티모어는 리프킨을 ‘생물학적 근본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타임』지는 그를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받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미국 식품의약국의 전 국장이었고 지금은 보수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헨리 I. 밀러는 ‘그런 작자에 대해서는 어떤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해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활동으로 미국의 정부 관계자나 관련 기업의 업무 담당자들은 리프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가 되었다.
 
 
『생명권 정치학』에 대한 평가
 
리프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사람들은 제껴 놓자. 성실하게 논쟁에 임해야지 그래서야 쓰겠는가. 기본적으론 리프킨의 사상에 동조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리프킨의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이 소중하다. 이와 관련,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권혁범 교수가 『여성신문』 97년 1월 10일자에 기고한 『생명권 정치학』에 대한 서평이 주목할 만 하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권 교수는 이 분야의 전문가이거니와 『녹색평론』에 자주 기고를 하는 학자라는 것을 아시는 게 좋겠다. 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쉬운 점은 그의 분석이 지나치게 수박 겉핥기식이며 대안 제시가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단 한 권의 저서를 통하여 구획화, 자동차, 음식, 육체, 생명공학, 프라이버시, 핵전쟁, 다국적기업, 민족 국가 등의 수많은 문제를 다루려하다 보니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과 통합적 조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개별 주제에 대해 2차 자료를 요약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배웠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여러 책에서 읽었던 것을 복습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근대’에 대한 비판에 대한 강한 의지로 인하여 ‘중세’ 공동체가 가졌던 억압성과 차별성이 가려지며 그것이 이상화되는 위험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전통적 친자연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생태론이 페미니즘의 관점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또한 비서구사회의 경험을 그의 이론적 조망 속에 포함하지 못함으로써 중세-근대-탈근대에 대한 이해가 오히려 리프킨 자신이 비판, 극복하고자 했던 서구적 근대의 단선적 진보사관의 테두리에 갇혀버리게 되는 모순점도 보인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공리적이고 분절적인 기능주의, 자연과 분리된 인간중심주의의 포로가 된 기존 정치학의 패러다임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며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 생태계 파괴와 수평지향적인 공동체의 궤멸을 막아내려는 대안적 정치학의 기본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그것은 생명과 생태계를 핵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인식 체계가 자연과학적 생태주의나 인문학적 생태론에만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사회과학, 특히 정치학의 기본 가정과 관념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왜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로널드 베일리의 리프킨 비판
 
이 글을 다 끝내가고 있는데, 『에코스캠』(이상돈 옮김, 이진출판사)이란 책이 나왔다. 이미 앞서 이 책을 적잖이 인용하였다. 미국의 언론인 로널드 베일리가 쓴 이 책은 조직화된 환경운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전체 10개 장 가운데 <제6장: 프랑켄스타인의 악몽>을 오로지 리프킨 비판에 할애하고 있다. 베일리가 이 책에서 긍정적으로 인용한 사람들 가운데엔 극우적 인물들이 많아 그의 비판이 일종의 이념 투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꽤 있는 것 같다. 나는 베일리의 비판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가 내놓은 비판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걸로 만족하련다. 베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질적으로 리프킨은 자연을 신격화하고 있으며 또한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우리는 사악한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의 견해에 의한다면 인류에게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을 유입하는 것은 생명을 회복 불가능하게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공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사칭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연에 혜택을 준다는 관념은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는 20세기 말의 도시민들에게나 통용되는 낭만적인 환상이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못지않게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자연은 단 2년간 유럽 인구의 1/4을 사망케 한 흑사병을 전파시켰고 지금은 에이즈라는 현대 전염병을 우리에게 전파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대 문명은 기아, 질병, 홍수, 그리고 가뭄으로 가득찬 변덕스런 자연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리프킨은 순전히 비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생물공학에 반대하는 그의 열정은 현재의 과학은 이른바 “감성적 과학,” 즉 소외된 인간이 “우리 환경과 참여적 관계”를 갖게 되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그의 광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 미래의 과학적 발견과 기술 진보는 새로운 위험을 야기하고 또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일으킬 것이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연을 대하려면 이런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또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인간능력에 대해 신뢰하고 있는 낙관론자들은 리프킨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리프킨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능인 지적 탐구를 포기하고 그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 인간형인 미지의 우주에 조용히 안주하는 겁많은 인간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일리도 비난하는 투로나마 리프킨이 벌인 운동의 성과는 인정하고 있다. 아니 바로 그게 베일리가 『에코스캠』이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일 것이다. 베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이런 난잡한 리프킨의 이론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섰지만 리프킨은 생물공학의 발전을 지연시키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리프킨은 그가 믿는 바를 열정적으로 밀고 나갔는데 정부 규제의 메커니즘은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리프킨 같은 열정적인 한 명의 사람이 톱니바퀴를 멈추게 하는 작은 모래알이 되기에 충분했다. 운동가적 경험을 통해 리프킨은 규제 제도와 법제도를 조작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리프킨은 어느 누구보다 방해를 위해 정치적 법적 장치를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정치분석가인 피터 휴버는 말한다. “리프킨은 매우 헌신적이고 또한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인다. 환경보호처의 대변인이던 앨버트 헤이너는 “그의 머리가 돌았건 안 돌았건 간에 리프킨은 대중의 귀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의 그러한 능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프킨은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피터 휴버는 지적한다. 리프킨은 앨 고어 상원의원 같은 환경정치인을 조언하는 등의 활동으로 의회와 연방행정기관에 영향력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관심있는 인물들에게 환경문제를 일깨우는데 성공했다. 리프킨은 그의 생물공학 재앙론이 큰 반향을 일으킨 이탈리아와 독일을 여행했다. 유럽에서는 생물공학 반대 운동이 더 세게 일어나서 덴마크는 현장 실험을 금지했고 독일의 생물공학 회사들은 자기 조국을 떠나고 있다.
 
