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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워치> 130호 (PDF 전문)
  윤리경영과 정(情)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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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er : 서일     Date : 08-12-10 17:38     Hit : 18066    
  Trackback URL : http://www.skepticalleft.com/bbs/tb.php/01_main_square/41208
요즘 농협이 비리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공기업에서 특히 비리문제가 심하다고 합니다만, 별 일 없는 것처럼 뻗대던 고위간부들이 대통령의 질타 한 마디에 줄줄이 사표를 내는 걸 보면 한심스럽습니다. 농협을 이용하는 수많은 농민들과 소비자들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고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소비자는 왕'이라는데, 그들의 '왕'은 전근대적인 '주상전하'일 뿐, 평범한 고객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더군요. 
 
이는 비단 농협만의 문제가 아닌, 공기업 전반의 문제일 것입니다. 요즘 감사결과를 보면 공기업의 비리와 부패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민간 대기업에서는 윤리경영에 대한 자각이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공기업에는 윤리경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윤리경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외유내강(外柔內强)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소비자, 환경, 지역사회와 같이 기업 외부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자들에게는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기업 내부의 규율은 강하고 냉정하게 지키는 것이지요. 만약 기업이 '외강내유'하면 어떨까요? 결과는 자명합니다. 자기들끼리 '좋은게 좋은대로' 행동하면서 그로 인한 비용과 부담은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전가하려 하겠지요. 인맥과 연줄을 총동원하여 힘을 가진 '강자'에게는 굽실대면서 직접적인 이익과 관련이 없는 '약자'들을 기만하려 할 것입니다.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의 압력이 규율로 작동합니다. 좋든 싫든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겠지요.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기업 역시 브랜드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빈틈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그 빈틈이 상대적으로 넓고 깊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장경쟁의 압력이 거의 미치지 않는 공기업에서는 정상적인 규율의 작동을 방해할 정도라고 여겨집니다.
 
 

위의 그림은 작년 전경련에서 발표한 '윤리경영의 추진실태와 과제'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기업인들이 대외적으로 윤리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꼽은 것인데요. 가장 많은 35.5%의 응답자가 '명확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과도한 규제'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법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을 동일시하여 윤리경영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불법적인 행위(의 적발)로 인한 기업불상사가 윤리경영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국민적인 접대문화, 연고주의 등 사회풍토(22.8%), 행정절차의 비투명성(16.7%), 외압에 의한 청탁(12.6%)의 세가지 입니다. 이 세가지 항목은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한국인의 정(情) 문화입니다.

사적인 정(情)이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작용하다보니 먼저 절차의 비투명성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당연히 연고주의와 접대문화의 사회풍조가 만연할 수 밖에 없겠지요. 또한 인맥과 연줄을 이용해 외압을 가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情) 문화는 기업의 윤리경영을 저해하는 으뜸가는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리경영이란 한국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윤리경영은 서구에서, 특히 서양의 다국적기업에서 수입된 개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 '정실자본주의' 비판이 본격화되면서 비로소 윤리경영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고객과 환경과 지역사회를 위한다는 점에서 윤리경영은 '따뜻한 경영'이라 할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윤리경영은 매우 냉정한 것입니다. 내부자 고발제도 설치 여부가 윤리경영 실천 평가항목에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이해하기 쉽겠지요. GE의 정관에는 단 한 번의 부적절한 식사도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유내강'으로서의 윤리경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세계화로 인해 기업의 힘과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도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둘째는 시장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기업불상사가 엄청난 타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기업의 경우는 어떨까요. 예나 지금이나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경쟁의 압력은 거의 받지 않고 있습니다. 굳이 윤리경영을 해야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해왔던대로 정(情) 문화에 기초하여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본질적인 개혁을 외면하는게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격언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공기업, 국민이 주인인 기업이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만 지금처럼 권력자에게는 굽실거리고 평범한 고객들을 우습게 여기는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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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   08-12-10 17:40
내용이 좀 뻔한 것 같지만 자료를 본 김에 심심풀이로 써보았습니다.
picket   08-12-10 20:02
'평범한 고객들'이 직접 주인이 되면 됩니다. '시장'과의 관계를 거론해서 논점이 좀 흐트러지는 것 같은데, 시장에 노출된 정도와 윤리경영의 관계는 별도의 주제인 것 같습니다. 공기업이 아닌 시장에 노출된 대기업이라도 비윤리적인 경영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상황이니깐요. 때로는 시장과 경쟁이라는 '외부환경'이 더 비윤리적인 행동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 '평범한 고객들'과 '권력자'의 관계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지요. 치자와 피치자가 조금이라도 더 동일하게 여겨진다면, 그들이 '평범한 고객'을 우습게 보지 못하겠지요.
바람계곡   08-12-10 21:29
서일님 글을 읽으니 예전에 CEO조찬강연회에서 윤리경영을 주제로 열변을 토하셨던 훌륭하신 두산그룹 회장님이 생각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확신과 신념에 차서 윤리경영의 성공사례 및 실천사례로 자신의 업적을 전파하시던 그 훌륭하셨던 회장님.  그 조찬 강연회 이후 두달인가 석달 뒤에 매우 비윤리적인 공금횡령과 눈물없이는 볼 수 없었던 회장형제님들의 폭로전까지 보너스로 보여주시고... 화려한 윤리경영을 마감하셨지만요.

아... 다시 생각해도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세상에... 대기업의 회장님께서 생활비가 없어 주주들의 돈을 몰래 땡겨다 쓸수 밖에 없었다니... 역시 먹고사니즘은 윤리를 뛰어넘는 것같습니다.


서일님 말씀대로 정(情)문화도 맞고. 연고주의, 접대문화...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도둑님은 도둑으로 보지 않고, 도둑님은 절도를 해도 처벌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다 부질없는 논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엇이 먼저인가를 묻는다면 저는 정에 좌우되는 연고문화보다 확고한 법치주의의 부재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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