 
정열 없는 운동은 죽은 운동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자. 리프킨의 모든 주장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극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다 끝날 수도 있는 어려운 이야기를 리프킨이 대중화시켜 살아 있는 공공적 이슈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반성해야 하고 리프킨으로부터 무언가 배워야 한다. 김동광씨의 결론도 다르지 않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프킨의 활동은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 나라에서도 유전공학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일부 전문가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중요한 과학기술의 결정에 이해 당사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이다. 특히 리프킨이 과학기술의 주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풀뿌리 시민운동으로 조직해낸 과정은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 이야기까지 마저 해보자. 운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정열로 산다. 정열이 지나쳐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리프킨 역시 그런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동가의 선의의 실수는 사회적 의제 설정이라고 하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운동가건 지식인이건 우리 나라엔 너무 체면과 평판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정열 없는 운동, 그건 죽은 운동이다. 정열의 위험을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잘 발달돼 있으니 실수할까봐 너무 두려워할 것 없다. 물론 운동에 관한 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게 큰소리 칠 자격은 없다.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젠 운동의 내용뿐만 아니라 운동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드러내놓고 해보자는 것이다.
 
여러 시민운동 단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왜 쉬쉬하며 내부의 비밀로만 다뤄져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시민운동 단체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그 원칙을 왜 자기 자신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가? 운동의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앞으로 원 없이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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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ust   10-05-27 19:39
도대체 강준만 교수가 사용하는 '선동'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어떻게 되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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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 없는 운동을 하라는 건 운동을 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선동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머리로야 다 공감하더라도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선동은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필요악일 수도 있다. 상아탑의 세계에만 머무르는 과학자들이 리프킨의 선동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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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아탑의 세계에만 머무르는 과학자들에게만 불편한 것이 아니라,
비과학과 감정보다는 과학과 이성을 중시하는 모든 사람에게 불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운동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시간과 노력 때로는 희생을 요하는 것인데,
선동 없는 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어떻게 "선동 없는 운동을 하라는 건 운동을 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할까요?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강준만 교수가 광우난동 관련 MBC類의 선동에 왜 침묵(?)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mahlerian   10-05-27 19:52
Proust/
제 생각에는 강준만 교수가 선동을 꼭 긍정했다기 보다는, 저 글에선 사회적 약자의 그것에는 사회적 강자의 그것보다 관대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공정성을 역설하려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좌익세력에 대한 저의 공격적 태도나 살벌한 표현도 다 선동은 선동입니다. Proust님의 말씀들도 선동의 의미를 좀 더 광범위하게 잡으면 그리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거짓부렁을 하지 않는다는 가장 확실한 차이를 넘어서도 다른 선동세력과 비교하여 저나 Proust님의 까칠한 선동에 뭔가 상황적 정당성을 부여해보려면, 역시 근래에 이뤄진 좌익들의 방송과 인터넷 등 각종 대중소통채널의 패권 장악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거론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질적으로 소수담론을 가진 사람은 다수담론을 가진 사람보다 이 사회의 주류가 당연히 수용해야한다고 보는 각종 규범을 완벽히 지킬 수 없게 되어있어요. 애초 둘을 똑같은 잣대로 엄격하게 다루겠다는 것부터가 사실상 뒤로는 다수담론을 지지하는 것에 불과하지요.

Proust님이나 저같은 담론상 사회적 약자가 담론투쟁을 통해 할 수 있는 변혁운동의 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강준만 교수의 안티조선 논리는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합니다

물론, 강교수가 리버럴 바이어스가 있는 관계로 한국에서 리프킨이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소개되는 방식에 대해서 먼저 더 강조해서 지적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선의의 실수"?), 강교수부터가 이미 자기 자신의 안티조선 논리를 배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mahlerian   10-05-27 20:18
강준만 교수가 리프킨을 예로 든건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저 위의 글은 리프킨의 실체를 좀 아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운동'에 대한 나쁜 인상을 줄 수도 있는 글 같아요. 물론 강교수가 리프킨에 대한 비판도 소개하는 등 나름 균형은 잡았지만, 위와 같은 글은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서 리프킨에 대한 비판이 아주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거나, 또 강교수가 이미 평소에 철저하게 리프킨를 비판한 후에나 혹시 나올만한 글이다 싶습니다. '정열'때문에 나올 수 있는 거친 표현의 문제는 몰라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운동가에게 있어서도 사실왜곡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리프킨에 대한 칭찬은 강교수의 그 옛날 황광우 비판과도 뭔가 핀트가 안맞네요. 저는 강교수의 아래 입장이 훨씬 더 합리적으로 여겨집니다.


* * *


(...)

이제야 알 것 같다. 황광우는 운동가다. 그는 책상머리에 앉아 펜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치열하게 운동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진실 규명'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나는 재야 운동가들의 그런 태도가 그들의 운동을 좀먹는 암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진단은 황광우류의 운동에만 국한되는 것이니 오해하는 독자가 없기를 바란다.

황광우가 <말>지(95년 4월호) 인터뷰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시켜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글에는 패배주의가 담겨서는 안 돼요. 글에는 사람을 약동시켜주는 힘이 있어야 해요. ...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는 사람들을 코 빠지게 할 필요가 없어요."

큰일날 소리다. 그런 선동적 방법으로 뭘 해보겠다는 건 정말 시대착오적이다. 군중집회만 하면 백기완이 그 탁월한 연설 솜씨로 얼마나 사람들을 약동시키고 열광시켰던가? 그래서 뭘 얻었나? 나는 백기완의 연설을 듣고 "화끈하고 시원한 맛은 있는데, 에이 그게 어디 말이 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다. 그게 다 '진실 규명'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이라는 자세로 운동을 해봐야 죽을 때까지 해도 안 된다. 한치라도 더 진실에 접근하겠다고 해도 저만치 달아나버리는게 진실인데, 진실을 선동성의 하위 개념쯤으로 보다니 큰일날 소리 아닌가.

이제 곧 이야기하겠지만, 황광우는 지역감정에 관한 '진실규명'을 외면하고 그 책임을 김대중에게 돌리는 기가 막힌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다. 하긴 그렇다. 김대중을 제물로 삼으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 이게 바로 '김대중 죽이기'라는 정치편의주의란 말이다.

나는 황광우가 김대중을 제물을 삼아 잔치판을 벌인 가운데 지역감정에 따라 표를 던진 적이 한번도 없다는 위대한 민주역량을 가진 영남 민중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민중 찬가'를 부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서라.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말도 않겠다. 나는 진실을 왜곡해서 문제가 해결된 적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진실을 왜곡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역대 군사독재 정권들로부터 무엇인가 배웠어야 하는 것 아닌가?

(...)


- <김영삼 이데올로기>, 강준만, 개마고원 출판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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